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9일 수요일

현대차 노동자, 암 걸리든지 골병들든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28일자 기사 '현대차 노동자, 암 걸리든지 골병들든지?'를 퍼왔습니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주간연속 2교대제 논의의 함정

"일요휴무, 장시간노동 근절하여 인간답게 살아보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에 붙어 있는 현수막 문구이다. 아하~, 올해 현대차 임단협에서 핵심 쟁점이 불법파견 비정규직 문제와 주간연속 2교대 문제였지? 현대차 자본이 최근 '3000명 신규채용' 안을 내놓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온전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투쟁이 솟구치자 사회적 쟁점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밤에는 잠 좀 자자" 즉 주간연속 2교대 문제는 덜 주목받아왔다. 지난해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도 국제암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주야 맞교대는 발암물질"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실제로 암 발병의 원인이자 수명 단축 요인이기도 한 심야노동을 철폐하자는 것은 주간연속 2교대 주장의 핵심 근거이기도 하다.

아울러 심야노동을 철폐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게 되면,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일자리를 늘려 실업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보수언론조차 장시간노동 체제를 근절하면 백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홍보해오지 않았던가.


 
ⓒ오민규

'발암물질' 심야노동, 완성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위 현수막 문구는 좀 이상하다. 생산직 노동자라면 당연히 '심야노동 근절'을 앞세울 텐데 왜 '일요휴무'를 강조했을까? 현수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레미콘·펌프카 노동자'라고 적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니, 레미콘·펌프카 노동자들이 왜 현대차 울산공장 앞에 저런 현수막을 붙여놓았을까?

그동안 건설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숱한 저항과 투쟁을 통해 '1일 8시간 근무'와 '일요휴무'를 정착시켜 왔다. 그런데 최근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에서 공장증설 및 교체 공사를 하면서 공사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일요휴무 제도를 깨뜨리려 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울산지역에서 레미콘·펌프카를 운전하는 노동자들이 며칠 동안 현대차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인 것이다.

사실 현대차의 근무형태가 주야 맞교대이기 때문에, 다양한 부품을 납품하는 수많은 부품사들의 근무형태도 동일하게 유지된다. 여기에다 신차가 투입되어 생산라인을 수정하거나 노후 설비를 교체하는 공사가 벌어질 경우에는, 건설노동자들과 플랜트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도 현대차가 정한 일정에 따라 좌우된다.

이처럼 '슈퍼 갑(甲)' 하나의 근무형태는 수십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차에서 주간연속 2교대가 어떻게 정착되는가 하는 것은, 단순히 현대차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현대차의 생산 시스템에 따라 노동시간이 좌우되는 수십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하게 된다. 현대차에서 발암물질(주야 맞교대)이 없어지지 않으면, 훨씬 넓은 범위의 노동자들에게도 발암물질이 제거되지 않는다.

공장 신설과 신규 채용 때문에 고용불안 발생?

현대차 노사 간에 주간연속 2교대를 논의해온 지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매년 머리를 맞대고 협상장에 앉기는 했지만 "2년 뒤에 시행한다", "좀 더 논의하여 내년에 시행한다"라는 결과만 몇 년째 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올해 10년 논쟁의 종지부를 찍자며, 현장의 평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심야노동을 없애고 주간연속 2교대를 실행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노사 협상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번에 "아니올시다"라는 말이 나올 상황이다. 최근 현대차 노사 간에 빈번하게 벌어지는 실무협상에서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나 같은 사람은 접근할 수 없지만, 노사가 공동으로 추천한 학자·교수 등 전문가로 구성된 '근무형태변경추진위 자문위원회'가 내놓은 의견서를 참고하여 분석을 해보도록 하자.

