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6일 월요일

‘닥치고 단일화’는 정치쇄신에 길항한다 민주당과 후보단일화의 문제


이글은 미디어스 2012-11-26일자 기사 '‘닥치고 단일화’는 정치쇄신에 길항한다 민주당과 후보단일화의 문제'를 퍼왔습니다.

정리되는 안철수 전후보 집무실 25일 오후 서울 공평동 안철수 대선후보 선거사무실에 마련되었던 안철수 전 대선후보의 집무실이 언론에 공개된 가운데 캠프 관계자가 안 전후보의 집무실을 정리하고 있다. 2012.11.25/뉴스1

공식선거운동 기간 직전까지 역대 유례가 없는 지지율의 제3후보였던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면서 결선투표제와 같은 선거제도에 관한 논의는 더 어려워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87년 체제’의 선거제도에 대한 불만은 각계 각층에서 있어왔고, 보수진영의 ‘4년 중임제 개헌안’과 참여정부의 ‘중대선거구제 논의’와 진보진영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등 개헌 내지는 개헌에 준하는 변혁이 필요한 다양한 조치들이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현재의 선거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정치발전의 지체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치환하는 제도결정론에 빠질 우려가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각각의 제도들이 과연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산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심도있게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시 실행이 난망해진 결선투표제

그러나 대선에서의 결선투표제만큼은 위의 대안들만큼 혁신적인 조치들이라기보다는 ‘87년 체제’에 대한 하나의 보완으로 기능할 수 있는 정도의 제도였다 볼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개헌이 필요한 정책이란 주장과 법률개정만으로 가능한 정책대안이란 주장이 팽팽하지만, 다른 대안들에 비하면 비교적 그 제도의 효과를 예측하기 쉬운 미세한 수준의 조정임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결선투표제 논의가 진보진영과 정치학계 일각에서만 머물렀던 이유는 이것이 새누리당과 민주당 보수양당의 이해관계에 합치하지 않음은 물론이요, 평범한 유권자들의 수준에서 그 필요성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선전이 야기한 긴장함은 그런 지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3자구도가 팽팽한 상황을 새누리당 지지층은 오락프로그램 보듯 즐길 수 있었지만, 야권성향이나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지자들로서는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지 않으면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다시 정권을 내준다는 공포가 있었고, 안철수 지지자로서도 만일 결선투표가 있었다면 안철수가 2위로 충분히 올라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불공정한 언론/여론 공세에 무릎꿇고 말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처럼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결선투표제의 필요성에 공감할 유인이 생기는 상황은 결선투표제라는 제도의 시행동력을 위해선 좋은 상황이었다 볼 수 있다. 또 보수진영에서도 2002년을 떠올리며 이렇게 정체성이 다른 두 후보가 후보단일화를 통해 서로의 표를 빨아들이는 모습을 보느니 보다는 결선투표를 통해 제3후보의 지지층을 갈라먹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 것 같다. ‘후보단일화 안개정국’이 한참인 시점에 조선일보가 느닷없이 사설에서 결선투표제를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한 것이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다. (관련 기사)

그러나 서두에 말했듯 안철수 후보의 사퇴로 이번 대선에서의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상승했으되 결선투표제의 실행동력은 떨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는 결선투표제 없이 현행제도에서 후보단일화 논의를 밀어붙이는 것이 제 정파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 선거이기 때문이다. 물론 ‘염통이 쫄깃’했던 민주당 지지자들 중에서는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나, 상당수 지지자들은 또 당의 선택에 납득할 것이다. 지지자들이 각을 잡고 강하게 요구해도 당론을 바꾸기 어려운데 상황이 이렇다면 ‘유권자 절반의 동의’는 힘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전 비평기사에서 분석했듯 문재인 후보의 당선가능성은 안철수 후보 지지층에 달려 있는 상황이다(관련 기사).

그러나 ‘똥줄이 타는 건’ 대선후보와 그 주변 인물들일 뿐 민주당 전체는 아니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문재인이 되나 안철수가 되나 별로 신경쓰지 않던 상당수 민주당의 의원과 당료들이 ‘국회의원 정수 축소’와 ‘중앙당 폐지’와 같은 안철수 정치쇄신 발언에 반발하여 문재인 후보를 전격적으로 지원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기자는 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 방안이 올바른 방향이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자당 후보를 지키는데에 미온적이던 민주당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침해하는 정치개혁안에 강하게 반발한 현실은 민주당이란 집단 내부의 어떤 균열을 보여주는 바가 있다. 비록 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 방안이 바른 길은 아니었을지라도, 그가 ‘기득권의 저항’에 직면했다는 주장엔 일말의 진심이 있는 것이다.

