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7일 일요일

성난 구미주민들 "'사람 못산다'고 한마디만 해달라"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0-06일자 기사 '성난 구미주민들 "'사람 못산다'고 한마디만 해달라"'를 퍼왓습니다.
[현장] "정부가 준 음식은 라면과 김치 뿐" 불산 유출 열흘만에 장관 방문

"우리 집 비워줄 테니깐 여기 와서 살아봐라."
사고 난 지 열흘이 지나서야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마을 찾아온 유영숙 환경부 장관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지난 27일 구미 4공단 휴브글로벌 공장에서 발생한 불산 유출 사건으로 고통받던 주민들은 6일 아침 자체적으로 인근 백현 자원화 시설로 이주하기로 했다. 마을을 떠나기 위해  마을회관 앞에 모인 주민들에게 유 장관은 "염려하지 말라"고 말을 건넸지만 그들에겐 "눈 가리고 아웅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한 60대 아주머니는 "목도 아프고 머리도 아파서 약을 먹고 있다"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옮기면 얼마나 불편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환경부 장관은 그냥 왔다 가는 거 아니겠느냐.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이게 끝이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다른 주민들도 "화나지, 아무리 늦어도 5일 안에는 왔어야지"라고 말을 이어갔다.

▲ 경북 구미시 봉산마을을 찾은 유영숙 환경부 장관 조수경 기자 jsk@

노아무개(여·56세)씨는 이번 사태를 처리하는 정부 당국과 구미시에 대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듯했다. 그는 유 장관에게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 한마디만 해달라. 그거면 된다"며 "젊은 사람들이야 밖에 나가서 물과 밥을 사서 먹지만 나이 든 노인들은 거동도 못하고 굶고 있는 수밖에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평소 집 앞 밭에서 농사지은 채소로 반찬거리를 만들어 먹었지만 사고 이후 ‘어떤 채소로 먹지 말라’는 정부의 지시에 당장에 먹을 것들이 없어진 것이다.
주민들이 정부에서 제공한 음식을 먹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지만 이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 실상은 이와 달랐다. 라면과 김치가 제공됐을 뿐이고, 김치도 지난 5일에서야 도착했다고 한다.
노씨가 "조사한다고 하지만 사람 다 죽고 나면 할 건가"라며 정부의 늑장 대책에 대한 불만을 이어갔지만 유 장관은 수행 온 공무원들과 서둘러 자리를 떴다. 옆에선 "맞다, 맞다. 더 해라"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그는 이후 유 장관이 마을회관 앞에 다시 나타나자 "이제까지 이 공기 다 마시고 살았는데 나 죽으면 내 인생만 끝이다"라며 "우리 집 통째로 비워줄 테니 열흘만 살아라, 이건 정말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항의가 끝난 뒤에도 속이 답답하다며 계속 가슴을 주먹으로 쳐댔다. 
다른 동네 주민도 "정부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며 "괜찮다는 소리만 하는데 언론이 잠잠해지면 그냥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얼굴엔 분함과 함께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엑소더스(탈출)'를 결정한 것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는데 이대로 이곳에서 방치되듯 살 수 없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3시 반쯤 70~80대 노인들부터 간단한 세면도구 등을 챙긴 작은 가방만 달랑 들고 대절한 버스에 올라탔다. 한 노인은 "가슴이 벌렁벌렁하다. 목도 따갑고 기침도 나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마을회관 앞 의자에 앉아있던 설진우(79) 할아버지는 "집 떠나면 고생인데 이렇게 떠나는 게 괜찮을 리가 있나. 그래도 이곳에 있는 게 더 불안하니깐 간다"며 "요즘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라고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삶의 터전을 잠시 떠나는 봉산마을 주민들 조수경 기자 jsk@

이곳에서 만난 대부분의 주민들은 목 따가움, 두통, 피부 가려움증을 공통적으로 호소했다. 기자도 도착한 지 30분이 지나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매캐한 냄새는 가셨지만 대기와 농작물을 비롯해 마을 곳곳에 스며든 불산 탓이다.
마을회관 앞에 쪼그리고 앉은 한 아주머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 애의 팔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은 반점이 나타났다. 마치 바늘에 찔려서 쓸리는 기분이라는데 정작 병원에 가면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고 걱정했다. 주민들은 당장 드러난 증상보다는 이후에 나타날 증상을 더 걱정했다. 불산은 폐에 스며들며 몸 속의 마그네슘과 칼슘을 파괴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한 고농도 불산의 경우 피부에 직접 닿으면 단 30분 만에 침투해 뼈를 부식시키는 독성 화학물질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나무와 농작물에서 확연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수분이 빠져나간 채 누렇다 못해 시커멓게 쪼그라든 잎과 가지들은 마치 화학전이 휩쓸고 간 전쟁터의 그것처럼 보였다. 불산 가스에 노출된 지 하루도 안 돼 이런 상태가 됐다고 한다. 마을을 지나가는 한 40대 여성은 "마치 고엽제를 뿌린 것처럼 채소들이 폭삭 주저앉았다"고 설명했다.
논의 벼들도 얼핏 보기엔 누렇게 익어서 고개를 숙인 것 같지만 역시 불산의 습격을 받은 영향이었다. 한 정부 조사관은 "불산이 식물의 엽록소를 모두 파괴했다. 벼가 익은 것 같이 보이지만 다른 지역의 벼는 아직도 파란 색을 띄고 있다"고 지적했다.
슈퍼마켓에서 만난 손춘자(여·59)씨는 "우리 집이 이 마을에서 농사가 제일 잘 됐다"며 "그런데 이번 일로 1년 동안 지은 농사가 다 날아갔다"고 속을 태웠다. 27일 사고가 나자 대피하라는 지시를 받고 다음날 다시 마을에 돌아오니 이 지경이 돼 있었다는 것이다. 손씨는 "정말 믿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 불산에 노출돼 시커멓게 변해버린 나무 조수경 기자 jsk@

