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일 수요일

'모두의 비정규직화'가 답이다.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3-01-01일자 기사 ''모두의 비정규직화'가 답이다.'를 퍼왔습니다.
'기본 바우처 제도'와 '노동시장 재편'에 대한 단상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경쟁을 시작할 무렵, 나는 “결선투표제”와 “투표시간 연장”을 주장해야 한다고 했다. 박근혜 후보를 포함한 세 후보가 모두 대선 본선을 치를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경쟁에 돌입하는 것이 단일화에 목매는 것보다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받아들이면 받아들이는 대로 그게 아니면 단일화의 확실한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지난 총선이 끝나자마자, 필자는 자유선진당인지 선진통일당인지에 속한 몇몇 정치인들을 만났었다. 민주당에 입당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새누리당에 입당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는데, 해괴한 것은 민주당에서는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이어지는 대선을 앞두고 말이다. 왜냐고? 지역 정서라는 게 원래 대선이 어떻게 되든, 지방선거와 차기 총선에 경쟁자가 하나 많아지는 걸 반기지 않아서일 거다. 그게 어느 쪽이 더 강했느냐에 따라 충청도 판은 사실 이미 결정이 나 있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필자 말이 씨도 안 먹힌 곳이 민주당이다.

대선이 중요한 지점을 지날 무렵, 필자는 중부권 시대를 선언하는 공약이 필요하다고 기사로 제안한 적이 있다. (해당 기사 보기) 이 글에는 현재 경상북도 북부와 강원도 남부 지역을 동서로 관통하는 고속도로 등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세종시 시대에 행정수도로 접근하는 중요 교통수단이고, 이는 오래도록 새누리당을 지지해 왔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의 정서를 바꿀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중부 지역의 동해안과 서해안을 연결하는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누군가에게 꺼냈다가 면박만 받았다. 복지는 밥만 복지가 아니다. 사회적 인프라는 현재 인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미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것이 이루어져야 사람들은 좀 더 넓게 퍼져 살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는 토목이 아니라 최소한의 복지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기를 진보적이라 표현하는 게 나름 멋은 있는지 모르겠다. 진보면 좀 더 배운 거고 보수면 못 배운 것쯤으로 생각하는 우스운 일도 분명히 있을 거다. 그런데 생각과 행동은 수구 꼴통 못지않은 ‘입진보’들은 세상에 널렸다. 이런 사람들이 가장 즐겨 담는 말이 ‘민주’고 ‘개혁’이고 ‘진보’다.

어느 정치철학자가 말했다. 정치인이 민주주의를 자꾸 얘기하면 그의 민주주의 의지를 의심하라고!

필자는 지난 대선을 평가할 마음이 별로 없다. 어떤 담론으로 우리 사회가 경쟁하고 합의했는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게다가 후보는 있는데, 선거를 책임진 사령탑이 여·야 모두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럽게 치러진 것이 바로 18대 대선이다.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담론 경쟁은 사라지고, 결국 박정희와 뗄 수 없는 이미지를 가진 후보와 노무현과 뗄 수 없는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여야의 후보가 되면서, 이번 선거는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지 깊이 있게 생각해볼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미지를 뗄 수 없으면 차라리 공·과라도 정확히 따졌어야 하는데, 이 또한 썩은 언론들로 말미암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니 이긴 쪽이나 진 쪽이나 지금 당장 인지부조화에 빠진 듯하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 할 선거행위 자체에 대한 의문이 속출하는 일은 그래서 위험한 사회 현상이다.

아마 이긴 쪽도 어리둥절한 상황일 것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이를 어떤 방향이든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쪽으로 해결해야 할 책임은 지금 대통령 당선인에게 먼저 있고, 그다음으로 여당과 야당, 야당의 후보였던 인사들에 있다. 이들이 혼란을 잠재우는 일에 나서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리더십이 얼마나 비겁한지 알 수 있다.

