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8일 화요일

MB식 ‘독도 정치’, 의문점은 이렇다


이글은 시사IN 2012-08-28일자 기사 'MB식 ‘독도 정치’, 의문점은 이렇다'를 퍼왔습니다.
임기 내내 한·일 동맹을 강조하며 과거사 문제를 회피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왜 갑자기 강경 카드를 빼들었을까.

메시지가 튄다. 메시지 자체의 적절성을 따지기 이전에, 아주 급격한 방향 전환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8월10일에는 독도를 전격 방문하고,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하루 전인 14일에는 “일왕의 사과가 필요하다”라는, 외교 관례를 넘어서는 강경 발언도 내놓았다. 일련의 일본 때리기 외교는 MB 정부가 4년 동안 펼쳐온 대일 외교 기조와는 영 딴판이다. 

임기 내내 MB 정부 대일 외교의 기본 방향은 ‘과거보다는 미래에 방점을 찍는다’는 것이었다. 과거사 문제는 제쳐두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런 기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대통령의 3·1절, 광복절 경축사다. 역대 대통령들은 두 경축사에서 대일 메시지를 천명해왔다. 기념일의 상징성이 있는 만큼, 과거사 문제가 중심 의제로 다뤄지곤 했다. 


MB는 달랐다. 2008년 3·1절 경축사에서 MB는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가는 길을 늦출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다. 2010년 광복절 경축사에도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일 관계는 아픈 역사를 딛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2009·2010년 3·1절 경축사와 2009년 광복절 경축사에는 아예 대일 메시지를 넣지 않는 방법으로 과거사 문제를 회피했다. 

MB 정부의 외교 전반을 디자인한 인사로는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이 손꼽힌다. 지난 한·일 정보협정 체결 파동 때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 전까지, 사실상 MB 정부의 외교 전략을 총괄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의 스승인 이상우 서강대 교수(정치학)도 MB가 외교안보상 위기 국면 때면 ‘조커’로 활용하곤 했던 막후 실력자로 꼽힌다. 

이상우·김태효 사제의 핵심 의제는 ‘가치동맹’이다. 동북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공유하는 국가는 일본뿐이므로, 동맹의 핵심 축은 한·일 동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김태효 전 기획관의 2006년 논문 ‘한·일 관계 민주동맹으로 거듭나기’를 보면, 한·일 관계를 ‘민주동맹’으로 전환한다는 목표 아래, “현재 한·일 관계를 압도하고 있는 과거사 이슈와 이에 대한 민족주의적 접근이 야기할 수 있는 파행 요소를 적시”한다고 되어 있다. 김 기획관은 2001년에 쓴 다른 논문에서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 자위대가 역할을 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내놓아 물의를 빚기도 했던 강성 한·일 동맹파다.

김태효 실각 이후 방향 전환?

‘김태효 구상’은 고스란히 MB 정부 대일 외교의 기본 전략이 된다. 과거사 이슈가 불러올 파행 요소를 잘 관리하면서, 한·일 동맹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동북아 구상과도 일치한다. 미국의 기본 구도는, 미국에 잠재적 위협이 될 중국에 맞서 한·일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다.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이 이미 존재하므로, 한·일 동맹의 등장은 곧 한·미·일 삼각동맹의 공고화를 뜻한다. 

ⓒ청와대 제공 8월10일 이명박 대통령이 전용 헬기에서 독도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런 미국의 구상에는 늘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족쇄였다. 그런데 MB 정부가 ‘과거사보다는 미래를 강조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MB는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니 의심할 필요가 없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이상득 의원의 2008년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의미가 분명해진다. MB 외교에서 ‘친미’와 ‘친일’은 사실상 한 덩어리였던 셈이다. 

지난 6월 한·일 군사정보협정 파동은 이런 한·미·일 가치동맹 외교의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상우·김태효식 외교전략에서 보면, 군사정보협정은 한·미·일 공조를 한 단계 올려놓을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정무적 관점에서 보면, 일본을 불신하는 대중 여론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대형 인화물질이다. 김태효 전 기획관의 표현대로라면, 관리가 필요한 ‘민족주의적 파행요소’인 셈이다. 한·일 군사정보협정은 체결 직전까지 추진됐고, 일반에 공개되는 순간 거대한 역풍을 맞았으며, 결국 김태효 기획관의 실각으로 이어졌다.