후보단일화, 민주당의 '꽃놀이패'

민주당 입장에선 후보단일화 논의와 같은 꽃놀이패가 없다. 자당 후보의 지지율이 높을 때는 지지율을 근거로 경쟁자의 사퇴를 요구하고, 자당 후보의 지지율이 낮을 때는 무소속 후보나 군소정당에 대한 지지는 ‘바람’일 뿐이므로 좀 더 관망하자고 한다. 그러면서 언론과 여론을 앞세워 ‘안 될 놈은 안 된다’는 얘기를 유표하면서 결국엔 그 후보를 거꾸러뜨리고야 만다. 물론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 이후 후보단일화 논의를 너무 광범위하게 사용하면서 경기도지사 선거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처럼 자당 후보가 단일후보가 안 되는 경우를 겪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해프닝에 불과할 뿐 대선과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민주당과 진보언론과 진보지식인의 삼각동맹을 앞세운 여론전에 당해낼 이는 없다는 것을 이번에 그들은 증명했다. 정책성향으로 봐서는 당연히 안철수 후보보다는 문재인 후보 측에 기울여야 할 (구)진보정당 지지자들 중 일부가 안철수 후보에 (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정이입을 한 사연엔 ‘민주당발 후보단일화 논의’에 대한 염증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사실 2012년 대선의 안철수 후보나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의 유시민 후보처럼 본인의 지지율이 한때나마 민주당 후보를 앞선 경우엔 그래도 후보단일화 논의에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편이다. 훨씬 더 참담한 것은 양강후보의 등락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지지율을 가진 군소후보의 경우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의 패전의 멍에를 홀로 뒤집어쓰고 ‘노인제’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었다. 그가 선거 후 토로한 것은 ‘(후보단일화) 논의를 하려고 해도 민주당 측에서 전혀 접촉이 없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노회찬 후보에게 접촉한번 하지 않았으면서 경기도지사 심상정 후보가 사퇴하자 우상호 대변인의 이름으로 ‘노회찬의 결단을 바란다’는 논평을 냈다. 비용은 지불하지 않고 과실만 가져가겠다는 전형적인 ‘놀부 심보’다.
그렇다면 당시 심상정 후보의 사퇴 역시 민주당 소속 후보가 아니었던 유시민 당시 국민참여당 후보와의 교감을 통해 가능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2010년 선거당시 ‘심상정-유시민 밀약설’을 지금에 와서 검증할 수는 없지만 당시 그런 얘기가 파다했고 그 후 국민참여당도 합류하는 진보대통합 논의가 시작되어 통합진보당이 탄생한 것만은 사실이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이 밀약설의 진위여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유시민 후보는 같은 군소정당의 후보였기 때문에 향후 정국을 고려해서 심상정 후보에게 뭔가 약속하거나 배려할 것이 있었다는 정치공학적 진실이다. 물론 민주당 역시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에서 그랬듯 처음부터 협상을 하면 일부 후보를 ‘치워주는’ 종류의 보상은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보상의 몫도 군소정당에게는 적게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고, 민주당이 현 상황을 즐기기만 할 뿐 후보단일화가 거듭 요구되는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민주당이 다른 야권 후보에게 후보단일화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역사의 죄인’ 운운하는 것은 (물론 당에서 이런 표현을 쓰지는 않고 지지자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비판이지만) 적반하장에 가깝다. 야권지지성향의 유권자들이 후보단일화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저 1987년 대선 후보단일화의 실패의 기억 때문이다. 물론 당시 후보단일화 실패의 책임을 김대중에게만 물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절반의 책임은 가져간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정치세력의 후예들이 다른 정파에게 이후 세월 동안 후보단일화를 전가의 보도처럼 들이미는 현실은 코미디에 가깝다. 그들은 자꾸 현재의 시간을 1987년에 포개는 연극을 시연하면서, 그 연극의 악역의 위치에 자신들의 지도자인 김대중이 아닌 다른 후보를 밀어넣고 현명한 결단을 내리라고 촉구한다. 덕분에 1987년 이후 25년이 지났어도 상관없이, 그동안 새누리당 후보가 집권하더라도 독재의 가능성은 사라졌다는 객관적 현실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언제나 ‘1987년 김대중의 선택’ 앞에 직면해야만 한다.

