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4일 청와대는 ‘이명박 정부 국정성과’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MB 정부의 주요 성과를 7개 분야로 정리한 이 보고서는 ‘과(過)’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없고 온통 ‘공(功)’ 일색이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자화자찬은 어떤 잣대로 봐도 도를 넘어섰다.
먼저 대북정책이다. 청와대는 원칙에 입각한 정책 추진으로 남북관계가 상호주의에 기초한 올바른 패러다임으로 전환됐고, 평화의 기반이 강화되었으며, 북한 내 위기상황 발생에 대비하고 통일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한 국내외적 여건이 마련됐다고 자평한다. 압권은 “북한의 선의에 의존하는 굴욕적 평화에서 한반도 평화결정권과 남북관계 주도권을 회복했다”라는 대목이다.
공개주의 원칙 강조하면서 물밑으로 북한과 비밀 접촉
이러한 과장된 평가는 거꾸로 MB 정부의 가장 큰 과오가 무엇인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바로 ‘원칙’을 신성시하는 태도다. 외교안보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국익의 증대에 있고, 원칙 또한 이러한 척도에서 평가해야 마땅하다. 그런 대원칙을 어기고 경직된 대북정책을 펴면서 나라의 안보를 위태롭게 했던 것이 MB 정부 아닌가. 더구나 상호주의 원칙에 투철했다던 MB 정부가 북에 16억8000만 달러 상당의 현금 및 현물을 지원하면서 되받은 것은 무엇인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두 차례의 로켓 발사, 그리고 2차 핵 실험이었다. 또 있다. 공개주의 원칙을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물밑으로는 북한 측과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밀 접촉을 했고, 상황이 여의치 않자 회담 내용을 폭로하는 진흙탕 싸움을 벌여가며 국제적 수모를 자초했다.
다음으로 ‘한반도 평화결정권과 남북관계 주도권의 회복’을 보자. 6·25 이후 최초로 우리 작전해역에서 군함이 피격돼 46명의 젊은이가 희생됐고, 우리 영토인 연평도가 포격당했다. 이것이 평화결정권인가. 이명박 정부 기간 내내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횟수는 노무현 정부(40회)보다 일곱 차례가 더 많았지만 경고 사격은 단 2회에 그쳤다. 청와대가 ‘굴욕적 평화’라고 평가 절하하는 참여정부는 북한 측 함정의 NLL 침범에 대해 다섯 차례의 경고 사격을 가한 바 있다. 더 가관은 통일 항아리 사업이다. 청와대 보고서는 “통일 항아리 등 민간 통일모금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통일을 위한 재정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확산에 기여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처참할 정도다. 지난해 국정감사 결과 통일부는 통일 홍보비용으로 7억여원을 사용했지만 통일 항아리 모금액은 3억8400만원에 불과했고, 총 기부자 633명 가운데 통일부 소속 공무원이 318명으로 절반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애물단지나 다름없게 된 사업을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라 포장하는 것은 보기 안쓰러울 지경이다.
청와대 보고서가 가장 자신 있게 기술했을 미사일 지침 개정 부분도 따져볼 대목이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포기를 강제할 군사적 대안도 마련했다”라고 자랑한 부분이 그렇다. 미사일 지침 개정으로 우리가 보유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의 사거리가 300㎞에서 800㎞까지 연장돼 북한 전역을 사정권에 둘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된 것은 분명 평가할 만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쉽게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탄두 중량이 500㎏ 이하로 제한돼 있어 사거리 연장의 의미가 크게 퇴색돼서다. 더욱이 우리에게 가장 큰 위협이라 할 북한 장사정포의 전진배치 문제는 미사일 지침 개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끝으로 주변국 외교를 살펴보자.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에 합의하면서 한껏 기대감을 높였지만, 현실 세계에서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당시 중국은 북한 감싸기로 일관했고 이 때문에 대북 제재는 사실상 무산되고 말았다. 게다가 탈북자 문제나 김영환씨 사건 등을 놓고 두 나라가 벌인 외교 갈등의 수위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다. 대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에 대한 과거사 사과요구 발언 이후 양국 관계는 65년 수교 이래 최악으로 돌아섰다.
권좌에서 내려오는 대통령의 업적을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참모들의 노력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요, 혹자는 그게 참모된 도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미화가 상식의 선을 넘어서면 조소의 대상이 될 따름이다. 주군을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만드는 불경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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