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IN 2013-01-22일자 기사 '헌법은 진보적인데, 헌재소장은 강경보수'를 퍼왔습니다.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는 헌법재판관 시절 사회 이슈에 일관되게 보수적 의견을 냈다. 헌재는 보수 정권의 선호와 판사 출신의 재판관 독점이 맞물려 보수성이 강해진다. 그러나 헌법은 세계 기준에서도 진보적이다
이동흡. 올해 출범하는 5기 헌법재판소의 수장 후보자. 2006년부터 2012년까지 헌법재판관으로 일했다. 박근혜 당선자와 협의를 거쳐, 이명박 대통령이 지명했다. 재판관 시절 보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의견을 자주 내 헌법학계의 우려를 사고 있다.
헌법재판소. 유명무실했던 헌법위원회가 1987년 개헌을 거치며 헌법재판소로 재탄생했다. 대법원과 몇 차례 영역 다툼을 벌이기는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 위헌 판결과 행정수도 위헌 판결 등 역사를 뒤바꾼 판결들을 내놓으며 위상을 정립해갔다. 하지만 대체로 사회 변화를 견인하기는커녕 사회의 속도를 따라잡기도 버거워한다는 평이 많다.

ⓒ시사IN 자료 헌법재판소(위)는 사회의 변화를 견인하기는커녕 변화에 뒤처진다는 평을 들어왔다.
그리고 헌법. 보수 세력은 스스로를 ‘헌법 수호 세력’으로 즐겨 부르지만, 따져보면 우리 헌법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진보적인 헌법이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박근혜 시대를 맞이해 헌법을 ‘진보의 보루’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헌법은 진보적이고, 헌재는 주저하는데, 차기 헌재소장 후보자는 강경 보수파다. 박근혜 시대에 반복될 풍경이다.

ⓒ헌법재판소 제공 이명박 대통령이 헌재소장으로 지명한 이동흡 후보자. 그는 경찰의 서울광장 봉쇄 등에 합헌 의견을 냈다.
이동흡은 보수 성향 의견 일색
이동흡 후보자는 4기 헌재(이강국 소장)에서 재판관으로 일했다. 2006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추천이었다. 재판관 시절 이 후보자가 내놓은 주요 의견은 대체로 보수 성향이 강했다.
헌법이 보장한 언론·집회·결사·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재판관 이동흡은 일관되게 인색했다. 촛불집회의 집시법 위반 여부를 다룬 야간 옥외집회 금지 위헌소송(2009년)에서 그는 합헌 의견을 냈다. 위헌 의견 5, 헌법불합치 2, 합헌 2로 갈렸다.
이른바 ‘미네르바 사건’으로 불린, 전기통신기본법상 허위통신 금지조항(2010년)도 합헌 의견이었다. 이 사건은 위헌 7, 합헌 2로 위헌 결정이 났다.
2011년에도 이 재판관은 ‘소수파 합헌론자’였다. 경찰의 서울광장 집회 차벽봉쇄를 두고도, 불합리한 공권력 행사로 볼 수 없다며 합헌 소수의견을 냈다. 역시 합헌 의견은 두 명이었다. 인터넷 사전선거운동 금지법안도 이 해에 한정위헌 판결이 났지만 이동흡 재판관은 합헌 의견이었다.
민족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가의 책임을 최소한으로 보는 의견을 냈다. 위안부 피해자 배상청구권 관련 헌법소원에서 헌재는 “국가가 분쟁 해결 절차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했다”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동흡 재판관 등 3인은 국가의 의무사항으로 볼 수 없다며 각하 의견을 냈다. 친일파재산환수 특별법(2011년)은 합헌 5, 한정위헌 2, 위헌 2로 합헌 판결이 났다. 이 재판관은 “친일 재산과 무관한 재산도 박탈당할 수 있다”라며 위헌 의견을 냈다.

ⓒ시사IN 자료 2010년 2월25일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왼쪽에서 다섯 번째)과 재판관들이 사형제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사건 선고를 앞두고 있다.
