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1-25일자 기사 '정말 비교되는 두 방송사 다큐멘터리의 역설'을 퍼왔습니다.
[황정현의 문화비평] SBS (최후의 제국)과 MBC (포퓰리즘의 역습)
다큐멘터리가 주는 강점은 ‘사실’에 있지 않다. 그 사실로 밝혀지는 맨몸의 진실에 있다. 아무리 데이터와 자료를 통해 사실을 나열한다 할지라도 그 사실이 나열되거나 해석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생길 수 있다는 저널리즘의 기초를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주장을 강요하지 않고 판단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해석과 논쟁들을 통해 진실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 다큐멘터리의 ‘진정성’은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고 담담하게 묘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SBS와 MBC에서 흥미로운 두 개의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하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다룬 (최후의 제국), 또 하나는 그리스 경제 위기를 다룬 (포퓰리즘의 역습)이다. 이 두 다큐멘터리가 흥미로운 이유는 하나는 사실을 왜곡하고, 하나는 자본주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1차원적 사실에 있지 않다. 4부작으로 기획된 (최후의 제국) 첫방송은 호화사치구매 1위국인 중국과 최강대국 미국의 빈부격차를 보여주었다.
구 소비에트연방과 함께 사회주의의 맹주로 군림했던 중국이 보여주는 자본주의의 ‘민낯’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모성이라는 가장 순결한 가치조차 돈으로 환산되는 현실은 빈곤을 “게으른 것”으로 치부하는 정치인들의 멘트와 만나 파괴력을 갖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은 가난을 방치하고, 사회적 책임의 문제를 회피하며, 과도한 빈부격차가 가능하도록 만든 시스템에 대해 굳이 데이터와 자료를 들먹이며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자본주의의 바깥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삶의 방식을 보여주며 자본주의의 ‘이유’에 대해 물을 뿐이다.

SBS <최후의 제국>의 한 장면
5명 중 1명이 굶을 수 밖에 없는 현실과 풍족하진 않아도 나눔을 통해 모두가 즐거워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것, 꼭 그들처럼 무소유를 실천하며 살진 않더라도 그 방법을 우리의 현재에 적극적으로 이식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이 담담하게 묘사해낸 프로그램의 미덕이다.
MBC (포퓰리즘의 역습)은 그와 다른 접근방식을 보인다. 그리스의 옛 영화와 현재의 모습을 대비시키며 ‘과도한 복지’가 수혜자들의 모럴해저드를 불러 일으켰다는 접근을 통해 ‘복지’의 폐해에 대해 지적하고, 또 그리스 경제 붕괴의 이유가 무분별한 복지 정책의 남발에서 비롯되었다는 ‘나레이션’을 통해 직접적으로 ‘설득’한다. 무분별한 복지가 경제를 어렵게 했을 수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이라는 형용사를 단정적 언어로 구사하기에 앞서, 무분별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정책에 대한 검증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자신들의 의도에 맞게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포퓰리즘의 역습)은 취재와 자료조사를 통해 현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도와는 반대로 만들어진 영상에 나레이션만 덧붙인 결과물이다.

MBC <포퓰리즘의 역습>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의 화법에 있어 중요한 것은 단정적 언어를 사용한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의 진정성이다. 탐사 저널리즘의 표본으로 인정받는 (PD수첩)의 작가들을 해고하고 PD들을 흩어지게 만든 MBC가 정확히 정반대의 화법과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포퓰리즘의 역습)을 통해 보여지는 MBC의 민낯은 다큐멘터리의 기본조차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참담함이다.
대표적 공영방송과 가장 자본주의적인 민영방송의 두 엇갈린 행보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최후의 제국)이 보여주듯, (포퓰리즘의 역습)이 보여주듯 자본주의가 꼭 나쁜 것은 아니며, 공공 지배구조를 가진 것이 꼭 좋은 것 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그 시스템을 어떻게 강제하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두 다큐멘터리는 그렇게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SBS <최후의 제국>의 한 장면
황정현·대중문화비평가 | forki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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