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6일 월요일

단일화' 이후, '경제민주화' 논쟁 제대로 하려면…


이글은 프레시안 2012-11-26일자 기사 '단일화' 이후, '경제민주화' 논쟁 제대로 하려면…'을 퍼왔습니다.
[기고] 독일인이 본 한국의 경제민주화 논쟁

이번 대선의 키워드는 결국 안철수다. 혜성같은 등장과, 폭발적 인기, 그리고 전격 사퇴까지. 그가 후보 명단에서 빠진 향후 대선 정국에서도 그에게 쏠리는 관심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관심 속에서 애초 그가 왜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됐던가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아이들 밥 먹는 문제', 즉 지난해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그를 정치로 끌어낸 계기였다. 당시 투표 결과가 나온 뒤, 이번 대선에선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주요 의제가 되리라는 전망이 무성했다. 극단적인 양극화에 대한 반작용이 임계치를 넘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새누리당 등 보수진영 역시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정작 대선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보수진영에서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듣기 힘들다. 야권 역시 후보 단일화에 온 힘을 뺐다. 오히려 국민의 눈길이 단일화 논란에 쏠려 있는 사이, 새누리당의 경제 및 사회 분야 공약은 다시 복지와 경제민주화로부터 멀어졌다.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 입장은 지금껏 한국이 따라왔던 영국-미국 모델에서 벗어나자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는 독일 또는 북유럽 모델에 가까운 모델로 가자는 뜻이다. 마침 독일 사회민주주의 모델에 정통한 지식인이 (프레시안)에 글을 보냈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한국 사무소 소장인 크리스토프 폴만 씨다. 독일 최초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프리드리히 에버트의 뜻에 따라 1925년 설립된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1933년 나치에 의해 활동이 금지되었다가 1947년에 다시 설립되었으며, 지금은 세계 각국에 사무소를 두고 모든 계층에게 민주주의 교육을 하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경제민주화 논쟁에 관한 크리스토프 폴만 소장의 글을 소개한다.

한국에서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주의' 혹은 '경제민주화'가 복지 확충과 더불어중요한 정치의제가 됐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또한 반가운 현상이다. 
복지국가를 만드는 게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기본적인 위험 상황에 대해 안전대책을마련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경제민주화가 다루는 문제는 복지, 그리고 그 기반이 되는 부의 창출 그 자체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보편적 복지 제도와 경제민주화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복지국가를 만들면서 함께 경제민주화도 실현할 때만 비로소 기회의균등, 사회 계층간 유동성 및 사회적결속과 연대를보다 더 잘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광범위한 복지국가를 구축함과 동시에 경제민주화를 함께 실현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스칸디나비아국가들이 이에 해당하며, 좀 부족하기는 하지만 독일,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정도를 추가할 수 있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관점에서 볼 때 진보적 의미에서의 경제민주화는 한국에서 어떤 모양을 띨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이 물음에 집중하고자 한다. 독일인으로서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관한 논쟁을 관찰해 보면,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개념이 재벌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에 주로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국경제에서 재벌이 차지하는 지배력이 엄청난 것을 고려해 볼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단지 이 문제로 국한된다면 너무 협소한 이해가 아닐까 싶다.

보다 철저하게 경제민주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개혁 프로그램은 다음 5개 핵심 요소를 포함해야 할 것이다.

1. 재벌과 재벌의 소유구조를 규제하는 목적을 지닌 경쟁법의 강화이다. 이는 최종적으로 개별재벌의 해체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국제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부분은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관련규정을 단계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2. 중소기업의 국내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광범위한 지원정책의 개발이다. 제도화된 산학협동, 세제혜택, 중소기업지원센터를 통한 국제화전략에 관한 조언 제공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독일에서 성공한 중소기업지원정책이 좋은 예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에서는 바로 이러한 지원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서 고도의 전문성을 획득하여 세계시장을 이끄는 중소기업들이 많이 생겨날 수 있었다.이런 두 가지 사안은 한국의 논의에서도 다루고 있는 것들인데, 진보적 관점에서 계획하는‚ '경제민주화'는 여기서 분명히 더 나아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경제분야에서 노동자의 여러 권리와 경영참여를 포함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다음 사안들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3. 노동자의 경영참여 확대이다. 직장평의회를 통해 혹은 기업노조를 통해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경우에만, 그들은 기업의 성패에 더 강 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경영조직법으로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보장하고 있고, 이 제도는 특히 경제위기에서 사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독일의 비교적 큰 기업에서는 감독이사회(Aufsichtsrat)에 사용자 측 대표와 노동자 측 대표가동일한 비율로 참가하게 되어 있다. 이로써 노동자들은 기업경영에 그들의 이해관계를 반영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정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공동의 책임을 지게 된다. 공동결정제도는 자본주의를 민주화시키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4. 노조가 지니는 이해관계 대표성을 강화시키는 일이다. 한국의 경우 노조의 조직률이 낮고, 기업경영을 담당하는 사용주와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조가 대립적인 관계를 이루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꼭 이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다른나라들의 사례를 돌아볼 때, 노조가 처한 법적인 상황을 개선하고 산별노조와 전국적 단위의 통합된 단일노조가 구성되면, 노조를 제도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을 뿐더러 이는 또한 사회의 평화에도 보다 많이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체교섭과 기업 내의 갈등 역시 사전에 예상하여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으로 이 분야에서 개선할 수 있는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o 한국은 국제노동기구(ILO)의 기본협약에서 아직 비준하지 않은 4개 핵심협약을 비준해야 할 것이다. 즉 협약 제29호와 제105호 (강제노동의폐지에관한협약), 그리고 제87호와 제98호(단결권과단체교섭권의원칙에관한협약)이다. 아직까지 한국이 상기핵심협약을비준하지 않은 것은, 세계적으로 책임감 있는 행위자로서의 한국의 역할과 모순되는 것이며, OECD회원국 중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국가에 부합하지 않은 것이다.
o 노조의 법적지위의 개선이 시급하다. 예를 들어 파업권, 집회 및 시위의 자유에 관련된 현재의 법적기본조건은 OECD표준 이하이다. 따라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TULRAA)을 적절하게 개정해야 한다.
o 기업들은 단체교섭을 가능하게 해주는 산업별경영자단체를 구성해서 노조가 진정한 산별노조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o 노조 내에서도 개혁이 있어야 한다. 우선은 개별기업 종업원으로서 자기기업 내의 특수한 이해관계만을 주장하는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업노조가 아닌 산별노조로 바뀌어야 한다. 산별노조로 발전해야만 하청업체 노동자의 이해관계도 효과적으로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o 노동조합의 양대 전국연맹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상호협력을 단계적으로 강화시켜당장은 가능하지 않겠지만 두 단체의통합이란 큰 목표를 향해 함께 노력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통합된 민주적 노동운동을 통해서만 노동자의 이해를 장기적으로 더 잘 대변할 수 있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독일과 다른 유럽국가들도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5. 비정규직노동자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 파견직의 규제 강화,• 계약직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 자체의 축소,• 평균임금의 최소 50%로 최저임금 인상.이와 같은 광범위한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며, 모든 것을 한꺼번에 실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는 한국시민들이 일방적인 성장지향을 원하지 않으며, 사회적시장경제와 유사한 경제모델을 추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 만큼 한국의 진보 진영은 보편적복지국가와 연계된 포괄적인 경제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면 좋지 않을까?
현재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게 할 때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경제민주화란 목표가 헌법의 현실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토프 폴만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한국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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