휴브글로벌 공장과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봉산마을을 둘러싼 산의 색깔 역시 역시 멀리 보이는 산과 분명 달랐다. 아직 푸르른 원거리의 산과는 달리 마치 단풍이 든 것처럼 불긋불긋했다. 봉산마을에서는 그 누구도 경험한 적이 없는 무시무시한 '환경 재앙'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정부와 시는 주민들의 재산 보상에 대한 대책만 세워나갈 뿐 피폭당한 주민들의 건강과 잠재적 오염원의 제거에 대한 대책은 전혀 세우고 있지 않고 있다. 그 영향이 향후 10, 20년이 지나서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환경 재앙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다.
사건 이후 거의 매일 봉산마을을 찾고 있는 이재혁 대구경북녹색연합 운영위원장은 "마을이 심각하게 오염돼 있다"며 "민가와 농경지 등 재산에 대한 대책은 세워지고 있는데 잠재적 오염원인 주위 삼림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5일부터 이뤄지고 있는 정부 차원의 조사도 재산권에 대한 보상 차원에 집중돼 있다는 설명이다.
이 위원장은 발밑에 떨어진, 바싹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을 발끝으로 건드리며 "이런 것들도 다 치워야 하는데…"라며 상황을 우려했다. 그는 "정부에서는 외부에 유출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비가 오면 나뭇잎 등에 축적돼 있던 불산이 빗물을 통해 땅과 지하수로 스며들게 되고 외부로 유출될 수밖에 없는데 이를 막을 시설이 없다"고 말했다. 구미를 유유히 관통하고 있는 낙동강에 불산이 섞여든다면 피해 지역은 광범위하게 넓어진다. 그로 인해 타 지역 사람 및 생태계 역시 그 위험이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봉산마을 주민들은 이곳의 수돗물로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전병숙(여·48)씨는 "수돗물로 그냥 씻고 밥을 해 먹는다"며 "어쩔 수 없다. 생수 한 병은 천원밖에 안 한다고 하지만 먹고 씻는 물까지 그렇게 돈 주고 살 수 없다. 또 소가 물을 얼마나 많이 먹느냐"고 말했다. '불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투였다. 하지만 구미환경청은 지난 5일 구미4공단 인근 피해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지하 관정 3곳에서 지하수를 채취, 분석한 결과 불소 농도가 모두 음용지하수 수질기준을 밑도는 기준이라고 밝혔다.

▲ 불산에 노출돼 시커멓게 말라버린 멜론 잎 조수경 기자 jsk@

사건 초기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도 장기적인 피해를 확산시키는 요인이다. 이 위원장은 "빨래를 널면 안 된다든지, 불산에 노출된 옷은 폐기해야 된다든지 등 초기 대응 중 어느 것도 주민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며 "처음 왔을 때 주민들은 마스크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런 점에서 주민들이 늦게라도 이주를 결정한 것은 매우 현명한 처사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사건 초기부터 마을을 통제했어야 한다고 보고 있었다. 사건 후 추석 때 이 마을을 찾은 친지들 역시 오염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그는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자동차를 가리키며 "차도 다 통제해야 한다. 바람을 통해 불산이 더욱 사람과 농작물에게 잘 스며든다"고 지적했다.
이곳 주민들에 대해서도 이 위원장은 "5년에서 10년 이상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건강검진에 대한 초기 대응도 미약해 의료원에 가서 한 시간 이상 줄 서 있는 것이 예사"라며 "연로한 분들이 기다리기 어려우니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일이 예사였다. 그런데 언론은 마치 거의 모든 주민들이 진료를 받은 것처럼 보도하더라"고 꼬집기도 했다.     
주민들이 떠난 후 다소 조용해진 마을회관 앞 천막 아래로 주민들 몇몇이 모여서 배를 깎아먹고 있었다. 이 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결코 안전하지 않은 행동인 셈이다. 봉산마을은 여전히 불산이란 '보이지 않은 불길' 속에 둘러싸여져 있었다.  

구미=조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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