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Economy Insight 2012-06-01일자 기사 ' 프랑스발 증세 도미노 본격화하나'를 퍼왔습니다.
Cover Story - 프랑스 대선 이후 유럽연합- ④ 감세에서 증세로 전환하는 유럽 국가들
프랑스 대선을 계기로 증세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긴축을 통한 재정건전화 방안이 각국 유권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사실상 좌초했기 때문이다. 증세 없는 재정건전화 방안이 유럽 위기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유럽에서 정권 교체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실패한 긴축'의 후폭풍이다. 특히 프랑스 대선에서 프랑수아 올랑드의 승리는 긴축 중심에서 성장을 중심에 놓는 재정건전화 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현재의 유럽 경제 상황에서 증세와 재정지출 증대를 결합한 점진적 재정건전화는 불가피하다. 유로존은 2011년 2분기부터 '사실상'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2분기와 3분기 성장률은 연속 0.1%, 4분기에 -0.3%, 그리고 올 1분기 0%를 기록했다. 그 결과 실업률이 11%에 이르고, 빈곤층이 급증하고 있다. 영국과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이 이미 기술적으로 침체 국면에 진입했고, 프랑스 역시 1분기 성장률이 0%일 정도로 성장이 멈췄고 실업률은 10%에 육박하고 있다. 독일을 제외하곤 유럽 주요국들이 침체에 빠졌거나 성장이 멈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긴축을 통한 재정건전화는 성장 둔화, 고용 악화와 세수 감소, 국가 부채 악화와 은행 부실 증대, 그리고 다시 성장 둔화라는 '악순환의 피드백 루프'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정권 교체와 긴축에 대한 저항은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프랑스의 국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86%에 이르고 있음에도 성장과 증세, 그리고 점진적인 재정건전화가 선택된 것은 정부 지출이 GDP에서 56%나 차지하는 구조에서 지출 삭감이 파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긴축 거부가 재정건전화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고실업과 저금리의 함정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지출 삭감은 재정 악화를 만들 뿐이다. 한마디로 세수 증대 없는 재정건전화는 실현될 수 없다.
프랑스 대선 이전부터 많은 국가가 증세로 전환해왔다. 세계 최대 채무국 중 하나로 2조유로(GDP의 120%)에 육박하는 국가 부채를 지닌 이탈리아의 마리오 몬티 정부가 재정건전화를 위해 복지 축소 등 지출 감축(130억유로)과 더불어 증세(170억유로)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1주택 보유자에게는 재산세가 면제됐는데 1주택 보유자에게도 주택 가격의 0.4%를 부과하고, 다주택 보유자에게는 중과세(0.64%)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부유세와 금융자산세를 신설하는 등 부자 증세를 도입했다. 위기로 치닫고 있는 스페인도 지난해 말 집권한 우파 정부가 지출 삭감(89억유로)과 더불어 소득세율 및 부동산 세율 인상 등 증세(62억유로)를 추진하고 있다.
긴축 실패로 잇따라 정권 교체
유럽에서의 이런 증세 트렌드에 프랑스 대선은 쐐기를 박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프랑스 사회당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건전화 방식에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올랑드는 기본적으로 세수 증대 중심과 점진적 균형재정 달성, 그리고 공공부문 역할 증대에 의한 성장 추진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즉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는 기존 수준을 유지하는 대신 부유층 증세와 대기업 법인세의 인상으로 세수를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교사직 6만 개를 신설하고 청년층 15만 명을 위한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들어 성장을 통한 세수 증대를 목표로 내세웠다. 게다가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에서 추진하던 연금개혁법을 수정해 연금 최초 수령 연령을 62살에서 60살로 낮추기로 했다. 그리하여 균형재정도 사르코지 정부가 목표로 하는 2016년보다 1년 늦춘 2017년 달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처럼 프랑스의 방식은 노동개혁이나 연금개혁 등에 의한 지출 삭감을 증세와 병행 추진하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의 방식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국가별 차이에도 불구하고 증세가 하나의 추세로 자리잡아가는 이유는 지출 삭감 중심의 재정건전화 방식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동안 긴축 중심의 재정건전화를 주도하고 여전히 고집하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고립되고 있는 배경이다.
선진국이 지난 30년 이상 추진하던 감세가 증세로 전환할지는 올해 미국 대선의 결과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 대선에서도 증세는 큰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실, 미국의 부채가 유럽보다 더 심각하다. 금융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2007~2011년 GDP 대비 정부 부채가 40%나 증가했다. 그 결과 지난해 여름 의회가 설정한 국가 채무 한도(14.3조달러)를 초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미국 공화당은 연방정부의 부채 상한을 2조1천억달러 늘려주는 대신 2013년부터 10년간 정부지출 1조2천억달러의 감축을 끌어냈다. 올해 미국 대선이 중요한 이유는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 경제가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부자 증세'와 경기부양, 그리고 지출 삭감의 결합을 주장하는 반면 공화당은 어떤 세금 인상도 거부할 뿐만 아니라 공화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밋 롬니는 소득세율 전반을 인하하겠다고 주장한다. 재정건전화 방안에 대한 합의 도출에 실패함에 따라 미국은 내년부터 재정지출의 자동 삭감이 시작되고, 올해 말이면 1년간 연장했던 긴급 실업수당 지원과 근로소득세 감세, 그리고 조지 부시 행정부의 감세가 만료된다. 그 결과 GDP가 2.8%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3월 말 미국 경제주간지 가 "종말의 시간 2013년 1월1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를 보낸 배경이다.
