2012년 10월 4일 목요일

“버림받은” 10.4선언, 차기 정부에선 살아날까?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10-04일자 기사 '“버림받은” 10.4선언, 차기 정부에선 살아날까?'를 퍼왓습니다.

2007년 남과 북의 정상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0.4정상선언(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서명한 지 5년이 흘렀다. 

임기 초반부터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10.4선언의 합의들은 빛을 보지 못했다.

최근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꽃게잡이 철을 맞아 서해 NLL(북방한계선) 주변에서 조업하던 북측 어선들이 자주 NLL을 넘어왔고 지난달 21일 우리 해군이 북측 어선에 경고사격을 가하면서 서해상 긴장이 높아진 것.

우리 정부는 북 어선의 잇단 NLL 침범을 12월 예정된 대선 개입 시도라고 보고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으며, 북측은 NLL이 미군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유령선’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우리 군대와 인민은 서해를 대결과 충돌, 전쟁의 도가니 속에 몰아넣으려는 그 어떤 시도도 철저히 짓부숴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서해 NLL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은 서해가 언제든 군사적 충돌이 빚어질 수 있는 화약고임을 보여준다. 아울러 서해에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평화수역’으로 만들어가자는 10.4선언의 합의를 돌아보게 한다.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악수를 나누는 두 정상.

MB정부 5년, 사문화된 10.4선언

10.4선언에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와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이산가족 상시상봉, 국방장관회담 재개 등 남북관계의 모든 영역을 망라하는 8개항의 합의가 담겨있다. 

특히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자신이 10.4선언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가장 진전된 합의”라며 “박수 한 번 더 치자”고 할 정도로 큰 성과였다.

서해에서 군사충돌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같은 충돌의 기저엔 해상경계선에 대한 남북의 입장차가 존재한다. 북은 1953년 유엔군 측이 일방적으로 그은 북방한계선(NLL)을 무효라고 주장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10.4선언은 남북은 양측의 군사력이 밀집돼있는 서해를 평화적으로 함께 관리하자는 새로운 접근법을 내놓았던 셈이다.

더 나아가 10.4선언에는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통해 군사분계선 일대에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한 대규모 협력지대를 건설하겠다는 전망이 담겨있다.

이외에도 10.4선언은 개성공단 2단계 개발 등 남북경제협력의 확대,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 이산가족 상봉 상시화 등 인도적 협력사업 등 다방면에서 실천적인 이행방안을 담고 있다.

그러나 남북경협의 상징인 금강산관광은 중단됐고 개성공단 2단계 사업은 멈췄으며 ‘5.24조치’ 이후 남북 교류협력 사업은 중단된 상태다. 명맥을 유지해왔던 이산가족 상봉행사도 상시화는 커녕 연평도 사건 이후 남북관계 악화로 2년 가까이 중단됐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한 차례씩 진행됐던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10.4선언은 ‘수시로 만나 협의하자’는 약속을 담았으나 이 약속은 현재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 불씨 살아날까?

사그라진 10.4선언의 불씨는 차기 정권에서 살아날 수 있을까.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8월 남북관계 전문가 1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진보, 중도, 보수를 막론하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한 전문가는 0명이었다. 또 전문가들 87.5%는 차기 정부가 역대 남북 정부 간 주요 합의를 계승해야 한다고 답했다. 

실제 유력 대선후보로 꼽히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 모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북압박 일변도의 정책으로 불안정해진 남북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가장 적극적이다. 문 후보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추진위원장을 맡아 정상회담을 진두지휘한 경험이 있다.

문 후보는 6.15선언과 10.4선언을 실천하고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의 대북 평화협력 정책을 계승.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이며, 핵심 공약으로 ‘남북경제연합’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그는 임기 첫해에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조차 역대 정권에서 이뤄진 남북 합의는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와 만날 수 있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박 후보는 “10.4선언 같은 경우는 이행에 있어 재정이 많이 소요되고 국회 동의도 받아야 하고 민간이 할 일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합의한 걸 지킨다는 틀은 우리가 하지만 세부적인 것은 여러 가지 동의도 받고 조정해야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의 경우 6.15-10.4선언을 존중한다는 발언으로 보수 언론과 논객의 강한 질타를 받은 바 있어, 보수층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는 박 후보가 실제 화해협력정책을 어느 정도까지 펼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대북 포용정책과 안보태세 강화, 균형 외교를 3대 축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안 후보의 대북정책은 아직 구체화하지 않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8년 ‘10.4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10.4선언을 “버림받은 선언”이라고 부르며 안타까워했다. 이 버림받은 선언은 ‘잃어버린 5년’을 지나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정지영 기자 jjy@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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