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IN 2012-11-22일자 기사 '공소시효 끝난 고문 가해자를 어찌할꼬'를 퍼왔습니다.
고문 피해자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 확정을 받고 있으나, 고문 가해자들은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지원을 위한 법 제정이 시급하다.
‘수사의 편의를 위한 고문 등의 가혹행위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범죄행위이므로….’ 2000년 6월22일, 서울고법 형사3부는 이근안씨에게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납북 어부 김성학씨를 불법으로 체포한 뒤 72일 동안 감금하고 고문한 혐의였다. 법원의 이 같은 판결은 고문을 범죄로 인식하고 근절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듯했다.
거기까지였다. 간첩 조작사건에서 고문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진 사례는 매우 드물다. ‘고문 기술자’라 일컬어지는 이근안씨의 최종 형량은 7년에 불과했다. 2007년 대법원은 1972∼1987년 사이 이뤄진 시국·공안 사건 가운데 불법 구금과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등 재심 사유가 있는 사건 224건을 추려냈다.
김근태 부인 인재근 의원이 나서
최근 2∼3년 동안 재심을 진행하거나 무죄를 확정받은 고문 피해자는 70여 명. 하지만 간첩 조작사건에 연루된 고문 가해자들은 처벌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공소시효가 끝나서다. 추재엽 양천구청장의 경우도 고문 가담행위가 아닌 위증·무고죄로 처벌했다. 재일동포 윤정헌씨도 자신을 고문했던 고 아무개씨를 모해위증죄로 고발했다. 일종의 편법이다.

ⓒ인재근의원실 제공 ‘김근태기념 치유센터’ 설립추진위 모임에 참여한 함세웅 신부·인재근 의원·정동영 전 의원(왼쪽부터).
고문 피해자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경제적·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2011년 인권의학연구소가 고문 피해자 23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고문 피해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나타나 있다. 주로 1970~ 1980년대 국가기관에 의해 피해를 당했다고 답한 이들은 취업이 제한되었으며 고문 후유증에 의해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정신질환이다. 고문 사건 이후 피해자들은 우울증 23.1%(일반인의 평생 우울장애 유병률은 5.6%·2006년 통계청), 불안장애 17.9%(일반인의 2.8배), 정신분열증 11.3%(일반인의 20배)의 수치를 나타냈다.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의 자살 시도율은 39.5%에 달했다.
고문 피해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참여한 임채도 인권의학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고문범죄 처벌을 법제화하는 일이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과거 청산은 진실규명을 기점으로 △가해자 처벌 △피해자 지원 △기념(추모) 사업 △재발 방지 단계로 나뉜다. 한국 사회의 경우 국정원 과거사조사위원회와 진화위 활동으로 진실 규명에는 이르렀으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게 임 실장의 설명이다.
지난해 12월30일 영면한 김근태 전 의원 장례미사에서 함세웅 신부는 고문 피해자들의 치유를 위한 센터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0월,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설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 인재근 민주통합당 의원은 ‘고문방지 및 고문피해자 명예회복과 보상에 관한 법률안’을 준비하고 있다. △고문 피해자와 그 가족을 사회·경제적으로 지원하고 △고문·가혹행위 범죄는 공소시효를 배제하며 △형법 125조(폭행·가혹행위)를 고문행위로 명시하는 것이 그 골자다. 인 의원은 “늦었지만, 은폐된 고문의 진실을 밝히고 고문의 국가적·사회적 치유에 힘써야 한다. 국회가 머뭇거린다면 고문 피해자들은 또다시 외롭게 싸우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송지혜 기자 |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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