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3-01-26일자 기사 '‘지하경제 양성화’ 가능한가…“의미부터 불분명”'을 퍼왔습니다.
박근혜 당선인은 새누리당 후보 시절부터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했다. 새누리당 대선 공약집에 따르면 새누리당의 총선·대선 공약을 모두 이행하는 데 들어가는 예산은 총 131조4000억원이며, 예상 예산확보액은 134조5000억원이다.
박 당선인의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의 핵심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지하경제 양성화’다. 박 당선인 본인이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지하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말실수를 한 이후 지하경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꾸준히 높아져 왔다. 최근에는 경제지를 중심으로 지하경제 시리즈물이 연재되기도 할 정도다.
사실 지하경제 양성화가 박 당선인의 예산 확보 방안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더 큰 부분은 5년간 81조5000억원을 확보하겠다고 계획한 세출 절감이다. 새누리당 대선 공약집에 따르면, 박근혜 새 정부는 재정지출 축소, 경제개발 예산·교육비·국방비 등 지출에 대한 구조조정, 복지행정 개혁과 같은 여러 가지 방안을 통해 5년간 81조5000억원의 세출을 줄일 계획이다. 연간 약 16조1000억원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로 5년간 28조5000억원가량의 세금을 더 거둘 계획이다. / 이상훈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경제 양성화가 자주 논의되는 이유는 세출 절감의 현실성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2013년 정부 예산안을 보면 342조원의 전체 예산 중 법적으로 고정지출하게 돼 있는 부분이 약 180조원이다. 박 당선인의 세출 절감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부 예산 중 고정지출을 제외한 나머지 재량지출 160조원 중 약 10%를 줄여야 한다.
재량지출 10% 감축은 이미 이명박 정부에서 실패한 사례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매년 각 부처의 재량지출을 10%씩 감축할 것을 요구했지만 실제 재량지출 감축은 1~2% 수준에 그쳤다. 실제로 “마른 수건을 다시 비틀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의 볼멘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하지만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박 당선인의 입장은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여당 내부에서 재원 확보의 어려움을 들어 대선 공약을 일부 수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움직임이 일자 김용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현 국무총리 후보자)은 1월 17일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 당선인은 대선 기간 중 지하경제 양성화를 비롯한 세입 증가 분야에서 5년간 총 53조원의 추가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정부 재정지출 구조조정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더 많은 금액을 확보해야 할지도 모른다. 53조원의 세입 증가 방안 중 지하경제 양성화와 관련이 있는 액수는 28조5000억원이다. 나머지 24조5000억원은 비과세 감면 축소, 한국은행 잉여금 국고 납입 등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은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에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대선 공약집에 나온 ‘지하경제 양성화’의 정확한 의미부터가 불분명하다. 박 당선인의 대선 공약집에 따르면 새 정부가 2014년 한 해 동안 ‘지하경제 양성화’에 의해 추가로 마련할 재정규모로 명시된 것은 1조6000억원에 불과하다. 공약집은 ‘지하경제 양성화’와 자영업자·대기업의 세금탈루·세금체납을 분리시킨 것이다.

1월 12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국세청 업무보고에서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인수위와 국세청은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박 당선인 대선 공약집의 분류와 달리 세금탈루·세금체납 역시 지하경제의 일부라고 설명한다. 지하경제의 정의 자체가 국내총생산(GDP) 집계에서 누락된 모든 경제활동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금탈루·체납과 별개인 지하경제란 대체 무엇일까.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지하경제 양성화의 첫 대책인 ‘가짜석유 단속 강화’를 들었다. 이 점을 미루어 보면 세금탈루·체납과 별개인 지하경제는 가짜양주·가짜담배·불법복제 소프트웨어 등 합법적인 것처럼 보이는 지하경제 영역으로 추정된다. 박 당선인 측에서 마약·성매매 등 전통적인 지하경제(현행법상 불법)를 양지로 끌어낼 것인지, 노점상·상가 권리금 등 관습으로 굳어진 지하경제에도 엄격하게 과세를 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새누리당 대선 공약집은 세금탈루·세금체납과 별개인 ‘지하경제’의 규모가 370조원이라며, 이 중 6%를 양성화하면 2014년에 1조6000억원의 추가세수를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짜석유·가짜양주 등을 단속해서 이 정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일까?