자문위원회는 6월에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는데,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여름휴가 직전인 7월 23일에 타블로이드판 장장 12면에 걸쳐서 이 의견서를 여과 없이 그대로 전 조합원에게 배포했다. 그런데 9면의 하단 부분을 읽으면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위 그림의 붉은 밑줄은 필자가 그은 것인데, 우선 "공장의 신설과 신규 채용은 공장 간 물량 경쟁 및 고용불안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일까? 이 문장은 노동시간 단축이 갖고 있는 계급적인 대의명분, 즉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를 늘리고 실업을 줄이자는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일부 PT(파워트레인 : 엔진과 변속기) 생산 부문의 경우 [8/8+1]/상시야간조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이 얘기는 현재의 주야 맞교대를 3교대 시스템으로 바꾸어, 1조와 2조는 완성차 생산라인과 동일하게 운영하는 대신 3조를 신설하여 상시야간조를 운영하자는 것이다.

상시야간조? 이건 아예 밤낮을 바꿔 일하는 노동자로 한 교대조를 가득 채우자는 말이다.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만 일을 하는 교대조이니 말이다. 바로 그 밑에 "노동자는 올빼미가 아니다!"라며 "야간노동 철폐"라고 적힌 문구가 무색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단축된 노동시간만큼 더 '빡쎄게' 일해라!

일이 왜 이런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었을까? 자문위원회 보고서는 각종 수치와 도표, 그리고 세계 자동차산업의 다양한 사례를 들면서 거창하고 유식한 언어로 치장되어 있을 뿐, 사실 하고 싶은 핵심적 얘기는 딱 한 가지뿐이다. "생산성(물량)과 임금을 맞바꾸자."

기존 주야 맞교대에서 심야노동을 없애기 위해 주간연속 2교대를 도입하게 되면, 노동자 한 명당 노동시간은 줄어들게 된다. 이를테면 기존에는 정취근무 8시간에 잔업 2시간을 추가로 해왔으나, 주간연속 2교대가 도입되면 잔업이 사라지게 되어 1일 노동시간은 10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어들게 된다.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1일 8시간 노동제가 된다니!)

게다가 주말 휴일특근도 사라지게 되므로 노동자 한 명당 1주일 노동시간은 대략 60시간에서 40시간으로 무려 20시간 가까이 줄어들게 된다. (역시 마찬가지로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해야만 근로기준법이 규정하고 있는 주 40시간 노동제가 된다니!)

이렇게 되면 이론적으로는 현재 총 노동력의 절반가량을 추가로 고용해야만 기존 생산물량을 모두 맞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조합원 수가 4만3000명이니 무려 2만 명의 추가 고용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자문위원회가 제시한 의견서는 추가 고용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하되, 기존 생산물량도 보전하자는 취지이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의견서에 나온 방식은 간단하다. [UPH 향상 + 추가 작업시간] 및 [노동시간 단축 + 가동시간 증가]이다.

UPH(unit per hour)란 시간당 생산대수로서, 완성차 조립라인의 가동 속도를 의미한다. 1시간에 40대의 완성차를 만들어내는 생산라인은 40UPH가 되는 것이다. UPH 수치가 향상된다는 것은 그만큼 라인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의미하므로 노동강도의 강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자문위원회가 제시한 방식이 UPH 향상이라니, 단축된 노동시간만큼 시쳇말로 더 '빡쎄게' 일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아울러 UPH 향상으로도 기존 생산물량을 뽑아내기에는 모자라니 추가 작업시간을 확보하자고 한다. 그런데 위 그림에 제시된 작업시간 확보 방안은 ▲조회시간 ▲안전교육 ▲혹서기 휴게 ▲명절 전일 야간조 등의 시간에 생산라인을 가동하자는 것이다.

이미 근로기준법과 단체협약 상에 조회시간과 안전교육은 근무시간으로 인정하도록 되어 있다. 안전교육의 경우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상 반드시 일정 시간 이상 실시해야 하는 의무사항이기도 하다. 아울러 여름에 날이 너무 더워 작업의욕이 떨어질 때에 한해 10분의 휴게시간을 더 갖도록 단체협약에 규정되어 있다. 명절 전일에는 귀향 편의를 위해 야간에 공장 가동을 멈추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생산라인을 가동한다? 이건 말이 좋아 '추가 작업시간 확보'이지, 사실은 노동시간 연장에 다름 아니다. 결국 조회와 안전교육은 생산라인 가동을 하지 않는 근무 외 시간에 실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산에 꼭 필요한 회의와 지침 하달을 하는 조회를 자본이 포기할 리 없고, 법이 의무로 규율하고 있는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조기출근을 하거나 퇴근 이후에 조회나 안전교육을 실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게 무슨 노동시간 단축이란 말인가?

