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2-08-06일자 기사 '‘용역 폭력’의 재구성… SJM 부상 노조원이 겪은 ‘그날’'을 퍼왔습니다.
ㆍ“곤봉 들어 경찰인 줄 알았다”… 소화기 휘두르며 무차별 폭력
지난달 27일 오전 3시30분. 경기 안산 반월공단 자동차 부품업체 SJM에 다니는 한정록씨(49)는 회사에 남아 있던 노조원들에게 ‘긴급 상황’이라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내일이면 휴가인데 큰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공장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로부터 1시간여 후 공장에 들이닥친 컨택터스 경비용역들의 폭력으로 30여명이 다치면서 노조원들은 모두 공장에서 쫓겨났다. 한씨가 23년간 일한 일터였다. 한씨뿐 아니라 노조원 대부분이 그 새벽의 ‘아비규환’을 전혀 예감하지 못했다. 지난 3일 안산 인근 병원에서 경향신문 기자와 만난 7명의 부상 노조원들은 당시의 공포스러운 상황을 악몽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 오전 4시 ‘용역’의 등장오전 5시 어둠 찢은 “진격” 소리… 노조원에 곤봉세례
한정록씨는 오전 4시쯤 회사에 도착했다. 전날부터 SJM 노조에는 ‘사측이 직장폐쇄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노조는 임단협이 결렬되자 2주간 부분파업을 벌이고 있었다.
26일 밤부터 오후조 근무자 90%가 공장에 있었다. 한씨처럼 새벽에 연락을 받고 온 조합원까지 포함해 140~150명이었다.

지난달 27일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의 SJM 공장에서 노조원을 폭행했던 용역업체 경비원들이 5일 철조망을 쳐놓고 공장 정문을 지키고 있다. | 홍도은 기자
한씨가 회사 후문에서 들어가려고 하는데 용역들이 서 있었다. 그는 “헬멧을 쓰고 1m가 넘는 곤봉을 들고 있는 모습이 경찰 같았다”면서 “이 새벽에 경찰들이 왜 와 있나 하며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용역인 줄 모르고 차분하게 그 곁을 지나쳤다. 곧이어 후문에서 노조원과 용역들 사이에 대치 상황이 발생했다. “진격” “들어가면 죽여버린다”는 고함이 들렸다. 한씨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이후 4시20분쯤 정문으로 갔다. 노조원 30명 정도가 있었다. 후문 쪽에서 “빨리빨리 움직여”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뒤 용역 200여명이 정문으로 몰려왔다.
곤봉을 든 용역들은 본격적인 ‘공격’을 해왔다. 용역들은 노조원들에게 욕설을 하며 소화기를 뿌렸다. 정문 옆 경비실 앞에 서 있던 노조원들이 공장 내 작업장 쪽으로 후퇴했다. 한씨는 “노조원들은 비무장 상태라 정문에서 대치한 지 10~15분 사이에 ‘뚫렸다’ ”고 했다. 그는 “도망가는데 뒤에서 시커먼 무리가 쫓아오니까 정말 무서웠다”고 말했다.
한씨는 작업장을 10m 앞두고 소화기로 뒤통수를 맞았다. 피가 흘러 윗옷이 흥건하게 젖었다. 그는 지혈을 하기 위해 노조원들이 있는 2층으로 갔다. 119 구급차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는 천둥소리처럼 ‘쾅쾅쾅쾅’ 무거운 쇳소리를 들었다.
한씨는 오전 5시10분쯤 후문으로 빠져나와 단원병원으로 향했다. 한씨는 머리와 왼쪽 어깨 등이 찢어져 9바늘을 꿰매고 입원 중이다.
정문 앞 경비실 옥상에 올라가 있던 박동혁씨(34)는 용역들이 곤봉을 들고 까맣게 몰려오자 옥상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박씨는 “옥상 높이가 3m가 넘는데 누가 뛰고 싶었겠냐”며 “공포가 극심하다 보니 그런 곳에서 뛰어내리게 되더라”고 말했다. 박씨는 발뒤꿈치가 부러져 깁스를 했다. 진단은 8주가 나왔다.

■ 오전 5시 무차별 폭력의 시작오전 5시20분 쇳덩이 마구 던져 비무장 노조원 부상 속출
엄용헌씨(38)는 세수도 못한 채 오전 5시가 조금 전에 급하게 회사로 왔다. 엄씨는 “정문에서 용역들이 소화기를 뿌리며 들어가는 걸 보고 바로 작업장으로 갔다”며 “오전 5시20~30분쯤 사무실 집기로 계단을 막아놓고 20~30분 대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용역들이 자동차 부품 중 하나인 ‘벨로즈’ 담아놓은 걸 엎어뜨린 뒤 우리를 향해 막 던졌다”고 했다. 자동차 엔진에서 발생하는 진동과 소음을 줄여주는 핵심부품인 벨로즈는 반제품일 경우 끝이 칼날처럼 날카로워 더 위험하다.