반면 개인의 권리문제에는 전향적인 의견을 냈다. 간통죄와 낙태 처벌 조항 모두 헌재 다수의견과 달리 위헌 의견을 냈다. 다만 사형제는 합헌 의견이었다.
전반적으로 보면 개인 권리 이슈에는 전향적인 반면, 사회 이슈에는 일관성 있는 보수색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야권은 이 후보자를 “보수색이 문제가 아니라 친일 재판관”이라고 규정하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두 건의 민족 문제 관련 판결에서 소수의견을 낸 것이 인사청문회에서도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사회적 기본권 문제보다도 여론이 훨씬 민감하게 반응할 이슈이다.
헌재는 ‘이중의 보수성’에 갇혀
이동흡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헌법재판소 소장이 된다고 해서 당장 극적인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재판소장도 위헌 소송에서는 재판관 9인 중 1표에 불과하다.
하지만 크게 보면 헌재의 보수화 경향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수준이라는 것이 헌법학계의 평가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과 국회와 대법원장이 각각 3인씩 임명하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3인 중 마지막 남은 송두환 재판관이 올해 3월 옷을 벗는다. 박근혜 당선자는 임기 중 한 명만을 임명하게 되지만, 대통령 임명 몫 나머지 두 명이 모두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재판관이다. 대통령 몫 3인이 모두 보수 정권에서 임명받은 인사로 채워진다.
국회 몫과 대법원장 몫은 지나치게 법조인, 그중에서도 판사 일변도로 흐른다는 지적이 많다. 헌법재판관은 구체적인 법리에도 밝아야 하지만, 그보다는 헌법이라는 사회의 기본합의 틀에 대한 철학과 신념이 더욱 중요한 자리다. 헌법이 판사들만의 전유물로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나왔다.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지난해 2월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추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조용환 변호사를 본회의 투표에서 부결시켰다. 야당 몫 추천권을 인정하지 않은 초유의 사태였다. 새누리당은 겉으로는 위장전입 문제나 천안함에 대한 태도 등을 물고 늘어졌지만, 내부적으로는 인권변호사인 조 변호사가 헌재를 진보적으로 이끌 것을 두려워하는 기류가 역력했다. 주로 법원에서 경력을 쌓은 판사 출신에 견주면 사회 현장에 밝은 조 변호사가 훨씬 부담스러운 카드였다. 새누리당은 무리수를 뒀고, 민주당은 물러섰다. 민주당이 다시 추천한 김이수 재판관은 판사 출신이다.
헌재의 법관 독점은 전직 재판관들도 우려하는 문제다. 다양성이 떨어지면 사회의 여러 시각이 반영되지 못해 헌법 정신을 구현하기 힘들어서다. 법조 전문기자 이범준의 책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를 보면, 12년 동안 헌법재판관을 지낸 김문희는 “법학자·정치인·외교관이 한 사람씩 필요하다. 법관은 헌법재판을 민·형사 재판처럼 하려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재판관 주선회는 “재판관 가운데 판사가 반을 넘으면 안 된다. 예전처럼 정치인 출신도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헌재는 대외적으로 보면 대법원과 더불어 사법부의 쌍두마차로 보이지만, 법조계 내부의 시각은 좀 다르다. 대법원이 본진이라면, 헌재는 방계라는 정서가 여전히 있다. 어느 법조계 인사는 “대법원장 추천 몫으로 헌재소장을 보낼 때 묘한 공통점이 있다. 다들 대법원장의 사법시험 후배이고, 또 내부적으로 대법관 경쟁에서 탈락한 판사를 선호한다. 그렇게 헌재에 대한 대법원의 우위를 심리적으로 확보한다”라고 귀띔했다. 이런 경향은, 노무현 정부 시절 헌재가 대통령 탄핵 사건과 신행정수도 특별법 등을 다루며 위상을 끌어올린 이후에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견제’의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따라서 헌재는 ‘이중의 보수성’에 갇히게 된다. 한편으로는 보수가 정치권력을 장악하면서 임명권자가 보수 성향 재판관을 선호하는 흐름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국회와 대법원장까지도 판사 출신으로 재판관을 한정하는 데 일종의 합의를 이루는 바람에 인적 구성의 다양성이 떨어져 보수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헌재는 헌법 정신에 입각해 사회를 이끌어가는 과감한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대체로 사회 변화를 한두 걸음 뒤에서 따라가는 결정을 내리곤 한다. 끊임없이 위헌 요소를 지적받아온 혼인빙자간음죄를 2009년에야 위헌 판결한 것이나, 언젠가는 위헌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위헌 결정은 한 차례도 내지 않았던 간통죄 등이 좋은 예다.
