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2-06-04일자 기사 '‘VIP문건·입막음용 돈’ 3개월간 불법사찰 재수사 아무것도 못 캐'를 퍼왔습니다.
지난 3월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39)의 폭로로 시작된 검찰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재수사가 3개월여 만에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검찰은 그러나 불법사찰·증거인멸과 사후 입막음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받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들은 한 차례 불러 간단히 조사하는 데 그쳤다. 입막음용으로 장 전 주무관에게 전달된 돈의 출처는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현재 수사 상황으로는 국민들의 의구심을 털어내기에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이영호 전 비서관 자백만 확인
검찰은 2010년 첫 수사에서 청와대 윗선을 밝혀내지 못한 불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형사부 등의 검사 14명으로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검찰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48)과 그의 수하인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42)을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이 전 비서관은 검찰 조사를 받기 전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증거인멸의 ‘몸통’이라고 자인했다. 또 최 전 행정관의 혐의는 장 전 주무관의 구체적인 폭로로 이미 드러난 상태였다. 검찰이 밝혀냈다고 하기엔 민망하다.
검찰은 그 이상 증거인멸의 윗선을 밝혀내는 데는 실패했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52·구속기소)은 비서 소유의 차명폰으로 증거인멸 당일 최 전 행정관의 차명폰에 7초 동안 연락한 흔적이 나왔다. 그러나 “최 전 행정관과 주고받은 연락처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는 박 전 차관 비서의 해명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 문건 갖고도 비선 못 밝혀내
불법사찰의 ‘비선’이 어떻게 구성됐는지, 청와대 윗선에서 불법사찰의 결과를 보고받았는지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총리실 일선 과장인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45)만 지난 수사 때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이번 수사 때 불법사찰에 관여한 혐의로 또다시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진 전 과장이 작성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2008·8·28)’라는 문건을 압수했다. 문건에는 “VIP 보고는 ‘공직윤리지원관 → BH 비선 → VIP(또는 대통령실장)’로 한다”고 돼 있다. VIP는 대통령, BH는 청와대를 말한다. 사찰 결과가 대통령에게 전달됐음을 암시하는 문구다.
그러나 검찰은 지원관실이 운영된 2008년 7월~2010년 7월 대통령실장을 지낸 정정길 현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게 최근 서면조사서를 보내는 데 그쳤다.
후임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도 마찬가지로 서면조사서를 보냈다. 전직 대통령실장을 검찰청사에서 조사하지도 못한 것은 수사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관봉 5000만원 출처도 오리무중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사건 관계자들의 입막음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는 제자리걸음에 가깝다. 지난해 4월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관봉 형태로 건네진 5000만원은 이번 수사의 뇌관으로 지목됐지만 수사 결과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장 전 주무관은 “장석명 민정수석실 비서관이 줬다고 들었다”고 했지만 검찰은 장 비서관을 지난달 말 한 차례 불러 조사하는 데 그쳤다. 이 돈은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관련자들이 2심에서 유죄를 받은 시점에 전달됐다. 또 장 전 주무관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돈이 전달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정부 기관의 공금이나 정권 실세의 비자금, 또는 민간기업에서 흘러든 부적절한 자금으로 밝혀질 경우 그 자체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사안이다. 검찰은 그러나 돈의 출처와 추가로 건네진 돈의 규모에 한 발짝도 접근하지 못했다.
증거인멸 사건 관련자들이 선처받을 수 있도록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진모 전 비서관(현 서울고검 검사)도 저녁 시간 이후에 간단히 한 차례 조사를 받았을 뿐이다. 검찰 관계자는 “장 비서관과 김 전 비서관을 다시 불러 조사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건 당시 민정수석을 지낸 권재진 법무장관이 물러나지 않는 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고 비판했던 야당이 특검 카드를 들고나올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도 특검에 반대하지 않고 있어 불법사찰은 결국 특검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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