한 차례 공격을 퍼부은 후 용역들은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했다. 엄씨는 “밖에 경찰이 있는 걸 확인했고 날이 밝아오니 여기서 끝내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곧 재개된 2차 공격은 더 심해졌다. 엄씨는 “용역들이 소화기를 분사해 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다른 부품인 ‘스페셔’를 2층으로 10~20분 동안 던졌다”고 했다. 스페셔는 끝이 화살처럼 뾰족해 화살과 다름없다. 엄씨는 벨로즈와 스페셔가 튕겨나오는 것에 머리를 맞아 다쳤다.
조재호씨(40)는 이날 용역들이 휘두른 곤봉에 온몸을 맞았다. 조씨도 이날 새벽 문자메시지를 받고 회사로 향했다. 정문을 지키다 용역들에게 밀려 작업장으로 물러났다. 작업장은 통로 불만 켜져 있는 상태였다. 조씨는 “앞은 깜깜한데 귀 옆으로 ‘씽’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어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주워 보니 벨로즈였다”고 말했다.
그가 2층에서 계단으로 겨우 내려갔을 때 15명이 달라붙어 곤봉으로 때리고 발길질을 했다. 조씨는 얼굴만 가리고 있었다. 다 때렸나 싶어 일어서는 순간 곤봉으로 머리를 맞고 고꾸라졌다.
용역들은 현장 사무실에서 노조원들을 골라가며 때렸다. 엄용헌씨는 “공포에 질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들은 안 때리고, 때리지 말라며 막는 사람만 골라 때렸다”면서 “출근 전 진압해야 한다.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느낌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진짜 죽을 것 같았다. 용역들에게 나갈 테니 퇴로를 열어달라고 했다. 오전 6시50분쯤 퇴각하는데 곤봉에 또 맞았다”고 말했다.
김익성씨(38)는 “용역들은 짐승을 때려잡듯이 몰이식으로 노조원들을 몰아붙였다”고 증언했다. 그는 용역이 휘두른 목봉에 머리를 맞아 7바늘을 꿰맸고 손목에 타박상도 입었다. 김씨는 “용역들의 장비가 다양하고 경찰들 것과 똑같다”며 “마치 사병들 같았다”고 말했다.
■ “경찰은 우리가 맞는 걸 보고도 고개를 돌렸다”오전 5시30분 피 흘리는 노조원 보고도 경찰은 구경만
노조원들은 용역들의 2차 공격이 한창 진행되던 무렵 2층에서 유리창을 통해 경찰이 배치돼 있는 것을 봤다. 용역들이 던진 부품 때문에 유리창도 깨진 상태였다. 이호성씨(46)는 “경찰에게 ‘사람이 다쳤다’ ‘살려달라’ ‘119를 불러달라’고 소리쳤지만 경찰은 들은 척도 안 했다”며 “부상자가 피를 흘리고 병원으로 실려가는 것을 보고도 경찰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동혁씨는 “오전 5시30분쯤 한 조합원이 112에 전화를 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영식씨(46)는 용역들에게 쫓겨 작업장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린 뒤 공장 울타리를 넘어 도망갔다. 그는 “함께 나간 동료들이 경찰들을 향해 ‘사람이 다쳤으니까 도와달라’고 외쳤지만 경찰들은 대답도 안 하고 앞의 방패를 땅에 짚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경찰 아닌가요. 이번 사태로 경찰의 명예는 곤두박질쳤다”고 말했다.
■ “왜 이런 폭력이 벌어지는지 이해가 안된다”병원에서 “믿기지 않는다… 폭력 사주한 사람 숨어 있다”
조재호씨는 “병원에 온 뒤 머리는 아픈데 마음이 붕 떠 있는 느낌이다. 걱정이 많다”고 했다. 조씨는 6, 7살 딸 둘과 갓 100일이 지난 아들이 있다. 그는 “내가 16년차인데 회사 들어와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다. 회사도 열심히 해서 빵을 키운 뒤 나눠 갖자고 했다. 그런데 빵을 너무 키웠나 보다”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조씨는 “회사가 돈 벌 때는 우리에게 가족이라고 하고 이제 와서, 그것도 한밤중에…억울하다”고 말했다. 휴가 때 아이들과 약속한 ‘물놀이’는 물거품이 됐다고 했다.
한정록씨는 “노조는 전면파업이 아닌 부분파업을 벌이며 융통성을 보였다”면서 “사측이 그렇게 심하게 공격한 것은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한씨는 “우리 회사에서 나한테 이렇게 했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한동안은 꿈꾸는 것 같았다. 남의 회사의 일이겠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노조원들은 “지금 언론이나 정치권에서도 거론되는 게 용역이랑 경찰에 대한 얘기”라며 “하지만 폭력을 행사하게끔 사주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안 나와서 불만”이라고 했다. 또 “대체인력이 공급됐다고 하는데 노조원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걱정”이라고 했다. “노조에서는 처음부터 비폭력으로 하자고 했다.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기로 했다. 깃발만 들어도 불법이라고 하는 세상에 어떻게 무기를 드나…”라고 말했다.
김향미·김경학·이혜리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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