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31일 금요일

기자들이 근무시간에 샌드위치 만드는 ‘불편한 진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8-31일자 기사 '기자들이 근무시간에 샌드위치 만드는 ‘불편한 진실’'을 퍼왔습니다.
[현장] 파업 복귀 40일 MBC는 여전히 파행 중… PD수첩 9월 중 방송재개도 어려울 듯

MBC 노동조합 파업 이후 업무에 복귀한지 30일로 40여일을 넘겼지만 여전히 공정방송 실현 요구에 귀를 닫으면서 여의도 MBC 사옥 곳곳에서 이상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 MBC 노동조합 사무실

노동조합 사무실에서는 한 무리의 조합원들이 둘러앉아 '블루베리 소스가 가미된 닭가슴살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씁쓸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음식을 만든 주인공은 현재 서울 상암동 MBC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20여명 조합원들. 이들은 지난 20일부터 3개월 동안 교육 명령을 받고 강의를 듣고 있다.
이날 MBC 아카데미에서 받았던 강의 주제는 '브런치 만들기'. 노조 사무실에 먹고 있던 음식의 정체는 바로 교육 대상자가 만든 브런치였다. 조합원들은 교육대상자들이 만든 샌드위치를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교육 현장에서 웃지못할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리더십을 주제로 교육을 했던 강사는 7년차부터 33년차까지 시사교양PD, 아나운서, 기자들이 모여 있는 교육대상자를 상대로 리더의 '희생'을 강조했다.

하이라이트는 강사가 "여러분들의 리더는 누굽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것. 김재철 사장 퇴진을 내걸고 파업을 벌이다가 '희생'이 됐던 교육대상자에게 황당한 질문이었던 것은 뻔하다.
교육대상자들은 강사의 질문을 받고 키득키득거리면서 일제히 '김재철'이라고 얘기하자 강사가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 여의도 MBC 사옥 1층 로비

여의도 MBC 사옥 1층 로비에는 흰색 천으로 둘러싸인 '기표소' 두개가 설치돼 있고 바로 앞에 철제 투표함이 놓여져 있다.
MBC 노동조합이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을 상대로 의견 조사를 실시하기로 하면서 설치된 투표함이다. 이번 의견 조사는 최근 PD수첩 불방, MBC 금요 와이드의 노동자 인권 탄압 아이템 불방, 시사매거진 2580 안철수 원장 아이템 폐기 등 시사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공정성이 훼손된 일들이 터지면서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성격이 강하다.
단체 협약에 따르면 의견조사는 편성제작본부 노조원 과반수 이상이 참여해서 조합원 3분의 2 이상이 백 본부장의 공정방송 실현 의지에 문제가 있다고 의사를 밝히면 이 같은 뜻을 김재철 사장에게 전달하고 백 본부장의 즉각 교체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MBC 노조는 의견조사를 오는 29일부터 9월 4일까지 여의도 MBC 사옥 1층 로비에서 편성제작본부 산하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해서 '공정방송 실현의지에 대한 의견조사'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노조에 따르면 29일 의견조사 첫날부터 편성제작본부 소속 조합원 57명이 참여하면서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편성제작본부 소속 조합원은 총 170여명으로 의견조사 첫날에 참여한 인원은 3분의 1을 넘어섰다.

# 점심시간 여의도 MBC 사옥 로비

점심시간이 되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여의도 MBC 사옥 로비 바닥에 주저 앉았다. 각자 이들의 손에는 피켓이 들려있다. 피켓에는 "PD수첩 파행사태 대선까지 갈 셈이냐", "백종문과 김현종은 PD수첩을 즉각 정상화하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들은 바로 7개월 가까이 방영하지 못하고 지난 7월 작가 전원 해고 사태로 인해 불방이 계속되고 있는 PD수첩 PD들.
당초 방송 재개 날짜는 지난 21일과 28일로 잡혀있었지만 작가 해고 사태가 터진 후 MBC가 해결책을 내놓지 않아 방송 정상화가 표류하고 있다. 이에 PD수첩 PD들이 방송 재개하라며 침묵 시위에 돌입한 것.

▲ ⓒ MBC 영상 기자회 제공

PD수첩 불방 사태는 아무리 빨리 해결책이 제시되더라도 보통 한 달이 걸리는 제작 기간을 고려할 때 9월 중으로 방송 재개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점심시간 여의도 MBC 사옥을 찾으면 한동안 PD수첩 PD들의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PD수첩 한 PD는 "PD수첩 불방 사태는 MBC 경영진들의 무능을 넘어서서 시청자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무책임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며 "매년 신뢰도 조사에서 시사 프로 중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PD수첩은 제품으로 치면 킬러 콘텐츠인데 팔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일반 기업 같으면 누가 이렇게 하겠나? 이런 사태를 촉발시킨 백종문 본부장과 김현종 국장 등 MBC 경영진들이 문책을 당해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작가 선정 권한 등 자율권을 주면 제작에 들어갈 수 있다"면서 "문제가 되는 방송에 대해서는 충분히 게이트 키핑을 통해 공정성 여부를 판단하면 된다. PD들에게 제작 자율성을 넘기면 된다"고 말했다.

# 여의도 MBC 사옥 3층 교양 제작국

30일 오후 여의도 MBC 사옥 3층 교양 제작국 사무실에 무거운 공기가 가라앉았다.
지난 24일 MBC 금요와이드의 '이슈 클로즈업' 코너에서 다루기로 했던 경주 소재 발레오 만도, 구미 소재 KEC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인권 탄압 아이템이 방송직전 불가 판정을 받으면서 논란이 됐는데 제작 주체였던 이영백 PD와 김정민 PD를 제작진에서 강제 퇴출시킨 것도 모자라 이날 인사위원회에 회부될 것이라고 통보해왔기 때문이다.
MBC는 이영백, 김정민 PD가 보고 절차를 무시하고 지시를 불이행했다며 오는 10일 인사위에 회부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이 PD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MBC가 밝힌 징계 사유는 사실관계부터 틀렸다는 것이 이영백 PD의 하소연이다. 불방 판정을 받기 하루 전인 23일 밤까지만 해도 김시리 CP가 편집본과 대본을 보고 방송 여부를 결정하자고 해놓고 인사위에서는 편집을 하지 마라고 했는데 지시를 불이행했다고 억지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2011년 방송이 시작된 이래 아이템을 결정하고 CP에게 방송안을 전달해왔는데 유독 이번 아이템에 대해서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부적절한다고 밝혔다.
이 PD는 "해당 아이템이 불방할 정도로 논란이 있거나 민감한 소지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방송에 나가도 상식적인 인권 문제인데 절차상 문제를 삼은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MBC 노조 관계자는 "김재철 사장이 말하는 정상화의 모습이 이런 것이냐"면서 "하루 빨리 MBC가 정상화가 되는 길은 김재철 사장이 퇴진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재진 기자 | jinpress@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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