김태효 실각 이후, 대일 메시지가 돌연 공세 일변도로 급격히 전환된 것은 의미심장한 변화다. MB 정부의 외교전략 자체가 바뀐 것일까. 하지만 전략 차원의 변화보다는, ‘김태효 구상’에 억눌려온 정무적인 목소리가 다소 무질서하게 분출하는 양상으로 봐야 한다는 평이 많다. 

현 정부 인사들은 대체로 최근의 대일 압박을 “방향 전환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다”라고 옹호한다. 외교전략의 방향 전환이란 곧 이전 전략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인 동시에, 그런 방향 전환의 전략적 이득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방향 전환이 아니다”라고 부정해버리는 것이 가장 간편하다. 청와대에서 ‘김태효 구상’에 반대해 충돌하곤 했던 한 청와대 비서관 출신 인사는 “이상우·김태효 사제가 중시하는 한·미·일 동맹에 무게가 실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사 문제의 분명한 해결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청와대 내에 적지 않았다. 당장 MB 본인도 몇 년째 독도를 가려고 했다고 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지지율 상승, 그 강력한 유혹

반면 이런 부담에서 자유로운 외부의 관찰자들은 좀 더 냉소적이다. 과거 정부에서 최고위직을 지낸 한 외교계 인사는 “둘 중 하나다. 독도 방문을 몇 년 동안 생각했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거나, 몇 년 동안 본인의 대일 외교전략을 스스로 이해를 못 했거나”라고 신랄하게 평했다. 임기 4년을 이끌어온 ‘김태효 구상’과 최근의 대일 압박은 결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연속선상으로 볼 근거가 없다는 평이다. 

ⓒ청와대 제공 2008년 아키히토 일왕과 악수하는 이 대통령(아래 왼쪽 두 번째).

방향 전환의 외교적 이득도 분명하지 않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CBS 인터뷰에서 “독도는 우리가 시간을 두고 계속 주권을 행사하면서 축적해나가면 주권이 응고되는 상황이고, 국제사회도 이런 방향을 기대하고 있다. 지금 스스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라고 말했다.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의사를, 한국은 거절 의사를 밝히는 등 논란이 확산 중이다. 

특히 MB의 ‘일왕 사과’ 발언은 얻는 것은 불분명한데 자극은 과도해서, 명백한 외교적 실책이라는 평이 많다. 청와대도 “사전에 계획된 발언이 아니다”라며 파장 축소에 들어갔다. 결국 대통령이 말실수를 했다고 인정하는 꼴이다. 일본이 통화 스와프 축소 카드를 뽑아든 명분도 독도 방문보다는 ‘일왕 사과’ 발언이다.

MB 정부의 대일 압박이 ‘연속성’보다는 ‘돌발’에 가깝다는 건 미국의 반응을 봐도 알 수 있다. ‘한·미·일 동맹’이라는 동북아 구상의 기본 그림이 어그러질 위기에 처한 미국은 즉각 반응을 내놓았다. 리처드 아미티지와 조지프 나이 등 미국 외교전략에 영향력이 큰 거물들은 8월15일자 ‘미·일 동맹 보고서’에서 “한·일은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양국 간 역사적 견해차를 부활시키고 국수주의적 감정을 이용하려는 유혹을 버려야 한다”라며, 일련의 한·일 갈등을 ‘국내 정치용’으로 못 박았다. 

미·일 동맹 보고서는 또, 김태효 실각의 직접 계기가 된 한·일 군사정보협정 체결도 주장했다. 일본에는 과거사 문제를 직시하라고 요구했다. 한·미·일 공조가 절실한 이유로 중국의 부상을 지적하기도 했다. 요약하면, 사실상 한국 정부에 미국의 국익과도 일치하는 ‘김태효 구상’에서 이탈하지 말 것을 주문한 셈이다. MB는 한·미·일 동맹의 요구와 임기 말 국내 정치의 요구가 충돌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어느 정권에서나,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는 손쉽게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유혹적인 이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후반부로 접어들던 1995년 11월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라는, 외교 관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초강성 발언을 내놓았다. 여론은 호의적이었지만, 이후 대일 외교에서 이 발언은 두고두고 부담이 되었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정권의 국내 기반이 취약할 때면 독도·센카쿠 열도 등 영토 문제를 이슈화해서 ‘외부의 적’을 불러내는 경향이 있다. 

독도와 같은 분쟁지역이 양국 정권의 ‘적대적 공생’을 보장해주는 셈이다. 순전히 정치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독도는 양국 정부가 모두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지속적 분쟁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정권으로서는 가장 이득이다. 한·일 양국 정부가 지난 반세기 동안 독도를 다뤄온 방식이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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