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8일 월요일

불산누출 피해 열흘 넘도록 ‘정부’는 없었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10-07일자 기사 'ㆍ구미 주민들, 당국대책 없어 스스로 피난 행렬'을 퍼왔습니다.

구미국가산업단지 제4단지 공장 에서 불산가스 유출사고가 발생한 지 열흘째인 지난 6일 오후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임천리에서는 난데없는 ‘피난 행렬’이 이어졌다. 사고 다음날 “귀가해도 된다”는 정부의 말만 믿고 하루 만에 집으로 돌아왔던 주민들이 어지럼 증과 두통 등 건강 이상 증세에 시달리고, 농작물 고사 등 2차 피해도 커지자 다시 ‘기약 없는 피난길’에 나선 것이다.

절박해진 주민들이 “이러다 죽겠다”며 스스로 피난을 결정하는 동안 정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들 피해지역에 ‘정부’는 없었던 셈이다. 봉산리 임채호씨(51)는 7일 “열흘이 지나도 매캐하고 따가운 공기가 가시지 않는데 정부는 ‘별 이상이 없다’는 소리만 하고 있어 일단 살고 봐야겠다 싶어 마을 을 떠났다”고 밝혔다. 

정부는 사고 직후부터 허둥지둥하며 뒷북 대응에 급급했다. 지난달 27일 오후 3시43분쯤 봉산리 (주)휴브글로벌에서 사고가 발생했지만 반경 1.3㎞ 이내 주민에게 대피령이 내려진 것은 5시간 가까이 지난 8시20분이었다. 이미 인근 주민들과 공장 직원들이 불산가스를 들이마신 뒤다.

불산가스 누출사고 피해 지역 주민들이 7일 경북 구미시 산동면 구미디지털전자산업관(구미코)에서 마스크를 쓴 채 채혈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 연합뉴스

불산을 중화하는 소석회도 없었다. 소방당국은 급한 김에 중화를 위해 물을 뿌렸지만 불산이 물과 반응, 연기를 내뿜으며 오히려 급격하게 대기 속으로 확산됐다. 봉산리 주민 장모씨(62)는 “밤에 경찰이 대피하라고 했지만 경찰도 마스크를 하지 않고 있어 이렇게 무서운 가스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구미시는 사고 다음날인 28일 오전 10시쯤 대피령을 해제했다. 주민들은 당국의 말만 믿고 매캐한 냄새가 진동하는 마을로 돌아와 추석을 지냈다.

그러나 두통, 구토 증세 등을 호소하는 주민은 계속 늘어났다. 임천리 김한광씨(53)는 “귀가 후 초기에는 구미시 직원이 ‘대추 등 농작물을 먹어도 된다’고 했다가 문제가 생기니까 ‘먹지도, 건드리지도 말라’고 할 정도로 당국이 대책 없이 갈팡질팡했다”며 “이 바람에 주민들 피해만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은 지난 2일부터 “마을에 살아도 되는 건지, 떠나야 하는 건지 알려주고 대책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구미시와 환경부는 “주변 하천수와 지하수 수질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는 발표만 반복했다. 사고 발생 9일 만인 지난 5일에야 중앙재난합동조사단이 현지에 내려왔다.

결국 봉산리, 임천리 주민들은 주민회의를 열고 “정부가 어떤 해답도, 대책도 내놓지 않으니 우리 건강은 우리가 지키자”며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봉산리 주민 110여명은 백현리 구미시환경자원화시설로, 임천리 주민 190여명은 해평면 청소년수련원으로 떠났다. 중앙합동조사단은 8일 정부중앙청사에서 환경오염 실태 등 현장 조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구미 | 최슬기 기자 skcho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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