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9일 수요일

[사설]안대희씨, 후배 법관들 볼 낯이 있나


이글은 경향신문 2012-08-28일자 사설 '[사설]안대희씨, 후배 법관들 볼 낯이 있나'를 퍼왔습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진영에 합류했다. 대법관에서 물러난 지 48일 만이다. 역대 대법관 중 퇴임하자마자 정당의 대선캠프로 간 것은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은 안 전 대법관은 “선거운동을 하는 건 아니다. 직접적인 정치가 아니라는 점에서 스스로 위안해본다”고 말했다. 본인에겐 위안일지 몰라도 국민들에겐 어이없는 해명이다. 대선캠프 참여가 ‘직접적 정치’가 아니라면, 그가 생각하는 정치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대법관은 법치와 정의 수호의 상징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사회적 갈등의 최종 조정·심판자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이 이들의 손에서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대법관 4인 교체기를 맞아 대법관의 자격과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 문제를 두고 논쟁이 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대법관이 갖춰야 할 자격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이다. 대법관의 정치적 성향과 그가 내린 판결 사이에 어떠한 인과관계도 존재해선 안된다. 새누리당 의원이든, 민주통합당 의원이든 대법원의 확정 판결 앞에선 고개 숙여 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 전 대법관은 퇴임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물러난 뒤에도) 공직자로 살아온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무엇을 하더라도 무리하지 않는 법조 원로로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러한 다짐은 두 달도 안돼 식언(食言)이 되고 말았다. 2003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하며 얻은 ‘국민검사’라는 별칭도 함께 묻혔다. 안타까운 것은 안대희씨 개인의 추락이 아니다. 그의 처신이 사법부와 대법관직의 권위에 치명적 손상을 입혔다는 점이다. 향후 특정 대법관이 특정 정당에 유리한 판결을 내릴 경우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퇴임 후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 위한 ‘투자’로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2009년 대법원은 치욕적인 ‘신영철 파동’을 겪었다. 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촛불 재판’을 맡은 판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사퇴 요구가 거셌지만 신 대법관은 지금도 건재하다. 안 전 대법관은 3년 만에 대법원의 치욕을 재현하고 있다. 일선 판사들은 “어떤 이유로도 해서는 안되는 선택을 했다. 사법부의 독립과 신뢰에 큰 상처를 줬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다. 안 전 대법관은 후배들에게 뭐라고 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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