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IN 2013-01-03일자 기사 '장수마을 세입자들이 위태롭다'를 퍼왔습니다.
서울시가 마을공동체에 예산을 편성했다는 보도를 보고 집주인들은 세입자를 내보내거나 임대료를 올리려고 했다. 내년이 더 걱정이다.
세입자이면서 기초생활수급자인 이씨 아저씨는 지난해 이맘때쯤 집주인이 집을 고치겠다며 그만 나가라고 해서 한겨울에 빈털터리로 집을 나와야했다. 다행히 근처의 송씨 할머니가 자신이 살던 방을 비워줘서 한데를 피할 수 있었다. 세입자 황씨 아저씨는 집주인이 바뀐 줄도 모르고 전 주인과 전세 계약을 했다가 집주인이라는 사람에게 집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마을기업 ㈜동네목수와 대책을 의논하던 중 다행히 새 주인과 전세 계약을 해서 계속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세입자 박씨는 평소에는 연락조차 되지 않던 집주인한테 앞으로 월세를 받아야겠으니 매달 30만원씩 내고 살든지 아니면 집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세입자 김씨 아주머니는 마을기업 ㈜동네목수가 집을 고치는 걸 아주 못마땅해 했다. 주인이 집을 고친다고 나가라고 하면 대책이 없어서다. ㈜동네목수 활동의 취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아주머니의 마음이야 누그러졌지만 집주인이 언제 나가라고 할지 불안한 건 여전하다.

ⓒ뉴시스 장수마을 전경. 주택 개량이 활성화되면 집주인은 세입자를 쫓아내려 한다.
위 사례는 마을공동체, 주민 주도 마을재생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장수마을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성북구청과 서울시청이 마을 만들기의 성공 사례로 장수마을 마케팅에 열을 올릴 때, 세입자들의 주거는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서울시가 마을재생이나 마을공동체 활동에 몇 백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는 한 줄 보도에 집주인들은 즉각적으로 세입자를 내보내거나 임대료를 올리려고 했다. 뭐든지 기회가 됐을 때 주택을 처분하려고 세입자부터 내보내려는 것인데 투자에 실패한 처지에서는 당연한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연락이 닿는 집주인에게는 서울시 정책의 허와 실을 설명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서로 협력할 것을 설득했고, 세입자들과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춰 현실적인 대책을 논의했다. 다행히 올 한 해는 큰 무리 없이 지나왔지만, 내년이 걱정이다. 도시가스가 들어오고 주택 개량이 활성화되면 집주인들의 마음이 들썩일 게 빤하기 때문이다.
㈜동네목수를 시작한 초기에는 언론사의 인터뷰나 취재 요청이 오면 장수마을이 안고 있는 문제나 고민을 전달하려고 열심히 응했다. 하지만 거의 대다수 언론 매체가 이상적인 마을의 모습을 그려놓고 마치 장수마을이 그 이상향인 것처럼 짜 맞추려고 할 뿐, 개발에 대한 기대와 투기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동네의 복잡한 이해관계,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취재를 요청하는 기자들에게 일일이 상황을 설명하며 실질적인 대책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취재와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게 되었다.
순환임대주택과 마을협정
주거 안정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목을 안 끄는 것이 세입자들에게 더 안전할 수도 있다. ㈜동네목수는 내년에 빈집을 고쳐서 집수리 기간에 임시로 거처할 순환임대주택으로 운영하고, 임대료의 급격한 인상을 제한하는 마을협정을 추진하려 한다. 순환임대주택이 있으면 집을 크게 고치더라도 사는 사람이 멀리 떠날 필요가 없다. 집주인이든 세입자든 더 적극적인 주택 개량이 가능해진다. 세입자에게는 갑작스러운 퇴거 위기에 몰렸을 때 안전판이 될 수 있다. 임대료의 수준도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다. 우리 동네의 적정 임대료 수준이 있고, 불가피하게 임대료를 올리게 되더라도 세입자가 감당하고 준비할 시간과 속도가 필요하다. 마을협정은 집주인도 세입자도 정든 이웃으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주민약속을 담아내려는 시도이다.
그동안 (시사IN)을 통해 장수마을과 ㈜동네목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하고 싶었는데 욕심이 과했는지 모르겠다. 내용 없는 글인데도 관심을 기울여준 모든 분께 그저 감사드릴 뿐이다.
박학룡 (동네목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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