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31일 금요일

박근혜, ‘유신’ 부정 안하면서 일부 사과로 위기 넘길까


이글은 경향신문 2012-08-30일자 기사 '박근혜, ‘유신’ 부정 안하면서 일부 사과로 위기 넘길까'를 퍼왔습니다.

ㆍ측근 홍사덕 ‘옹호 발언’으로 대선 논쟁 비화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검증청문회에서 “유신시대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헌신했던 분들, 희생하고 고통을 받은 분들에 대해서는 제가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 5·16 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라고 밝혔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그 청문회다.

같은 과거사 문제이지만 박 후보가 5·16과 유신을 보는 태도는 조금 다르다. 두 사건 모두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문제인 만큼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식의 유보적 태도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접근법에서 미묘한 차이가 감지된다. 

이는 두 사안의 성격이나 미치는 대상의 범위가 다른 데서 기인한다. 5·16 쿠데타는 군부가 총칼로 민주정권을 전복했다는 점에서 실체는 단순명료하다. 반면 유신은 일종의 친위 쿠데타로 민주정을 중단시킨 것이기 때문에 보다 복잡한 정치적 성격을 띤다. 정권이 민주주의 정지를 위해 스스로를 전복한 것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오른쪽)가 30일 한국문화원연합회 창립 50주년 기념식이 열린 서울 방이동 올림픽체조경기장을 찾아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그 결과 1972년부터 1979년까지 유신체제는 피해자의 규모나 우리 사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이 5·16에 비해 훨씬 광범위하다. 소위 ‘막걸리 반공법’ ‘막걸리 긴급조치’로 상징되듯 취중의 실언으로 감옥에 가야 했던 많은 피해자들이 아직 존재한다. 이 같은 기본권의 유린은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한 것이기도 하다.

중도보수 학자인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보수 쪽에서도 5·16은 쿠데타이지만 혁명적으로 마무리됐다고 보는 사람이 있으나, 유신은 빛과 그림자도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면서 “홍사덕 전 의원의 발언은 선거전략상으로도 실언한 것이라 생각하고 퇴행적 역사인식”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유신 논쟁’이 대선에 미칠 영향력도 5·16에 비해 더 크다는 분석이 많다. 박 후보 진영이 ‘역사의 판단’이란 유보적 지점에 머물러 있고, 의제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박 후보 측 한 관계자는 “당시 유신을 겪었던 세대들이 지금 우리 사회의 허리층에 있기 때문에 이게 참 껄끄러운 문제”라고 말했다.

박 후보 측은 일단 본질적인 유신에 대한 사과와 성격 규정보다는 전태일재단 방문, 인혁당 유족 방문 검토 등 피해자들을 만나는 화해 모습으로 우회하고 있다. 진정성 논란도 있지만 그만큼 박 후보 측으로선 이 문제가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내부에선 “유신시대의 아픔에 대해 박 후보의 얘기가 있을 것”(유기준 최고위원)이라고 정리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문제는 박 후보의 근본 인식이다. ‘아버지의 공과를 모두 계승’한다는 것이지만, 과가 더 큰 유신을 두고도 인식의 혼선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2007년 인혁당 사건이 무죄 평결을 받자 “나에 대한 정치공세”라고 했고, 그 후에도 “제가 진심으로 사과드리는 것은 민주화를 위해 순수하게 헌신한 분들인데 또 한 부류의 세력이 있고 이들은 친북의 탈을 쓰고 나라 전복을 기도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유신에 대해 사과하지만, 유신 시절 대표적 조작사건의 의혹을 받는 인혁당 문제에 대해선 ‘친북’의 의문을 드리우면서 유신의 정당성에 대한 여지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이날 대구 중견언론인 모임인 ‘아시아포럼21’ 주최 토론회에서 박 후보의 역사인식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아버지라는 걸 떨쳐버리고 전직 대통령으로 객관적 평가를 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김광호·이지선 기자 lubof@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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