게다가 [노동시간 단축 + 가동시간 증가]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건 숫제 양립 불가능한 얘기를 갖다 붙인 궤변에 불과하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본래 쉬거나 교육에 쓰이던 시간에 생산라인을 가동하자는 것인데, 이게 어떻게 노동시간 단축에 해당하는가? 이런 논리라면 밥도 안 먹고 식사시간에 일을 하면 1시간 일찍 퇴근시켜 주겠다는 것을 두고 '1시간 노동시간 단축'이라 미화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3교대를 도입할 PT 부문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이는데, 3교대를 도입하게 되면 노동자 한 사람당 노동시간은 단축되지만 공장은 24시간 풀가동을 하게 되므로 가동시간은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처럼 낮과 밤을 바꿔 살아야 하는, 현재의 주야 맞교대보다 더 비인간적인 상시야간조를 신설하자는 것에 어떻게 '노동시간 단축'이란 말을 갖다 붙일 수 있을까? 심야노동을 없애자고 시작한 논의가 아니었던가!

결국 자문위원회 보고서는, UPH 향상과 추가 작업시간을 확보해 생산라인을 가동하는 것은 결국 임금으로 보전되므로 생산성(물량)과 임금을 교환하자는 논리로 귀결된다. 기존 10시간 일할 때 받아가던 임금을 8시간 일하더라도 그대로 줄 테니, 대신 10시간 동안 만들어낸 생산물량을 8시간 안에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 현대차 노사기획팀이 발간하는 <함께 가는 길> 8월 27일자. 인원 충원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함께 가는 길>

고용 없는 성장, 일자리 창출 없는 노동시간 단축

현재 노사 협상에서 현대차 자본은 주간연속 2교대 도입과정에서 신규 인원 충원은 불가하다고 못을 박은 상태이다. 노동조합은 추가 인원 충원이 전제된다면, UPH 향상과 추가작업시간 확보 등에서 일정하게 양보할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고용노동부조차 자동차산업 장시간노동의 폐해를 지적하고, 심야노동을 없애고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신규 일자리를 대규모로 창출하자고 하는 마당이다. 노동시간은 단축되더라도 노동강도가 높아지면 신규 일자리는 전혀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절호의 기회에 대기업노조가 실업 해소를 위해 나서지 못한다면 결국 사회적 고립을 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물량 보전 방식은, 현대차 전 공장에서 총 30UPH를 높이자는 것이다. UPH와 큰 상관이 없는 전주공장을 뺀다면, 울산과 아산에 총 11개의 생산라인이 있으니 평균적으로 3UPH를 높이자는 얘기가 된다.

현재 11개 라인의 평균 생산대수는 40UPH 수준이다. 여기서 시간당 3대 정도를 더 만들도록(40→43) 라인속도를 높인다는 말인데, 한번 상상을 해보라. 내가 어떤 물건을 시간당 40개 만드는데, 그걸 시간당 43개 만들려면 손놀림이 꽤 빨라져야 한다.

1시간만 그렇게 일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루 꼬박 8시간씩, 주말을 제외하고 1년 내내 그렇게 만들어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심야노동이라는 발암물질 없애려다 몸에 골병이 들고 말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죽도록 일해주는 대신, 일자리는 전혀 늘어나지 않아 사회적 고립만 자초한다면?

게다가 현대차의 근무 시스템이 이렇게 확정되고 나면, 그 여파는 고스란히 부품사로 이전된다. 부품사들 역시 10시간 노동을 8시간으로 줄이는 대신, 노동강도를 대폭 높이게 될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끝내 포기할 것인가? 심야노동이란 발암물질 대신 골병이 차라리 낫지 않느냐고?

▲ 현대자동차 담화문. ⓒ현대자동차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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