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2일 금요일

검찰 “군사기밀 아니다”…경찰 ‘무리한 종북몰이’ 드러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22일자 기사 '검찰 “군사기밀 아니다”…경찰 ‘무리한 종북몰이’ 드러나'를 퍼왔습니다.

 “GPS 교란기술을 북 정찰총국에 넘긴 비전향 장기수 간첩을 잡았다”고 경찰이 발표한 사건에 대해 21일 검찰은 이아무개(74)씨 등 2명을 구속기소했지만, 북 공작원의 정체 등은 여전히 밝혀내지 못했다. 공안정국 조성을 위해 당국이 사건 실체를 부풀렸다는 의혹도 그대로 남았다. 지난 6월 초, 보수신문들은 경찰 발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여 대서특필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누구나 볼수 있는 팸플릿 수준
”형량 낮은 예비·음모 혐의 기소

문제된 장비 6억원대 고가에다
미 정부 승인 있어야 살 수 있어
검 “실제로 구입할 가능성 낮아”

지난달 30일 경찰이 발표한 이른바 ‘위치정보시스템(GPS) 간첩사건’은 이른바 ‘종북몰이’에 편승하려는 무리한 수사였음이 드러났다. 경찰이 군사기밀이라고 주장했던 자료는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팸플릿 수준에 불과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이런 사실을 확인했으나, 피의자들에게 지령을 내렸다는 북한 공작원의 실체는 여전히 밝혀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이를 간첩사건으로 기소해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 간첩 혐의 대폭 후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21일 북한 쪽의 지령을 받고 첨단 군사장비를 구입해 북한에 넘기려고 시도한 혐의(국가보안법의 간첩 예비·음모)로 이아무개(74)씨와 김아무개(56)씨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2011년 7월께 중국 단둥에서 북한 공작원이 이씨에게 군사용 안테나 계측장비인 엔에스아이(NSI) 4.0 등 군사기밀과 관련된 장비 입수를 주문했고, 이씨의 요청을 받은 김씨는 과거 항공사 기술연구소 근무경력이 있는 지인 정아무개(62)씨를 통해 장비 구입을 시도하다 실패했다는 게 검찰의 기소 내용이다.


검찰이 이들에게 적용한 ‘간첩 예비·음모’(2년 이상 징역) 혐의는 앞서 경찰이 지난달 30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밝힌 ‘간첩 목적수행’(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 혐의에 비하면 크게 후퇴한 것이다. 검찰이 이처럼 대폭 후퇴한 혐의를 적용한 이유는 이씨 등이 수집한 자료를 군사기밀이나 국가기밀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료가 인터넷 등에서 누구나 구할 수 있는 팸플릿 수준이기 때문에 이씨 등이 실물 장비를 구하기 위한 ‘준비 행위’를 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은 팸플릿을 입수한 것을 국가기밀 수집의 범죄행위가 완료됐다고 봤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어서 실물 구입을 시도한 간첩 예비 혐의로 기소했다”고 말했다.

■ 수집한 자료가 뭐길래 (한겨레)는 경찰이 확보했다는 ‘물증’인 전자우편을 입수했다. 이씨와 김씨, 그리고 정씨가 주고받은 이 전자우편을 보면, 정씨는 김씨에게 4차례에 걸쳐 엔에스아이 4.0 등에 대한 자료를 첨부파일로 전달했다. 이 가운데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첨부파일은 엔에스아이 4.0에 대한 자료뿐이었다. 이 자료는 그동안 경찰이 가장 중요한 증거로 꼽아온 것이다. 이 자료는 1쪽짜리 한글파일(hwp)인데, 실제 장비의 모습을 찍은 사진과 재원 정보를 담은 표, 제조사의 중국사무소 주소와 연락처가 담겨 있다. 이 자료들은 모두 장비 제조사인 니어필드시스템사의 인터넷 누리집(홈페이지)에 공개된 것들로 확인됐다.이밖에도 정씨는 김씨에게 ‘스텔스’, ‘에스에이치(SH)-2’, ‘조종사 헬멧’ 등 군사장비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제목을 단 파일을 전달했다. 이 파일들은 다운로드 기간이 지나 내용을 확인할 수 없지만, 파일 용량이 작아 엔에스아이 4.0에 대한 자료와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앞서 경찰이 이런 자료들의 군사기밀성 검토를 의뢰한 군 전문가 2명 모두 에 ‘군사기밀 여부를 따질 만한 수준의 자료가 아니었다’고 밝혔지만, 경찰은 군사기밀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이씨 등이 수집한 자료가 인터넷에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인 것으로 드러나 망신을 사게 됐다.

■ 실물 구입할 능력 있었나 검찰은 이씨 등이 실물을 구입하기 위해 이런 자료들을 수집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엔에스아이 4.0의 경우만 보더라도 실제로 이들이 실물을 구입할 개연성은 매우 낮다.엔에스아이 4.0은 미국 니어필드시스템사가 제작하는 안테나 성능 점검 장비다. 시가 6억원 상당의 고가인 이 제품은 군 전용으로 지정된 물품은 아니지만, 미국 상무부의 승인 없이는 살 수 없다. 니어필드시스템사 제품의 한국 배급을 맡고 있는 업체 관계자는 “본사에서 수출할 때 미 상무부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지 매번 확인한다”며 “어느 나라에 가는 것인지, 고객이 누구인지 알아야 판매가 가능한 제품이라 개인이 구매하긴 힘들다”고 밝혔다. 구입을 하더라도 본사에서 직원들이 현지로 와 직접 설치해주는 장비다.김씨와 정씨가 주고받은 전자우편에는 이 물건을 왜 구입하려 하는지, 실제로 북한에 넘기려 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 이들이 엔에스아이 4.0이 어떤 장비인지 제대로 알았는지도 의문이다. 자료수집을 담당한 정씨는 이 장비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해 전자우편에 ‘엔시아이(NCI) 4.0’이라고 표기하기도 했다.구속된 김씨와 이씨는 주로 북한과 농산물 등을 거래하는 사업을 해온 사람들로 무기거래나 군수업 등과는 거리가 멀다. 직접 자료를 수집한 정씨는 항공사 기술연구소에서 일하다 벤처기업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2004년 자신의 회사가 인수합병당한 뒤 8년째 사실상 실업 상태다. 검찰 관계자도 “실물 구입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간첩 예비·음모로 기소했다”고 말했다.이에 따라 실행될 가능성이 낮은 행위를 예비·음모한 것만으로 처벌을 받아야 하느냐는 논란도 예상된다.

■ 공안몰이 재미만 본 부실수사 경찰이 처음 이 사건을 발표할 때 대다수 언론은 이씨가 ‘비전향 장기수’ 출신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정치권에서 종북 논란이 한창일 때였다. 여러 보수언론은 비전향 장기수 출신에게 대북무역을 허용한 과거 정부를 비판했고, 비전향 장기수 출신들을 싸잡아 ‘언제든 간첩으로 돌아설 수 있는 인물’로 비난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이씨는 1988년에 ‘사상전향서’를 쓴 것으로 드러났다.이씨 등이 수집했다는 군사기밀을 두고도 온갖 억측과 과장이 난무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이 수집한 위치정보시스템 관련 기술이 북한에 넘어가 지난 4월 수도권 위치정보시스템 교란 공격에 쓰였을 것처럼 보도했다. 엔에스아이 4.0 기술이 넘어갔다면 북한의 로켓실험이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경찰의 부실수사와 보수언론의 허위·과장보도가 만나 공안몰이만 벌인 셈이다.

정환봉 유신재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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