새누리당이 제시한 ‘370조원’ ‘GDP의 24%’라는 지하경제 규모는 새누리당이 자체적으로 계산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하경제 연구의 중간값을 따온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지하경제 연구는 정부 통계자료를 역추적해 탈세액·현금거래 규모를 추산한 것으로, 세금탈루·세금체납을 별개로 구별하고 있지 않다. 즉 세금탈루·세금체납을 제외한 지하경제의 규모는 370조원보다는 적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경제학자들은 ‘370조원’ ‘GDP의 24%’라는 수치 자체에도 의문을 갖고 있다. 최희갑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학자들이 학문적인 관심으로 지하경제를 추산해볼 수는 있지만, 이 수치를 정책의 기준점으로 사용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지하경제의 성격상 정밀한 추산을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지하경제 추계는 설문조사를 활용하기도 하고, 가정 위에 또 다른 가정을 두고 계산해야 하는 등 정확한 액수를 구할 수가 없다. 정책단계에서 의미있는 수치는 국세청이 파악하는 수치인데, 국세청이 과연 지하경제를 370조원으로 추산할지 의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여러 가지 분석 방식에 따라 지하경제 규모는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지난 2010년 조세연구원에서 발표한 ‘지하경제 규모의 측정과 정책시사점’은 네 가지 방식으로 지하경제 규모를 측정했다.
산업연관표를 분석해 탈세액을 분석한 결과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29.9%로 나타났다. 반면, 지하경제 연구의 권위자로 자주 인용되는 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교수의 방법론을 한국적 방식에 맞게 변용한 뒤 구해본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17.1%였다. 사업소득세 탈루액만 한정해서 봤을 경우, 소득탈루 규모는 GDP의 3.1% 수준인 29조원에 불과하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한편에서는 국가가 선진화될수록 지하경제 비율이 낮아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통설일 뿐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하긴 어렵다. 연구자에 따라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점점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윤여필 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이 2005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지하경제는 1988년 GDP 대비 13.7%였다가 1993년에 18.8%까지 오른다. 1994년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지하경제 규모는 약간 낮아졌지만, 2000년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해 2003년에는 GDP 대비 21% 규모로 많아진 것으로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08년 발표한 자료 역시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가 1999년 27.5%였으나, 2007년에는 30%까지 높아졌다고 보고하고 있다.
반면 현재 대통령직 인수위 국정기획분과 인수위원인 강석훈 의원은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시절인 2008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2007년 20%로 추산되는 지하경제 규모가 2020년 10%까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학자마다 추정치도 다 다르고, 지하경제의 증감 경향 자체도 천차만별인 셈이다.
조세연구원장을 지낸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박근혜 당선인 측이 내세우는 것에 비해 실제 지하경제 양성화로 인한 세수 증대는 미미할 것으로 전망했다.
