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2-10-22일자 기사 '민주당 ‘친노 퇴진’이 잘한 일인 까닭'을 퍼왔습니다.
쇄신이나 개혁 아닐 수 있지만 정국 주도권 가져올 것

▲ 오늘자 경향신문 6면 기사. 친노 참모들의 퇴진 선언은 역설적으로 친노세력의 대선에 대한 위기의식을 보여준다.
박근혜의 ‘정수장학회 자폭’에 묻혔지만 민주당에서 어려운 결단이 있었다. 친노계 측근으로 분류되었던 9명의 핵심참모들이 선대위 2선 퇴진을 선언한 것이다. 이들의 퇴진은 다자구도에서 박근혜와 안철수의 지지율에 뒤지는 문재인 후보 측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결단으로 보인다. 문재인 후보 측 역시 이들의 결단에 감사를 표하면서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 정치쇄신’이라고 화답했다.
그런데 친노세력에 대한 애정이 많은 문재인 후보의 핵심 지지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한다. 안철수 후보의 내용 없는 쇄신 요구에 민주당의 우유부단함이 만나면서, ‘친노’를 원래부터 안 좋아했던 민주당 내 비노세력들이 이를 기회로 그들을 부당하게 내친다고 보는 것이다. 또 민주당보다 훨씬 구태를 품은 정치세력이라 볼 수 있는 새누리당 측까지 민주당 문제에 간섭하는 말을 꺼내는 꼴을 황당하게 여기는 것 같다.
이런 심정은 이해할만하다. 사실 친노 인사란 꼬리표가 붙은 이들 몇 명을 뒤로 물리는 것이 민주당 쇄신이나 정치개혁과 크게 관련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해찬 대표나 박지원 원내대표에 대한 2선 후퇴를 요구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은 당장에 쇄신이나 정치개혁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런 ‘의지’가 있다는 것만을 보여줄 수 있는 입장이다. ‘쇄신’이 ‘인적 쇄신’이 되고 그 대상이 그간 중심적으로 활동했던 몇몇 인물로 압축되는 흐름 안엔 논리적 타당성은 없지만 국민을 향해 ‘자세’를 보여준다는 의미는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친노 인사들의 퇴진이란 선택은 완전히 ‘실기’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늦은 일이다. 완전히 실기한게 아니란 이유는 다행히 아직까지는 새누리당 친박계가 2선후퇴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일 새누리당이 먼저 인적 쇄신을 내건 다음에 민주당이 따라가는 형식이었다면 이 선택은 효과를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늦었다는 이유는 지금의 선택도 안철수의 지속적인 요구에 의한 것으로, 문후보의 지지율 상승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고육지책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 오늘자 경향신문 5면.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의 완주의지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단일화'에 대한 막연한 열망에서 벗어나 이전보다 사태를 더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가 말하는 정치쇄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 안철수 캠프에서도 그 내용을 확정짓지 못할 것이다. 그건 그들이 그 내용을 정말로 몰라서일 수도 있고 야권 단일화를 바라는 사람들보다 대선 완주의지가 강해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안철수 후보나 안철수 후보 측이 의견을 청취하는 그 ‘국민’들이 상상할 수 있는 쇄신이 무엇이냐는 문제가 남는데, 그것이 바로 인적 쇄신이다. 사람 바꾸고, 당명 바꾸고, 색깔 바꾸는 등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걸 바꾸라는 것이다. 논리적 흐름이 아닌 직관적 연상의 영역이며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효과를 본 그 방식이다. 실현가능성 문제를 보더라도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된 민주통합당을 깨고 다시 만드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결국 남는 것은 인적 쇄신 뿐이다. 그렇게 할 때에 문재인 캠프는 안철수 후보 측의 명분을 줄이고 정국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
조기숙 교수 등은 이러한 쇄신책이 ‘친노 왕따’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핏대를 올린다. 하지만 대선이 끝나면 결과가 어떻게 정리되든 실제로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은 어차피 돌아올 수밖에 없다. 쇄신 대상자들의 정치생명줄을 끊는 일이 아니란 것이다. 국민들은 그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친노계가 뒤로 물러섰다는 이미지만을 기억한다. 특히 민주당이 정권창출에 성공한다면 이들이 일을 할 기회는 훨씬 많아지는 것인데 몇 개월 간의 백의종군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문후보가 마음에 맞는 이들과 손발을 맞추지 않으면 일을 하기 어렵다고 항변하기도 하지만 새누리당 사람을 쓰라는 것도 아니고 민주당 내에서 사람을 쓰기가 어렵다고 항의하는 건 궁색한 변명이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민주당이 전혀 통제가 안 된다는 얘기일 텐데, 그러면서 정당을 가지지 않은 안철수 후보는 정국 운영을 할 수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정치공학을 넘어 ‘정치개혁’이 무엇인지 원리적인 고민을 하려 한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보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개혁엔 어떤 내용이 있었나? 정책적으로 본다면 평검사와의 대화, 열린우리당 창당, 중대선거구제 제안, 대선 임기와 총선 임기를 일치시키는 원포인트 개헌 제안,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 등이 떠오를 것이다. 이것들은 정책방향이 일관되지 않은 우충좌돌이며 심지어 자기들끼리 모순되기까지 한다.
