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2일 화요일

재검표 논란의 핵심은 신뢰인데…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3-01-22일자 기사 '재검표 논란의 핵심은 신뢰인데…'를 퍼왔습니다.
주권자를 무시하는 오만한 정치권은 숙청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투표 후 개표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렇다.

▲ 개표장 전경. 4·11 총선 촬영

‘개함부’와 ‘부재자투표개표부’에서 투표함이 열리면 개표사무원들이 접혀 있는 투표지를 펴는 작업을 한다. 동시 선거일 경우 각급선거별로 분류한 후, ‘투표지분류기 운영부’로 옮긴다.

투표지분류기 운영부 사무원이 도착한 투표지를 분류기에 넣으면, 분류기는 후보자별로 투표지를 분류해낸다.

자세히 보면 후보자별로 두 개의 포트가 있다. A 포트에 100장이 차면 B 포트에 넣기 시작한다. 이때 개표종사원이 A 포트에 모인 100장을 꺼내 고무줄로 묶고 바구니에 담는다.

▲ 투표지 분류 장면. 4·11 총선 촬영

이런 식으로 1개의 투표함이 끝나면 후보자별 투표지와 함께, 미분류 투표지 묶음이 심사집계부로 옮겨지는데, 문제는 분류기가 ‘개표상황표’까지 출력한다는 것이다.

개표상황표에는 후보자별 득표수와 함께, 미분류 투표지의 양이 적혀 있다. 문제가 되는 지점은 이때부터다.

일단 심사집계부 개표종사원은 미분류된 투표지를 육안으로 확인해 분류할 수 있는 것은 후보자별로 분류해 합산하고, 무효투표지 등을 분류해 기록한다. 그런데 과연 각 100장씩 묶여 있는 후보자별 투표지 묶음을 선관위 개표 매뉴얼대로 개표사무원이 2~3번 번갈아 가며 정확히 육안으로 재확인 검사하느냐는 것이다.

다른 후보의 표가 들어간 ‘혼표’와 ‘무효표’를 가려내기 위해 정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면, 개표시간이 너무 이르다는 것이 이의를 제기하는 시민들의 주장이다. 적어도 투표가 끝난 오후 6시에서 7시간 정도가 지난, 다음날 새벽 1시경에야 당선 윤곽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주장인데, 3시간이 지나자 벌써 당선 윤곽이 나왔다는 것은 정상적인 수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수개표 작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현행법상 불법이다.

또한, 투표지 분류기라는 것이 집계하지 않으면 모르는데, 엄연히 집계를 일차적으로 내어 인쇄까지 해 심사집계부에 넘김으로써 이를 소홀히 하게 유도할 수도 있다는 것도 문제다.

만약, 투표지 분류기를 제어하는 컴퓨터에서 100장당 1장만 A 후보에게서 빼어 B 후보에게로 넣으면 결과적으로 2%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분류기를 제어하는 컴퓨터에 이런 기능을 넣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므로, 많은 이들은 분류기를 쓰더라도, 분류기는 그야말로 분류 자체만 해야 하고, 집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투표지 분류기 제어용 컴퓨터 화면. 4·11 총선 촬영

각 100장씩 묶인 투표지 묶음에 다른 후보자의 표나 무효표 등이 섞이지 않았는지를 사람의 손과 육안을 통해 2~3회에 걸쳐 번갈아가며 확인하고 검사한 후에 이를 집계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 제기의 주요 이유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기록·보고석’에서 집계를 낸 후 공식 개표 기록으로 발표되어야 하는데, 실제 현장에 가보면 이미 투표분류기 제어 컴퓨터가 출력한 개표상황표를 보고 개표참관인 등이 휴대전화 등으로 연락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아마 개표장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개표의 과정을 필자가 아는 한 대략 설명한 것이다.

▲ 개표상황표 수정 장면. 4·11 총선 촬영

필자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이번 대선에 명백한 부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국가정보원 직원 등의 문제는 간과할 일이 절대 아니다. 이는 박근혜 당선인부터 나서 사과해야 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무한 책임을 져야 옳은 일이다.

그러나 과연 투표와 개표 과정에까지 부정이 있었느냐는 문제에 이르면 애써 뭐라 단정하지 않으려 했다. 만약 부정이 있었고 이것이 밝혀진다면 이는 우리 헌정사가 중단되는 중대한 사태를 일으키는 일이기에 두렵기도 하거니와, 반면에 이런 의구심을 해결하지 않고 간다는 것 또한 장기적으로는 결코 옳은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어도 정치를 하는 이들이 뭔가 책임 있는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를 접지 않고 기다렸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나이 50을 이미 넘긴 나이의 필자는 이번 대선처럼 개표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이미 2002년에도 재검표를 한 적이 있지만, 그때에도 이런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회창 후보는 재검표에 나섰다. 그가 과연 재검표를 통해 결과가 뒤집어질 것이라 확신해서 재검표에 나섰던 것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신을 없애는 일 또한 후보로서 해야 할 책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정도에 이른 여론에도 한동안 묵묵부답이다가, 뒤늦게 나서 승복하자는 정도의 야당 후보 발언을 듣고 나니, 더는 글쓰기를 자제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이야말로 반민주적인 의식의 발로이며, 국민에 대한 존중이 손톱만큼도 없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마지막 보루이고, 가장 신뢰받아야 할 과정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 대하여 수십만의 시민이 직접 청원을 하면서까지 재검표를 요구하는데 어떤 후보도, 어떤 정당도, 단 한 명의 현직 국회의원도 나서지 않는 나라가 과연 민주주의 국가인가? 이런 식으로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처사를 서슴지 않는 이들이 과연 국민을 존중하는 정치를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혹시 발생할지 모를 자신에 대한 정치적 손해를 생각할 줄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있다면 이를 대변하고자 하는 후보, 단 한 사람 시민의 불신일지라도 그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 한 명의 후보도, 정당도 없다는 점에서 보면, 이번 대선이야말로 최악의 대선이었다고 나는 이제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예선이고 본선이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던 모두는 함량 미달의 후보였을 뿐이고, 모든 정당과 정치인들은 민주주의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하는 욕심쟁이에 불과한 사람들이었을 뿐이라는 점을 우리 국민에게 명확하게 인식하게 해준 게 바로 이번 재검표 소동이 남긴 선물이라는 점에서, 우리 국민은 이 선물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재검표가 불가능하더라도, 이런 의구심을 방지하기 위한 보다 정교한 제도 개선의 말 한마디를 꺼내지 못하다니… 얼마나 정치적으로 미련한가? 얼마나 비루한가? 한마디로 주권자를 무시하는 행위가 도를 넘어도 너무 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뿐이다.

장담하건대, 거대한 쓰나미는 어느 날 소리 없이 지금의 정치권을 덮칠 것이다.

박정원 편집위원  |  pjw@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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