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5일 금요일

로마시대 '그라쿠스 개혁'만도 못한 유통산업발전법


이글은 미디어스 2013-01-24일자 기사 '로마시대 '그라쿠스 개혁'만도  못한 유통산업발전법'을 퍼왔습니다.
[법으로 본 미디어]임노동자가 자본의 '노예'가 되어가는 풍경

요즘 길거리에 다니다 보면 한 블록도 채 가지 못해서 커피전문점, 통닭집, 편의점, 빵집 등이 밀집되어 있는 현상을 보게 된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가게의 간판이 내려지고 오늘 문을 연 가게의 이름은 깔끔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마트’. 바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체인점이다.  2013년 1월 1일 국회에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 법률에는 중소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점포는 의무적으로 월1회 휴업을 해야 하고, 영업시간 또한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로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월 17일자 매일경제신문의 기사에는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한 유통산업발전법의 규제들이 많은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다고 일침을 가하고 있다. 홈플러스가 신규 출점이 막혀 신규 출점과 관련된 업무의 인력을 감축하기 위해 부득이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는 현실을 보도하면서 어느 유통업계 관계자의 입을 빌어 “대형마트 1개를 열면 1000~1200명 정도 고용 효과가 있다”, “일자리가 복지인데 고용 창출을 법으로 막고 있는 셈"이라며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비판하고 있다.

▲ 지난해 11월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대형마트 농어민·중소기업·임대상인 생존대책위원회 회원들이 대형마트 영업시간과 의무휴업일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반발하는 항의 집회를 갖고 있다. 이들은 개정안에 따라 폐점 시간이 빨라지고 의무 휴업일 월 3일로 늘어날 경우 농어민과 대형마트 입점 소상인 피해가 늘어나고 서민 일자리는 오히려 축소된다고 주장했다.ⓒ 뉴스1

세계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고 이 때문에 최근 선진국의 경제마저 휘청거려 다들 한숨을 내쉬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아니다. 통계청의 최근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8.5%의 수치를 보여 청년들의 밥벌이가 얼마나 어려운지 대변해 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의 아니게 열심히 일하고 있던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분명 달갑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은 로마의 그라쿠스형제의 개혁을 떠올리게 한다.
기원전 163년경에 태어난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그보다 9년 뒤에 태어나 가이우스 그라쿠스. 그들이 생존할 당시 로마는 100여 년에 걸친 포에니 전쟁을 끝내고 영토를 확장하여 경제 규모가 급속하게 커졌지만 사회는 매우 불안한 상황이었다.
전쟁에 참전해야 했던 자영농들은 토지를 제대로 경작할 수 없어 그들의 농작지는 황폐화되었고 그러한 상황에서 수확물을 얻지 못해 경제적 빈곤을 겪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시칠리아,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로마의 주식량이었던 밀이 싼 값에 대량 유통되면서 대다수 자영농들은 몰락의 길을 겪게 되었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 무작정 도시로 몰려들거나 스스로 노예가 되는 길을 택했다.
귀족들과 부자들은 이처럼 주인 없는 토지를 서류 조작을 통해 자기 소유로 만든 뒤 전쟁 포로나 노예를 활용하여 라티푼디움(latifundium, 대규모 농장) 운영체계를 발전시켰다. 그 결과 빈부격차는 로마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형인 티베리우스는 호민관으로 당선되자 이러한 폐단을 바로잡기 위하여 토지 개혁에 착수했으나 부자와 귀족들에게 암살을 당하고 말았다. 동생인 가이우스도 후에 호민관에 당선되었는데 먼저 형을 계승해 평민 특히 빈민들에게 국유지를 분배하여 자영농을 육성하는 한편 자영농의 살림을 위해 곡식의 가격을 낮췄다. 또한 병사들이 무료로 군복을 공급받도록 했으며, 17세 이하의 복역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가이우스 또한 반대 세력과의 마찰로 끝내 자살을 택함으로써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자영농이 몰락하고 귀족과 부자들에게 토지가 집중되는 현상을 개혁하려 했던 그라쿠스형제의 개혁은 유통산업발전법이 나오게 된 배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이웃집 아저씨 아주머니가 운영하던 가게가 하나둘씩 문을 닫게 되었다. 동네 빵집이 문을 닫고 거대 유통업체가 운영하는 체인점 빵집이 들어서고, 이웃집 아주머니의 분식점이 있던 자리에 거대 외식업체가 운영하는 분식체인점이 문을 열었다. 동네 슈퍼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편의점이나 기업형 슈퍼마켓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떡볶이를 팔던 아주머니는 옆동네에 들어선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직원으로 취직하였다. 빵집 아저씨는 대형마트 안 빵집 직원으로 취직했다.    이것이 그라쿠스형제가 죽은 지 2100년이 지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대농장 라티푼디움이 대형마트로 바뀐 것일 뿐 자영업자가 몰락하고 그들이 임노동자(고대시대는 노예)로 전락해 가는 과정은 너무도 흡사하다.
대형마트가 창출한 일자리 숫자는 매우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막강한 자본력을 동원해 그동안 몰락시킨 대한민국 국민의 숫자 또한 그에 맞먹는다. 요즘 보편화되어 있는 프랜차이즈 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주(점포 주인)간 맺어지는 가맹점 계약은 가맹점주에게 불공정한 경우가 많다.
고비용의 인테리어를 가맹점주가 부담하도록 하거나 광고를 위해 고객들에게 나눠주는 행사 상품을 가맹점주가 부담하도록 하는가 하면 매출액을 본사와 가맹점주가 나누는 수익 분배 또한 본사에 유리하도록 계약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신규 가맹점을 내줄 때 기존 가맹점의 영업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거리제한 없이 무분별하게 가맹점을 내주는 경우가 많아 가맹점의 주인들은 열심히 일하고 빚만 잔뜩 지게 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선진국인 유럽을 가보면 도심 한복판에서는 대형마트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도심 교통이 혼잡해지고 주변의 상권이 몰락할 수밖에 없으므로 대형마트는 주로 도시 외곽에 위치한다. 그런데 기존의 유통산업발전법은 이러한 선진국과는 달리 대형유통업체의 신설을 너무도 용이하게 하여 우리나라의 경우 도심 한복판에서도 대형마트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번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원래 월 3회의 의무 휴업일, 대규모 점포의 영업시간을 밤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원래의 입법안에서 많이 후퇴한 셈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난을 받고 있다. 대형마트가 창출하는 일자리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의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된 일자리인지 묻고 싶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최저임금에 만족해야 하는 일자리. 그러한 일자리는 진정한 일자리 창출이 아니다.
2100년 전, 자신들의 토지에서 내몰린 자영농들을 다시 토지로 돌려보내기 위해 애썼던 그라쿠스형제. 이번 유통산업발전법은 그러한 그라쿠스형제의 개혁의 뜻이 담겨 있다. 더 이상 소상인들이 자신들의 점포에서 내몰리지 않도록, 기업과 상인이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상생의 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성춘일 변호사는 제51회 사법시험을 합격, 41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현재 서울 구로구 구로동 법률사무소 여송에서 일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사법위원회와 민생경제위원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아 청소년폭력예방재단과 서울변협이 함께 하는 청소녀지킴이 변호사단 상담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성춘일 / 합동법률사무소 여송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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