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이코노미 인사이트(Economy Insight) 2012-11-01일자 제31호 기사 '사회적 시장경제론'를 퍼왔습니다.
1970년대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시절 우리의 모델은 독일이었다. 바로 ‘라인강의 기적’이다. 그때는 뭔지도 모르면서 경제 신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일념에 기업과 국민을 총동원했다. 박정희식 개발독재였다.
그럼 독일 경제 기적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라는 독특한 경제시스템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국가들이 채택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혼합경제 체제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 방식은 영국, 프랑스 등과 달랐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를 확실하게 지켰다. 사유재산·자유무역·가격자유화 등이다. 국가 경제의 목표 달성이란 이유로 그것들을 희생하지 않았다. 대신 연금·건강보험·실업보험 등 사회안전망 구축에는 정부가 적극 개입했다. 물론 여기까지는 우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소득과 분배의 균형, 대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였다. 성장을 이루면 그 과실을 균형 있게 분배하고, 소수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과 그것의 남용을 막아 국민적 부를 이뤄냈다. 정부·기업·노동자가 참여하는 ‘경영협의회’ 같은 제도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라인강의 기적은 성장론자들이 말하는 트리클다운(낙수) 효과가 아니라 진보적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동반성장과 균형발전을 통해 이룩된 것이다.
재밌는 것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확립한 콘라트 아데나워 전 독일 총리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경제장관이 중도우파 기독민주연합(CDU) 소속이었다는 점이다. 국내에선 좌파 정책이라 불리는 것들이 독일에선 우파 정치인들에 의해 시행됐다는 얘기다. 아데나워는 1949년부터 1963년까지 무려 14년 동안 집권하면서 사회적 시장경제와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그뿐 아니다.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사회적 시장경제는 독일 경제의 지향점으로 굳건하게 자리잡았다.
참 아이러니한 얘기다. 고도성장의 비결이 성장지상론이 아닌 동반성장론에 있었고, 그걸 추진한 주역은 좌파가 아닌 우파였다니. 우리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모든 이론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정당이 다르다고 같은 해법을 도출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대선 후보들이 일제히 복지 강화와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들고나왔다. 하지만 총론만 비슷할 뿐 각론으로 들어가면 입장 차이가 상당하다. 다만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를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중국에서도 최근 독일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는 얘기가 들린다.
정남기 (이코노미 인사이트) 편집장 jnamki@hani.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