어떤 '맏형'이 될 것인가

물론 민주당은 1987년의 책임을 지금의 민주당이 지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며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는 별개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정치평론의 언어가 우리를 1987년 이전의 상황으로 돌려보내는 일종의 ‘사이코드라마’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과거 역사의 책임을 부정할 거라면 ‘수십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제1야당’ 운운하며 무소속 후보와 군소정당 후보를 압박하는 일만은 그만둬야 한다. 
민주당은 이번 단일화 협상에서 스스로를 ‘맏형’이라 비유하면서 이미지 메이킹에 상당한 도움을 얻었다. 그런데 이 비유는 의도하지 않게 굉장히 들어맞는 구석이 있다. 이 ‘맏형’을, 형제 자매가 많은 시기에 태어나 자기보다 더 똑똑한 동생들은 공장에 보내고 혼자서 대학을 가는 한국 산업화시기의 그 맏형으로 이해한다면 말이다. 그간 이 ‘맏형’께서는 동생들에게 무언가를 양보하기 보다는 그 맏형의 지위로 인한 지대를 추구했다. 후보단일화 논리와 사표방지 논리로 야권내부에서 많은 이득을 보았다.
그러나 산업화시기 부모들의 맏아들에 대한 ‘선택과 집중’ 전략은 그 맏형이 대학졸업 후 번듯한 직장을 얻은 후 집안을 일으킨다는 기대에서 성립한다. 민주당이 그런 맏형이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많다. 2002년 대선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선전(당시 공표되지 않은 대선기간 여론조사에서 7~8%의 지지율까지 나왔다)을 막기 위해 자신을 지지해서 탄생하는 정권은 진보정당의 원내진출과 성장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의 호소 때문이었든, 정몽준 이탈로 인한 사표방지 심리의 발동 때문이었든, 권영길의 최종 득표율은 3.9%에 그쳤다. 하지만 참여정부에서조차도 소수정당의 문턱을 낮춰준 일은 없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민주당에서 추진한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에 뜻이 있는 이들이 1인1표 지역구 선거에 대한 헌법소원을 통해 헌재판결을 이끌어내어 생겨난 제도적 산물이다.
앞서 말했듯 소수정당 후보의 처지는 이번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도 더욱 처참하다. 그들의 처지가 난감한 것은 그들이 안철수 후보가 그랬던 것처럼 ‘사퇴’라는 카드를 유효적절하게 쓰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권자들은 유력후보의 사퇴만을 기억하며, 그때에라도 그 뒤를 떠받치는 정치세력이 아닌 인물만을 기억한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 무소속이었기 때문에 이번의 결단이 그에게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도 그의 결단은 그를 도와줬던 캠프 사람들에게는 전혀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다.
만약 당신이 한국 사회에서 민주당과 다른 이념과 가치를 지닌 정당을 키워나가야겠다는 목표설정을 한다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도대체 선거라는 국면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된다. 선거에 나오지 않아도 고사하게 되겠지만, 선거에 나와 완주한다는 이유로 고사당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광 팔아’ 얻은 이득으로 언젠가 제대로 한판 끼워보겠다는 야망의 계획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일단 민주당이 광을 사주지도 않을뿐더러, 광을 팔든 안 팔든 현행 체제에서 고스톱 판의 플레이어는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당장의 전략적 투표와 장기적 제도개혁이라는 두마리 토끼

결국 사람들은 민주당의 쇄신을 요구하고, 다양한 정치적 지향을 품는 정당이 존재하기를 바라지만, 이런 요구는 그들이 평소에 하는 행동에 비해 모순적인 데가 있다. 이런 요구가 가능하려면 공평동 진심캠프 앞에서 울려퍼진 ‘닥치고 단일화’란 구호가 사라져야 한다. 그런 구호가 있는 한 민주당은 지대를 추구할 것이고 정치쇄신은 난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 제도에서 어떠한 전략적 투표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 정권이 들어서 정치 자체를 후퇴시킬 위험성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가능한 일은 무엇일까. 현행 제도 하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략적 투표를 하되, 그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더 나아가 유권자들이 복잡한 전략적 투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적 개선안을 고민하는 것이다. 결선투표제는 이번에 대두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그 하나의 예시다. 여러모로 제도개혁에 대한 논의가 어려워진 시국이지만, 유권자들이 나름의 전략적 투표를 하면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나갈 때 무언가가 바뀔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이 거대한 촌극의 반복일 뿐이다. 

한윤형 기자  |  ahriman@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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