프랑스 대선, 증세 전환 기폭제 될 듯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증세 정책을 상징하는 '버핏세' 도입은 지난해 여름 재정건전화 방식을 둘러싼 미국 정치권의 갈등이 미국 신용등급의 강등으로 이어지자 억만장자 워런 버핏이 '슈퍼부자'에 대한 증세로 재정 적자 해결을 주장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 버핏은 자신이 2010년에 낸 실효 소득세율이 17.4%에 불과한 반면,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 20명이 낸 평균 실효세율은 자신의 2배가 넘는 36%에 이른다고 밝히면서 미국 소득세율의 불공정성을 지적했다. 참고로 미국 국세청(IRS)에 따르면, 미국 납세자 약 1억4천만 명 중 상위 1%에 해당하는 약 140만 명의 실효세율은 1995∼2007년 29%에서 23%로 하락했다. 그런데 1% 중에서도 '초슈퍼'부자 400명의 실효세율은 30%에서 17%로 하락했다. 0.0003% 안에 드는 '초특급'부자 400명의 실효 소득세율이 최상위 1% 소득자의 나머지 139만9600명보다 낮은 국가가 오늘날의 미국이다.
오바마가 추진하는 부자 증세는 이런 현실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오바마는 최상위 소득자들이 세금 감면과 자본소득의 우대 조치 등으로 중산층 소득자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연간 소득 100만달러 이상인 사람들에게 최소 30%의 세금을 부과하자고 주장한다. 현재 미국의 최고 소득세율이 35%인데 30%의 세금도 내지 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이해하기 위해 미국의 소득세율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최고 소득세율은 1940~50년대 80%대에서 1960년 91%까지 인상됐다가 1970년대에 내려 1980년에 70%였다. 이후 공화당 정권 12년간 절반에도 못 미치는 28%까지 내렸고, 1990년대 민주당 빌 클린턴 정부에서 39.6%까지 올랐던 것을 2000년대 공화당 조지 부시 정부에서 35%로 다시 내렸다. 그런데 클린턴 정부의 증세 정책은 임기 후반부에 자본소득세 인하로 빛을 바랜다.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 상위 1%의 소득 증대는 자본소득에서 비롯됐는데, 1997년 자본소득세를 28%에서 20%로 인하시켰던 것이다. 2003년 부시 정부는 자본소득세를 15%로 다시 내리면서 최상위 소득자의 실효세율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미국 소득세율의 역사에서 보듯이, 감세론자들의 협박과 달리 높은 세율을 보이던 시절에 미국 경제는 더 높은 성장을 구가했다. 이는 미국 경제의 성장세 약화가 높은 세율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미국도 세율 높을 때 한 단계 도약
오바마 행정부의 부자 증세는 지속 불가능한 미국 국가 채무 구조를 고려할 때 궁여지책이기도 하다. 공화당이 주장하는 지출 삭감만으로는 재정건전화가 어려울 뿐 아니라 사태를 악화시킬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수언론들조차 국가 부채 규모를 우려하면서도 지출 삭감만을 주장하는 공화당에 대해 무책임한 자세라고 비난하고 있을 정도다. 증세가 '성장을 저해하고 일자리를 죽이는 악마'라는 공화당의 주장은 지나치게 이념적일 뿐만 아니라 잘못됐음이 역사적으로도 입증된 것이다. 1993년 클린턴이 세금을 인상했을 때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이던 딕 아미는 "경제를 침체로 밀어넣고 일자리를 죽이는 증세"라고 비난했지만, 클린턴의 증세는 2300만 개 일자리와 2360억달러의 재정 흑자를 만들어냈다. 반면 부시의 두 차례 감세는 300만 개 일자리를 만들었을 뿐이고, 재정 흑자의 유산을 1조2천억달러의 적자로 바꿔놓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최근 오바마가 버핏세 도입을 주장하며 감세론자들의 정치적 지주인 1980년대의 레이건 대통령을 "공정 과세와 세금 증액을 위한 계급전쟁 전사이자 사회주의자"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을 '작은 정부'의 교주 격으로 아는 이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레이건이 1981년 집권한 뒤 무리한 감세를 추진하다가 1982년 증세로 전환했고, 증세를 위해 내세운 논리가 '공정 과세'였기 때문이다. 레이건의 증세는 1983년과 84년의 경기회복으로 이어졌고 레이건의 재선을 가능케 했다.
부자 증세 문제는 연방정부 차원에서만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미국 경제성장의 동력이던 캘리포니아주가 심각한 재정 적자를 견디지 못해 제리 브라운 주지사가 연수입 25만달러 이상 부유층에게 소득세를 더 물리는 증세 결정을 오는 11월 주민투표로 결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캘리포니아주는 증세를 하지 않을 경우 초·중·고의 학업 일수를 줄이고 주립대학 등록금을 올려야 하며, 노인과 극빈층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는 캘리포니아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대다수 주가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캘리포니아를 포함해 뉴욕·일리노이·애리조나·네바다·캔자스·메인 등 7개 주는 부실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 이처럼 선진국에서 부자 증세의 좌초는 선진국 경제는 물론이고 글로벌 경제에 큰 암운이 될 것이다. 선진국 부자들이 재정건전화와 미래를 정말 우려한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 필요한 때다. 지속적인 경기부양책으로 경제위기를 돌파한 오바마식 해법을 프랑스가 수용하고, 프랑스의 선택이 다시 오바마의 재선 성공이라는 긍정적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낸다면 부자 증세는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경우 2013년 '퍼펙트 스톰'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상학부 trust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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