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7일 수요일

‘새마을학’ 창시자, 최외출 특보를 주목하라


이글은 시사IN 2012-11-07일자 기사 '‘새마을학’ 창시자, 최외출 특보를 주목하라'를 퍼왔습니다.
최외출 박근혜 캠프 기획조정특보가 주목받는다. 최필립·이진숙 회동이 폭로된 후 그가 정수장학회와 8차례에 걸쳐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문화재단 청산 절차도 마무리했다. 조용히 움직이는 실세다.

요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대선 캠프의 최외출 기획조정특보가 주목되는 이유는 박 후보와 관련된 민감한 현안에 그의 이름이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이 정수장학회의 MBC·(부산일보) 지분 매각을 위해서 만난 것이 언론에 폭로되어 이슈가 된 후 최 특보가 정수장학회 측과 8차례에 걸쳐 통화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일주일 뒤 다시 최 특보의 이름이 언론에 나왔다. 박 후보가 32년째 이사장을 맡고 있던 한국문화재단이 지난 6월 말 해산했는데 청산 절차를 마무리한 사람이 최 특보라는 것이었다. 최 특보는 한국문화재단 이사였다. 한국문화재단은 청산 뒤 남은 자산 13억원을 박 후보가 이사장으로 있는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로 넘겼는데, 최 특보는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의 이사로도 이름이 올라 있다. 

ⓒ뉴시스 최외출 특보(위)는 영남대에 ‘새마을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새마을학’의 주창자이기도 하다.

기자가 최 특보를 주목한 것은 한 달 전이었다. 추석 직전인 9월25일 박 후보가 소설가 이외수씨를 만나러 갔을 때 이를 사전에 조율한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애초 박 후보 방문에 부정적이었던 이외수씨는 최 특보를 만난 뒤 박 후보를 만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최 특보를 만난 뒤 생각을 바꿔 박 후보를 만난 이씨는 “최외출 특보는 나와 코드가 통했다. 외딴집에서 태어나서 이름이 외출이라고 했다. 가난이 바탕이 된 삶의 치열성이 나와 닮아있었다. 달변은 아니었지만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정치적 성향은 없어 보였고 정치에 뜻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라고 그를 평했다. 

후보 비서실에서 최 특보는 정호성 비서관과 함께 박 후보의 각종 연설문이나 기자회견문 등 메시지를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그를 한 캠프 관계자는 ‘천종산삼’에 비유했다. 단 한 번도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순수한 자연 야생삼을 가리키는 이 말처럼 정치권과 연계되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박 후보에게 조언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가정교사 5인방 중 한 명

1977년 영남대에 경상북도 ‘새마을장학생 1기(4년 전액 장학금)’로 입학한 최 특보는 1978년 박 후보를 처음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박 후보가 정계 입문한 뒤로 그는 줄곧 뒤에서 박 후보를 도왔다. 1998년 달성군 선거에 출마했을 때부터,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 그리고 2007년 대선 경선 때까지 늘 옆에서 도왔다. 안종범 의원, 김광두 서강대 명예교수, 김영세 연세대 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와 함께 박 후보의 가정교사 5인방으로 꼽히는 그는 이번 대선에서는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으로 참여해 정책 수립을 도왔다.   

박 후보와의 인연은 영남대에서도 이어진다. 2009년 교육과학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영남대 구재단을 복귀시킨 이후 기획조정실장과 대외협력부총장을 역임한 그는 노석균 교수와 함께 학내 대표적인 ‘박근혜 측근 인사’로 꼽혔다. 

한국새마을학회 초대회장, 글로벌 새마을포럼 회장, 영남대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 원장을 거친 그는 ‘새마을학’의 주창자이기도 하다. ‘새마을 운동가는 정당 가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유지에 따라 그는 새누리당에 입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때 김문수 후보 측에서 ‘당원이 아닌 사람이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당규 위반’이라며 그를 공격하기도 했다.

고재열 기자  |  scoop@sisain.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