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9일 수요일

“암투병 중인 내 친구 강기훈, 대법원이 억울함 풀어달라”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8-29일자 기사 '“암투병 중인 내 친구 강기훈, 대법원이 억울함 풀어달라”'를 퍼왔습니다.
91년 ‘유서대필 사건’ 피해자 강기훈의 쾌유와 재심 개시 촉구 모임 발족

ⓒ민중의소리 강기훈씨의 쾌유를 기도하는 지인들

“내 친구 기훈이를 만나 술잔을 기울일 때면 절대 하지 않는 얘기가 있습니다. 바로 지난 91년에 ‘유서대필’이라는 누명을 썼던 때 얘기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기훈이가 그 얘기를 먼저 꺼냈어요. 애들이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아빠, 정말 그랬어?’라고 물어 보더라고. 그 때 기훈이가 난생 처음 ‘정말 죽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기훈이는 그렇게 상처를 앓은 채 21년을 살아왔습니다”-강기훈씨 20년 지기인 원일형 씨 

노태우 정권 말기인 지난 91년 이른바 ‘유서대필’이라는 누명을 쓴 채 3년간 옥고까지 치른 강기훈(48) 씨를 위해 한 자리에 모인 그의 지인들은 숙연한 분위기 속에 ‘강기훈의 쾌유와 재심 개시 촉구를 위한 모임’ (강기훈재심모임) 발족식을 28일 열었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상임의장이었던 이창복 전 민주당 의원이 모임의 상임대표를 맡고 민주화운동 원로인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역시 전민련 상임의장을 역임한 이부영 민주당 전 의원 등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민주당 인재근·신계륜·민병두 의원, 통합진보당 심상정 의원 등도 공동대표로 이름을 올렸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민주당 손학규 대선 경선 후보, 정봉주 전 의원, 정혜신 박사 등은 재능기부를 통해 ‘강기훈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강 씨는 지난 4월 간암 판정을 받고 5월 간암세포 제거수술까지 받았지만, 수술 부작용으로 힘겹게 치료를 받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심 개시 여부, 3년째 결정 미루고 있는 대법원”
 

1980~90년대 전민련에서 활동하며 강씨와 인연을 맺은 이들이 주축을 이룬 이날 참가자들은 “‘김기설 유서대필 사건’은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과거사위)를 통해 독재정권이 위기 탈출을 위해 만들어 낸 희대의 조작극임이 이미 밝혀졌다”며 “대법원은 하루 빨리 재심 개시를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2007년 과거사위는 강 씨가 후배인 김기설 씨에게 분신을 사주하며 유서를 대필해줬다는 기존 판결을 뒤집는 자료를 제시하며 진실규명 결정과 함께 국가에 재심을 권고했다. 강씨의 재심 청구에 서울고등법원은 2009년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으나 검찰이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항고했고, 이후 3년 동안 대법원은 재심 결정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송상교 변호사는 “과거사위에서 2007년 당시 김씨의 낙서장을 확보했고 이를 사설 필체 감정원에 의뢰한 결과 김씨의 필체와 강씨의 필체가 다르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1991년 사건 당시에도 국과수에서 일했던 감정인조차도 ‘당시 이러한 결과가 있었다면 유죄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스스로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재심 개시 결정에 검찰이 항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대법원 역시 재심 개시 여부를 3년여 동안 끌고 있는 것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민중의소리 강기훈의 쾌유와 재심 개시 촉구를 위한 모임 발족식

“내 친구 강기훈, 법정에서 억울함 풀 수 있게 해달라”

이날 참가자들은 강 씨가 누명을 벗기 위해서는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쾌유를 기원했다.강 씨의 쾌유를 위한 기도시간에는 일부 참가자들이 두 손을 모은 채 흐느끼는 등 엄숙한 분위가 이어졌다. 

홍성교도소에 수감 중인 정봉주 전 의원은 그의 부인이 낭독한 편지를 통해 “기훈아 보란 듯이 털고 일어나 20대 젊은 시절에 함께 꿈꾸었던 민주주의가 꽃되는 세상, 통일된 조국 한반도를 향해 다시 달려보자”며 “진실이 무릎 꿇으면 거짓이 춤춘다. 진실과 정의의 상징인 강기훈은 쓰려져서는 안된다”고 응원했다.

사회를 맡은 김선택 강기훈재심모임 집행위원장 역시 “재심이 시작되더라도 강기훈 본인이 건강해야만 무죄를 주장할 수 있다”며 “더 이상 병세가 악화되지 않도록 여러분들의 많은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호소문을 통해 “강기훈에게 씌워졌던 누명이 벗겨지는 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지키기와 다름 없다”며 “20여년 전 혼자 짊어졌던 짐을 이제는 더 이상 혼자 짊어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강 씨가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매달 1천만원에 가까운 치료비가 필요하다. 강기훈재심모임에서는 강씨의 쾌유를 기원하고 재심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과 치료비 모금 활동을 진행 중이다. 다음달 20일에는 서울시립대 강당에서 ‘강기훈을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이라는 공연도 열 예정이다. 

유서대필 사건의 전모

ⓒⓒ민중의소리 한승호 기자 유서대필사건 조작 피해자인 강기훈 전 전민련 총무부장

1991년 5월 8일, 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김기설 씨는 “노태우 정권 타도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서강대 건물 옥상에서 분신하며 투신했다. 5월 들어서만 세 번째 분신 사망이었다.

그해 4월 28일 명지대 1학년생 강경대 군이 집회 도중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며 촉발된 이른바 분신정국은 대학생 뿐만 아니라 가정주부와 고등학생까지 분신을 하며 노태우 정권을 규탄했다. 잇따른 분신과 수십만 명씩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시위 대열에 노태우 정권은 최대 위기에 몰렸고 탈출구가 필요했다.

정권은 그해 5월 7일 고위당정회의, 8일 청와대 치안관계대책회의를 열고 “잇따른 분신에는 배후세력이 있다”며 이에 대해 철저히 수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신호로 검찰은 김기설 씨 분신 직후, 증거가 채 확보되기도 전에 언론에 “분신에 배후세력이 있다”고 서둘러 발표했고 이어 각종 증거를 조작해 분신배후조종설을 퍼트렸다.

검찰의 수사는 결국 유서대필 사건으로 이어졌는데, 김기설 씨의 선배인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 씨가 김 씨의 유서를 대필해주고 자살을 방조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검찰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 결과가 유일했다. 이마저도 강기훈 씨의 2심 재판을 앞두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분석실장 김형영 씨가 뇌물수수 및 허위감정 혐의로 구속돼, 감정의 신뢰성에 결정적으로 금이 가며 조작 의혹이 더욱 불거졌다. 

당시 강 씨는 “피고인으로서가 아니라 진실을 증언하는 증인으로서 법정에 서겠다.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겠다”라며 검찰에 자진출두했지만, 결국 대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실형을 살았다. 

김대현 기자 kdh@vop.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