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30일 목요일

김재철 사장에 찍힌 카메라기자 잔혹사


이글은 미디어스 2012-08-30일자 기사 '김재철 사장에 찍힌 카메라기자 잔혹사'를 퍼왔습니다.
[익명 기고] 'MBC 국민 품으로…' 약속 아직 미완의 진행형

지난 17일 MBC는 영상취재1부·2부, 시사영상부 등이 속한 보도영상 부문을 해체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카메라 기자들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 내부의 중론이다.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카메라 기자들에게 가해졌던 ‘탄압’은 결국 ‘영상부문 해체’로 정점을 찍은 것. (미디어스)는 한 MBC 카메라 기자가 현재의 MBC 상황에 대한 소회를 담담하게 밝힌 기고문을 게재한다. 실명을 밝혔을 경우 현 MBC 경영진이 징계와 같은 ‘보복’을 가할 가능성이 큰 점을 고려해, 익명 게재한다. 

지금 MBC는 확실히 비정상이다. 사장이 그러하고, 임원진이 그러하다 보니, 결국 프로그램도 비정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비정상의 내리사랑은 MBC를 마침내 ‘이상’한 방송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능력을 검증받은 스타 아나운서들이 화면에 나오지 않고, 석연찮은 이유로 베테랑 작가들이 전원 교체되는가 하면, 방송을 코앞에 둔 제작물이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또, 기자상을 휩쓴 기자는 드라마파크에 오토캠핑장을 짓느냐 마느냐를 고민하고 있고, 다른 능력자 PD는 신사옥을 잘 짓겠다고 안전모를 고쳐쓰고 있다. 이렇듯 우열을 가리기 힘든 이상함들 중 최고는 이 모든 것이 ‘경쟁력’ 때문이라는 회사의 설명이다.

▲ 전국의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로 구성된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는 24일 M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MBC의 보도영상 부문 해체에 대해 "파업기간에 강한 결속력을 보인 카메라 기자를 향한 분풀이"라고 비판하며 원상복귀시키지 않을 경우 협회 차원에서 MBC를 모든 뉴스의 공동취재단(풀단)에서 제외하는 등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곽상아

최근 여기에 큰 건 하나가 추가되었다. 바로, 보도영상을 책임져온 영상기자 조직이 공중분해된 사실이다. 신문사가 아닌 ‘방송국’ MBC에서, 화면을 담당하는 기자들이 분해된 것은, 사실상 뉴스를 포기하겠다는 자폭 선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의 영상기자들은 또 한번 이상한 경쟁력의 희생양이 되어 정치부로 경제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제 막 영상기자 초년병을 넘긴 나 역시 ‘한창 일할 시기’라는 친절한 판단 하에 사회부로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한창 일해야 할 시기임에도 도저히 일할 수 없는 시스템이 만들어 진 까닭을 누구하나 명쾌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여기에는 공정방송을 하겠다며 긴 파업에 가담한 영상기자들에 대한 사측의 분노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사실, 회사가 영상기자 죽이기에 나선 것은 김재철 사장의 철저한 분풀이로 볼 수밖에 없다. 소수의 영상기자들은 파업 초기, 양 기자회(MBC에는 취재기자들 조직인 기자회와, 영상기자들 조직인 영상기자회가 있다)의 제작거부를 이끌어낸 도화선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파업기간 내내 작지만 강한 단결력으로 줄기차게 사측을 압박하고 괴롭혀왔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당연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때문에 파업 돌입 이후 영상취재부문은 가장 확실하게 회사의 보복 직격탄을 맞아왔다. (나중에 전 부문으로 확대되긴 했지만) 대체인력을 가장 먼저 도입한 직종은 영상취재 영역이었고, 해외 특파원은 조기 송환된 것도 모자라 대기발령에 처해졌다. 임원들은 ‘값싼 인력이 시장에 널려있다’는 말로 영상기자들의 자존감을 흠집내려했으며, 결국 파업에서 복귀하자마자 조직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결정을 하고 말았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영상에 대해 비전문가인 부장 밑에서, 보도 영상에 대한 격론은 사라졌고 뉴스는 가벼워졌다. 진실의 순간들이 사라진 자리에 온갖 자료화면들만 덕지덕지 넘쳐났다. 무의식에도 작용하는 이미지의 특성상 뉴스영상은 철저히 선별되고 훈련되어야 하지만, 사라진 조직의 남겨진 구성원들이 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었다. 국민의 눈이라 자부했지만 이를 가능케 했던 혹독한 수련공간이 이제는 없어진 상황이고, 때문에 소명의식이 희미해져가는 악순환이 점차 시작되고 있다. 한 때 뉴스의 품격을 논박했던 보도국엔 무력감과 패배주의가 팽배해가고 있고, 구성원 누구도 원치 않았던 조직개편은 이렇듯 MBC뉴스를 조금씩 망가뜨려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영상기자 잔혹사 과정에서, 우리는 좌절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비통했지만 의연했다. 공정방송이란 대의명분 앞에 부끄럽지 않았음을 뿌듯해 했고, 사측의 탄압이 이를 방증해주는 것 같아 일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몸으로 지켜내고 있는 서로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비록 현재는 갈기갈기 찢겨진 상태지만, 상처에 새살이 돋듯 건강한 조직으로 다시 설 수 있다는 확신이 하루하루를 지내는 바탕이 되었다.
또한, 기자들 간의 연대의식을 확인한 것도 아주 커다란 수확이다. 뉴스제작 현장에서 취재기자와 영상기자는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부딪히면서 MBC뉴스의 힘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무엇이 나은 뉴스인지에 대한 난상토론이 갈등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170여일의 싸움을 같이 해오며, 그리고 파업 복귀 후 현장에서의 고초(?)를 같이 겪으며, 우리는 서로의 같은 목표점을 확인해서 기뻤고 신뢰를 공유했다. 뉴스가 무너져가는 상황을 좌시 않겠다는 동료들의 분노와 투지는, 우리가 무너질 수 없었던 중요한 이유이자 버팀목이 되었다. 때문에 당연하게도, 지금의 이 연대감은 앞으로 수십년간 MBC 뉴스를 먹여살릴 확실한 에너지이자 날카로운 무기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시청자의 절실함과 그에 비례한 무서움을 잘 알고 있다. 최근의 MBC 상황이 걱정스러운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에서는 비록 줄기차게 싸우고 있다지만, 결국 드러나는 MBC의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우리를 바라보는 애정어린 시선들이 거두어지는 게 두렵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수밖에 없고, 사랑이 큰 만큼 증오도 쉽다는 진리 앞에 우리는 끊임없이 불안하다.
하지만 MBC가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은 아직 미완이며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리고 그 완성의 순간이 이제 목전에 다가왔다. 그래서 뻔뻔함을 무릅쓰고 부탁을 드리게 된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라고…. 공정한 방송, 진실된 언론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카메라를 들게 될 그 순간, 지금의 시련 역시 추억이 아니겠냐고 웃어넘기는 진짜 MBC를 보실 수 있을 것이다. 

익명의 MBC 카메라 기자  |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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