필자에게 누군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우선하여 해결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불안의 해소"라고 명확하게 말할 것이다. 그만큼 불안한 게 지금 소시민들의 심정이다. 이를 옳은 방향으로 풀어낼 방법은 그럼 어디에 있을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보편적 복지 같은 개념적 단어? 필자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노조 조직은 이미 자기합리화와 욕심에 물들어 있다. 이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귀족노조’에게 비정규직이나 해고자에 대한 함께 살기를 요구하는 일은 그래서 허망하다.

그런데 자기를 진보진영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정규직화만이 답이라고 떠든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을 떠들고 있다. 몇 사람이라도 인력을 고용해 사업해본 사람들에게 그런 말은 정말 씨알도 먹히지 않을 말이다.

그렇게 정규직화해서 얼마나 고용할 수 있을까? 정말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정규직. 정규직” 하는지 되묻고 싶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두의 비정규직화"만이 유일한 답이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다. 기본 생활을 보장하는 복지 체계가 바로 그것인데, 이 중에 관심을 둬야 할 것이 바로 기본소득 제도이다.

오래전부터 기본소득 제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이게 뭐냐면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얼마만큼 정부로부터 돈을 평생 받게 하자”는 것이다. 너무 혁신적이라 공산주의 운운할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지만, 이는 우리 경제의 구조와 5천 만에 불과한 내수 여력을 생각했을 때 매우 유의미한 방법이다. 필자의 졸견에 이 논의를 조금 수정해 “기본 바우처 제도”라 썼으면 좋겠다. 현금으로 주면 내수에서만 그 돈이 돌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바우처’로 지급하자는 것이다. 이 ‘바우처’는 외국에 나가 쓰지도 못하고 사치업종에서 소비할 수도 없다.

1인당 몇십만 원의 ‘기본 바우처’를 주면, 4인 가족 기준으로 최저한의 생계비 수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일단 생존의 불안을 해결하게 한다. 정부 또한 복지 전달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기업 입장도 달라진다. 국가가 기본적으로 주는 ‘바우처’를 고려해 어떤 경우는 급여를 얼마만큼 낮출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정규직에 대한 부담을 법적으로 없애주면 기업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필요할 때, 필요한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인력만 고용해 최대한의 효율을 만들어내려고 할 것이다.

기업의 최대 존재가치는 ‘존재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고용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업의 실패 상황에서 투자자와 경영자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일은 고용 해소에 따른 문제이다. 이를 우선 해소해야 한다. 그러면 투자자와 기업가는 창의적 업종에 투자하는 데에 두려움이 적어지고, 기존 기업도 지금처럼 정규직의 상대적 비능률에 매달려 고민하지 않게 된다.

그럼 노동자는 과연 불안하기만 할까? 그게 아니다. 일단 ‘기본 바우처’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노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평한 배분이다. 여기에서 공평한 배분이란 동일 시간을 노동하면 동일 임금을 주라는 것이 아니다. “동일 가치를 생산하면 그에 상응하는 동일 대가를 누구에게나 치러야 하는 것”이 바로 ‘공평한 배분’이고 진정한 ‘노동 정의’이다.

따라서 이 정의가 이뤄지면 노동자는 가치 창출에 노력하게 된다. 시간 보내면 돈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가치를 생산하면 그것이 1시간이든 1년이든 같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노동시장으로 바뀐다.

이렇게 되면 결국 노동시장은 지금처럼 사용자가 원하든 원치않든 횡포를 부리는 형태의 시장에 머물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능력을 제값을 받고 파는 노동시장으로 전환하게 되면 노동자의 권익 보호 또한 지금처럼 고공농성이나 제삼자의 손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일자리를 잃어도 ‘기본 바우처’를 토대로 소비를 줄이는 가운데, 재교육과 재충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기본적 생존권이 보장되니 착취하는 사용자에게 고용될 이유도 없다. 따라서 “모두의 비정규직화”는 일면 ‘노동자가 일자리를 선택하는 구조’로 노동시장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 말이 진보적 제안인가? 아니다. 이건 매우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문제일 뿐이지, 관념이나 이념에 머물러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문제가 아니다.

그냥 해법 연구 중 하나이고, 우리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든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을 계속 인지부조화와 공황장애에 시달리게 하지 마라! 상식의 붕괴는 혁명으로 통하는 법이다.

박정원 편집위원  |  pjw@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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