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31일 금요일

‘상관모욕죄’ 대위, 징역 3년 구형


이글은 시사IN 2012-08-31일자 기사 '‘상관모욕죄’ 대위, 징역 3년 구형'을 퍼왔습니다.
트위터에서 상관을 모욕한 죄로 기소된 현역 장교에게 징역 3년 구형이 떨어졌다. 2주 안에 내려질 선고는 군인의 ‘표현의 자유’를 가늠해볼 잣대가 될 전망이다. 국방부는 SNS 이용에 대해 단속 강화 지침을 내렸다.

“저는 무죄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피고인석에 앉은 이 아무개 대위(27)의 첫마디는 뜻밖이었다. 8월22일 경기도 한 부대에서 진행된 제7군단 보통군사법원. 네 번째로 열린 군사재판에서 이 대위는 자신의 심경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뗐다. “육사 생활에 재미를 느꼈느냐”라는 검찰관의 신문과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느냐”와 같은 군 판사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해온 터였다.

그는 최후진술을 위해 A4 한 장 가득 써온 글을 ‘다·나·까’로 끝나는 전형적인 군인 말투로 읽어 내려갔다. 이 대위는 기소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유·무죄를 다툴 사건 자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국민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나라가 존재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4년이 넘는 동안 제가 복무한 군대는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대한민국의 파수꾼입니다.” 

ⓒ시사IN 조남진 트위터에 대통령에 대한 글을 올려 ‘상관모욕죄’로 기소된 이 아무개 대위에 대한 공판이 8월22일 열린 가운데 군 관계자들이 재판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군사법원 재판장 격인 심판관의 표정이 굳어졌다. 방청석에 앉아 이 대위의 최후진술을 듣던 그의 어머니 전 아무개씨(55)는 “아들이 당당하게 할 말 다 하는 것처럼 보여도 속은 여리다. 어제는 한숨도 못 잤다. 요샌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안 들 정도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위태위태하게 버티고 있는데 요즘 들어 특히 더 힘들어한다. 이제 정말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군 검찰은 이 대위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기소된 군형법 제64조 제2항(문서, 도화 또는 우상을 공시하거나 연설 또는 그 밖의 공연한 방법으로 상관을 모욕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상관모욕죄에 해당되는 최고 형량이었다. 검찰관은 “군인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기는 하지만 장교는 모범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장교로 자기 신분을 망각한 채, 끝까지 뉘우치지 않았다”라며 구형 이유를 덧붙였다. 

이 대위 쪽 이재정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군 검찰이 공소한 모든 사실을 부인했다. 검찰이 낸 자료는 원본이 아닌 워드프로세서로 편집된 채 손으로 가필한 흔적까지 있어 증거능력이 의심된다는 지적이었다. 이 변호사는 “트위터에서의 비판은 국군통수권자로서의 대통령이 아닌 내곡동 사저 문제, 인천공항매각, 등록금 정책 등과 관련한 최고 권력자에 대한 비판이었다. 물론 좀 더 합리적인 태도로 비판하지 못한 점은 아쉽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여기는 형법을 다루는 법정이고, 법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군 검찰 구형 열흘 전, 군기강 확립 발표

또 이 변호사는 두 번이나 기각된 증인신청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애초에 SNS에서 벌어진 강정마을 관련 논쟁으로 인해 이 대위의 트윗이 문제가 됐다고 알려졌던 것과 달리, 그보다 훨씬 앞선 지난 2월부터 국군기무사령부가 이 대위 트위터를 지켜봐왔다는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 대위의 트위터 캡처본 473장의 자료를 제출한 기무사 소속 서 아무개 대위가 사건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지만, 재판부는 그를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두 번째 공판부터 변론 종결 때까지 논란이 된 이 쟁점에 대해 “위법 수집 증거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지 못해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심판관은 다시 이 대위에게 물었다. “양심에 손을 얹고 이번 일에 대한 생각을 묻고 싶다.” 이 대위는 “행여 이명박 대통령이 적진에 뛰어들라고 하면, 그게 어떤 업무라고 할지라도 (군인으로서) 수행해야 한다”라고만 대답했다. 이재정 변호사는 이 대위의 짧은 말을 보충했다. 이 변호사는 법리를 강조하던 그 전까지의 태도와는 달리, 자신이 겪은 이 대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대위는 보수적인 엘리트 군인이다. 서울대와 육사를 동시에 붙고서도 육사를 지원했다. 이를 말리는 모친을 설득하면서까지 육사에 입학했고, 육사 지원금으로 일본 유학도 갔고 우수 논문상도 탄 인재다. 이런 이 대위의 모습을 보면서, 육사 진학을 반대하던 어머니도 태도를 바꿔 육사발전기금을 300만원이나 낸 적도 있다.” 

ⓒ시사IN 조남진 한 군인이 제7군단 보통군사법원 입구에 있는 군기강 확립 안내문을 보고 있다.
2시간가량 진행된 재판은 이날 선고를 제외한 모든 일정을 끝냈다. 군 판사는 2주 안에 선고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군인의 SNS 사용과 관련한 재판은 처음이다. 국방부는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엄벌하겠다고 밝혔지만 재판부는 국방부 하부 조직이 아니다. 군대 내 표현의 자유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선고인 만큼 재판부가 독립된 사법기관으로서 올바른 판단을 해주시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검찰의 구형이 있기 열흘 전, 사이버 군기강 확립대책을 추진한다고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SNS 활용 행동강령’을 제정해 이를 위반하는 군인은 관련 법규에 의거해 엄벌에 처하겠다는 것이었다. 국방부가 밝힌 SNS 활용 행동강령에는 △승인되지 않은 휴대전화 등은 영내 반입·사용 금지 △SNS상에서 군 비하·모욕·해학적 표현으로 군 기강 및 품위 훼손 금지 △SNS상에서 타인에 대한 모욕·욕설, 명예훼손, 정치적 중립 저해 등 금지 등이 명시되어 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군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SNS 관련 지시사항을 이 대위 구형과 선고를 앞둔 때 발표하는 건, 사실상 지침을 내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이 대위 건을 본보기로 해서 본격적으로 SNS에서 표현을 제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1월 전군에 배포한 ‘SNS 활용 가이드라인’에도 이 행동강령이 들어가 있다([시사IN] 제246호 국방부 SNS 가이드라인 ‘웬만하면 다 걸린다’ 기사 참조). 모든 군인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사항을 행동강령으로 제정했다”라고 밝혔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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