황 교수는 “조세정책을 오랫동안 살펴본 입장에서 볼 때, 세정을 강화하면 경제주체도 반드시 대응을 하게 되어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로 처음 1년 동안은 3조~4조원을 추가로 거둘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계속해서 그만큼의 추가세원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추가세원 확보라는 것이 요술방망이처럼 되는 게 아니다. 점점 국가채무가 늘어나고 예산을 쓸 곳은 많아지는데 역대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안 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서울 수서경찰서는 가짜석유 전국 유통조직을 검거했다. 가짜석유는 박근혜표 지하경제 양성화의 첫 표적이 됐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표현 자체가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 양성화의 본래 의미는 합법화에 가까운데 세금탈루를 적발하거나 가짜석유를 단속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하경제 양성화가 마약·성매매 등을 합법화하는 게 아니냐는 일부의 오해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황성현 교수는 “그동안 세금으로 포착하지 못했던 지하경제를 드러낸다는 의미로 보면 포괄적으로 양성화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둘러싼 또 하나의 논란은 국세청의 비대화 문제다. 국세청은 지난 1월 12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고액현금자료(CTR) 열람권을 확대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또한 국세청은 CTR을 활용할 경우 연간 최대 6조원의 추가세수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FIU의 자료를 국세청이 활용하는 것은 과세 인프라를 넓힌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국세청의 주장에 대해 금융위 측은 조세권력 비대화 우려 등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금융위의 반대가 아니더라도 세무당국과 정권이 유착해 문제를 낳은 최근의 사례가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상률 국세청장은 참여정부 시절 정권의 혜택을 본 것으로 알려진 여러 기업에 대해 전방위적인 세무조사를 벌였다. 이 세무조사는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황성현 교수는 국세청이 FIU의 고액현금자료 열람권을 획득하게 되면, 국세청의 권한이 막강해진다는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실효성도 의심스럽다는 입장이다. 황 교수는 “탈세가 아닌데도 세무당국이 미심쩍다고 해서 국민의 금융정보를 들여다보고 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불편을 줄 뿐만 아니라 인권침해소지도 있다”며 “국세청 말대로 6조원이 걷힌다 하더라도 1년은 가능할지 몰라도 경제주체가 대응하기 때문에 매년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이 지하경제 단속에 500명의 인력을 투입하겠다는 방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희갑 교수는 조세 인프라를 넓히기 위해서는 납세자들의 자발적인 의식이 중요하다며 “조세행정이 과도하게 촘촘해지면 납세자들의 자발성이 위축되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조세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세금을 정상적으로 납부하는 자영업자에 대해 국세청이 지나치게 압박해 온다고 생각해보자. 이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너무 세금을 거둬가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생겨 정상적으로 내오던 다른 세금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학자 ㄱ교수는 박근혜 당선인 인수위원회나 국세청의 지하경제 양성화가 마치 ‘발본색원’처럼 느껴진다며 “지하경제를 발본색원하려는 지금의 분위기는 박정희 시대의 화폐개혁을 연상시킨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쿠데타 이후인 1962년 6월, 은닉된 부정축재 자금을 끌어내겠다는 명목으로 전격적인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하지만 드러난 은닉자금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폐업하는 회사가 급증하는 등 산업계가 혼란에 빠지자 박 전 대통령은 한 달 만에 화폐개혁을 철회한 바 있다.
ㄱ교수는 “화폐개혁은 개발도상국에서 지하경제 발본색원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라며 “하지만 그동안 연구 결과를 보면 화폐개혁 등 급작스런 지하경제 양성화는 박 전 대통령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실물경제에 충격을 주기도 한다는 방향으로 정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2009년 1월,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퇴임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한 전 청장은 MB정권 들어 참여정부 주변 인사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세무조사를 벌여 과잉충성 논란을 빚었다. /박재찬 기자
향후 인수위는 어떤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을 추가로 내놓을까. 강석훈 인수위원이 교수 시절 내놓은 보고서는 정보화를 통한 과세기반의 확대, 금융거래 자료의 활용 증대 등을 대책으로 내놓고 있다. 국세청이 FIU의 고액현금자료 열람권을 요청한 것과 맥이 닿아 있는 대책이다.
조세경제원의 2010년 연구는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으로 전반적인 세부담 인하와 조세회피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을 들고 있다. 조세경제원의 보고서는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가 적은 국가에서 지하경제 규모가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말도 덧붙였다. 규제는 풀고, 세금을 줄이고, 법치를 세우라는 줄·푸·세를 제안한 셈이다. 최희갑 교수는 “줄푸세는 이미 외환위기 이후 15년간 우리의 경제정책을 지배해 왔다”며 “섣부른 지하경제 양성화는 복지재원을 확보하지도 못한 채 생산적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