가령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 구태세력을 청산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창당되었지만 이에 힘을 실어주는 정계개편을 하려다 대통령은 탄핵당했고 그 역풍으로 당선된 수많은 탄돌이들은 몇몇 진국도 있었지만 대부분 수준이 함량미달이었다. 열린우리당은 자신들이 호남토호라고 비판한 민주당보다 하나도 더 개혁적일게 없는 정치세력이었고 삼성 등 기업권력과의 유착문제에선 더 수구적이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문제라는 건 총선 후 대통령이 직접 주도한 4대개혁 입법의 파행으로 드러났다. 의원들이 당론만큼 진보적이지 않아 법안을 통과시킬 수가 없었다.
또한 중대선거구제는 지역정당을 제도적으로 근절하려는 시도였으나 일본의 사례를 검토했을 때는 양당의 기득권을 더 강화하는 제도였다. 소수파 정권의 수난을 겪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선 대선임기와 총선임기를 일치시키는 ‘원포인트 개헌’이 효율적이라 믿었겠지만 우연히 그 임기가 거의 겹쳐졌고 두 번의 선거에서 승리한 대통령이 염치가 없을 때 도대체 얼마나 민의를 거슬러가며 통치할 수 있는지는 이명박 정권이 처절하게 증명한 바 있다. 임기가 끝나가는 상황에서의 대연정 제안이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는 점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오늘자 한겨레 9면. 천만관객이 본 영화 <광해>는 오늘날 한국인들이 바라는 개혁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어낸 열망의 흔적이기도 하다. 문재인은 영화를 통해 노무현을 바라보며 안철수는 영화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개혁에 힘을 쏟았다고 기억한다. 비록 정책의 제안에선 효과가 없고 파행이 있었더라도, 그가 ‘국민을 위한 정치, 기득권을 내려놓는 정치, 탈권위적 리더십이 있는 정치’와 같은 것을 구현하려 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 안철수가 말하는 바라는 점을 생각하면 안 후보의 위치선정은 완벽하게 노무현의 모방이다. 그 역시 자신이 제도개혁안이나 정책 제안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런 가치들을 추구한다고 말하고 그 지지자들은 그의 ‘진정성’을 믿는다. 물론 안철수 후보 측이 노무현 대통령보다도 훨씬 정책적인 준비가 덜 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태의 핵심이라면 노대통령의 ‘진심’과 상관없이 그의 정치개혁 행보를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는 사람에겐, 안후보와 그 지지자들을 비웃을 어떠한 근거도 없는 셈이다.
즉 우리는 노무현과 안철수의 ‘진심’을 넘어 그 진심이 실행되는 방식의 평가 차원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 문재인 후보는 이 차원에 도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가 ‘진심’에서부터 시작한다면 문재인은 노무현의 ‘진심’이 실패한 지점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문재인을 ‘참여정부 시즌2’라 욕하지만, 사실 안철수는 참여정부의 출발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 퇴행적인 반복이고 문재인은 참여정부의 귀착점에 서 있단 점에서 생산적인 반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반복을 위해서라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자세 낮추기는 중요하다. 친노들이 ‘진리’의 차원에서 정치개혁안을 토론하려 한다면 정치학자들과 할 수 있을 것이고 참여정부 당시의 많은 시책들이 ‘삽질’이었단 걸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면 그들이 국민을 설득하는 차원에서 정치개혁을 논하려 한다면 당장 영화 의 천만관객이 떠올리는 그 지도자의 이미지를 차용하지 않을 수 없다. 친노 2선 후퇴를 ‘기득권 내려놓기’로 규정한 문재인 후보의 발언은 이에 근접해 있다. 차제에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용단을 촉구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여 안철수 측이 단일화를 회피할 수 있는 핑계를 없앤 후 정치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논쟁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영화 <광해>를 본 문재인 후보의 눈물 ⓒ연합뉴스
한윤형 기자 | ahriman@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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