이는 우리 헌재의 역할모델이라고 할 만한 미국의 연방대법원과는 큰 차이다. 연방대법원은 사회적 논쟁이 첨예한 이슈에서 결정적인 판결을 자주 내렸다. 인종 분리 교육을 위헌 판결해 인종차별에 철퇴를 내린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 지금까지도 뜨거운 감자인 낙태 문제에서 사실상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 등은 미국사의 물줄기를 뒤바꾸다시피 했다.
물론 이런 모델이 좋은 것인지를 두고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는 로버트 달의 책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에 붙인 해제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헌재가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입법부의 결정을 무력화하는 것을 비판하며 ‘제왕적 사법부’라는 표현을 썼다.
헌법은 진보가 기댈 언덕
대체로 헌법은 보수가 즐겨 꺼내드는 어젠다였다.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한 헌법 제3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규정한 제4조 등이 단골이었다. 북한은 위헌적인 정권이고(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 이 위헌 상태를 해소하는 방법으로는 자유민주적 체제로의 흡수통일밖에 없다는 논리를 즐겨 구성했다. 이를 기반으로 보수는 상대에게 “대한민국의 헌법을 인정하는가?”라는 공세를 펴곤 했다. 진보 역시 헌법을 보수의 무기로 보아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정작 헌법학자들은 우리 헌법이 세계 기준으로 보아도 진보적인 편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러 신생국가에서 등장한 헌법은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보장하고, 근로권과 노동3권을 못 박는 등 진보적 경향을 보인다. 헌법 제정 당시 사회주의 세력이 강력해 제헌 헌법부터 진보 성향이 두드러진다.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 역시 노동3권은 물론 경영참가권과 이익균점권(사기업의 이익을 분배받을 권리)까지 규정한 최첨단 헌법이었다.
아주대 로스쿨 이헌환 교수(헌법학)는 우리 헌법의 진보적 조항들은 ‘장식적 헌법’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헌법학에서 쓰는 용어로, 헌법의 규정을 사회의 실제 수준이 따라잡지 못할 때 이런 표현을 쓴다. 결국 사회가 변화되어야 헌법도 장식적 기능에서 탈피해 실질적 의미를 갖게 된다”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제119조 2항이다. 국가가 시장에 개입할 권리를 못 박은 이 조항은 1987년 개헌 때 생겼지만, 이후 25년 동안 사실상 ‘장식적 헌법’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시장 통제와 복지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경제민주화는 2012년 대선의 최대 화두가 되었다. 한때 ‘장식적 헌법’이던 제119조 2항이 사회의 변화에 따라 실제 의미를 갖게 된 셈이다.
이 때문에 진보 일각에서는 헌법을 ‘진보의 보루’로 삼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헌법 사용 설명서)를 쓴 조유진씨는 “우리 헌법은 48년 제헌 헌법부터 연속성을 갖는 대단히 진보적인 문서다. 헌법은 전문부터 ‘기회 균등’과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목표로 낸다. 근로의 권리 역시 사실상 국가가 일자리를 증진할 책무가 있다는 수준으로 적극 인정한다. 보수 정권들이 ‘법치주의’니 ‘떼법 방지’니 아무리 외쳐도 헌법상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헌법이 박근혜 시대에 오히려 진보가 기댈 언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취재도움 : 배준용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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