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조선일보 자유언론 의지도 상업적으로 이용?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0-21일자 기사 '조선일보 자유언론 의지도 상업적으로 이용?'을 퍼왔습니다.
“2등은 해야지” 동아투위 정신마저 왜곡했던 조선일보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을 기점으로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던 언론사 가운데엔 조선일보도 있었다. 조선일보는 1975년 3월6일 제작 거부에 들어갔다. 좀 더 직접적인 계기는 백기범·신흥범 기자의 해고였다.
두 기자가 조선일보에 유신체제를 홍보하는 글이 실린 일과 관련해 김용원 편집국장에게 항의한 것이 해고의 이유였다. 조선일보는 1974년 12월16일자 지면에서 유정회 소속 전재구 의원의 기고 (허점을 보이지 말자)를 전했다.
자유언론을 주장하는 기자들에게 매우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조선일보는 2년 전만 해도 기자들의 움직임을 그다지 탄압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1973년 10월 자유언론수호궐기대회를 가진 바 있다. 조선일보의 태도가 180도 바뀐 이유가 뭘까.
박지동의 (한국언론실증사2)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그전에도 자유언론실천운동을 지지했다기보다는 상술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고기자들로 구성된 조선일보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는 1975년 이와 관련한 진상보고서를 폭로했다.
요약하자면 동아일보가 자유언론수호선언을 하자 전통적인 민족지를 자처한 조선일보가 가만히 있으면 ‘사쿠라 신문’으로 오해받을까 간부들이 초조해 했고, 기자들은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는 것이 대의명분에 합당할 뿐만 아니라 회사의 이익에도 합치하다고 봐 회사의 암묵적인 승인 아래 ‘어용 행사’를 해왔다는 것이었다.
진상보고서는 “(자유언론실천) 선언대회 직후 회사 간부들의 일반적인 태도는 ‘잘들 했어. 2등은 해야지. 동아일보를 바짝 뒤따라가야지’라는 것이었다”며 “그러나 조선일보 기자들이 회사측이 생각하는 어용성의 한계 안에 머물 것을 거부하고 종전과는 달리 자유언론을 성실하고 꾸준한 자세로 실천해 가려 하자, 회사 측은 두 달이 못 가서 기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방우영은 기자들의 행보에 제동을 걸기 위해 1975년 3월 7일 “가차 없이 처단하겠다”라는 경고문을 붙였다. 그로부터 4일 뒤 경영진은 편집국에서 농성 중인 기자들을 끌어냈고 32명의 기자를 해고했다.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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