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4일 화요일

검찰의 역습… 자기 무덤 판 의원님들


이글은 시사IN 2012-08-14일자 기사 '검찰의 역습… 자기 무덤 판 의원님들'을 퍼왔습니다.
‘특권 내려놓기’ 경쟁을 하던 여야가 검찰의 공세에 허둥지둥하며 불체포 특권 포기 논란을 벌이고 있다. 남용도 문제지만 포기하면 검찰이 입법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멀리 던진 줄 알았던 ‘쇄신’의 부메랑이 너무 빨리 되돌아왔다. 그것도 칼이 되어서. 4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의식해 ‘불체포 특권’ 포기 또는 보완 등 ‘각종 특권 내려놓기’ 경쟁을 하던 여야는 그 틈새를 파고든 검찰의 공세에 허둥지둥하고 있다. 

7월31일 오후, 국회는 어수선했다. 새누리당과 검찰에게는 말 그대로 ‘기습’이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민주당) 처지에서는 ‘신의 한 수’였다. 저축은행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박지원 원내대표는 세 차례나 검찰 출석을 거부했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가 이날 오후 전격적으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음으로써 팽팽히 조여오던 긴장의 끈은 맥없이 풀려버렸다. 

박 원내대표가 출석하지 않았을 경우, 다시 한 번 본회의장에서 체포동의안을 표결해야 할 상황이었다.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 불어닥친 비판 여론 때문에 여야는 불체포 특권을 방패로 삼기 어려운 처지였다. 

ⓒ뉴시스 7월31일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왼쪽 세 번째)가 대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그리 간단치는 않다. 불체포 특권은 헌법 제44조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라는 조항에 명시되어 있다. 1948년 제헌헌법 이래 10차 개정헌법인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내용으로 유지돼온 조항이다. 다시 말해 불체포 특권은 의원 개인이나 특정 정당이 마음대로 포기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닌 헌법 개정사항인 셈이다. 김선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대통령이 권력 유지를 위하여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킨 전례를 알고 있는 우리 헌정사에 비추어 보면 불체포 특권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27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가 1차 회의에서 내놓은 6대 쇄신안 중 하나로 불체포 특권 포기가 포함됐다. 새누리당은 △검찰의 소환조사에 언제든지 응할 것 △체포동의안이 넘어오면 지체 없이 처리할 것 △방탄 국회를 열지 않을 것, 세 가지 원칙에 동의했다. 물론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정했다고 해도 헌법에 규정된 권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불체포 특권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미 값’에 불과했다. 민주당 역시 7월6일 국회의원 특권 개혁방안 공청회를 열었다. 국회의 윤리특별위원회 기능을 강화해 불체포 특권의 오·남용을 보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한규 민주당 전문위원은 “선거를 앞두고 분위기에 편승하여 꼭 필요한 제도를 약화시키는 것은 한국 현실에서 매우 바람직하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검찰, 박근혜에게 대놓고 줄섰다”

이 틈새를 검찰이 고약하게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불체포 특권 포기를 검찰이 원할 때 무조건 국회의원을 구속시킬 수 있다는 걸로 해석하면 안 된다”라는 한 새누리당 중진 의원의 우려가 현실화된 셈이다.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은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직후인 7월15일 기자회견을 통해 “기득권 포기의 명분에 따라 무조건 체포동의안을 통과시키게 되면 국민의 대표인 입법부가 검찰 통제하에 놓이게 된다”라면서, 법적인 부분을 고치지 않고 불체포 특권 포기를 약속한 지도부는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당직자는 “요즘 여의도에서는 검찰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대놓고 줄섰다’라는 게 정설이다”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내 소수파로 전락한 친이계 정두언 의원과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19대 국회 들어서자마자 검찰의 표적이 된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니라는 의미다.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도 “검찰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불체포 특권은 특권이 아니라 의무를 다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데 이를 정쟁의 도구로 쓰고 있다”라며 검찰과 박근혜 후보 측을 싸잡아 비판했다.  

민주당 쪽에서는 ‘한명숙 시즌2’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예민한 기류가 느껴진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의 정치성이 논란이 되는 한, 불체포 특권 포기가 여당보다는 야당 탄압의 도구로 쓰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언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결국 무죄판결이 난다고 해도 검찰에 소환해 포토라인에 세우고 대서특필하는 것만으로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 아니냐”라며 날을 세웠다. 

하지만 검찰의 칼날 앞에 무력하기는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의 한 지역구 초선의원은 “검찰을 의식하면서 발언하게 되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인 상황임은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정두언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 몰아친 역풍 탓에 체포동의안이 다시 상정될 경우 부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휘두르는 칼날을 피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입법부가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블랙코미디를 연출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제헌국회부터 18대 국회까지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사례는 44건 중 9건에 불과하다(부결 12건, 철회 1건, 폐기 22건). 특히 2003년에는 불법자금 수수·공금횡령 등 중죄로 사전 구속영장이 발부됐던 한나라당 박재욱 의원을 비롯한 7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압도적 표차로 부결되면서 국회의원들의 ‘눈물겨운’ 동료애가 도마에 오른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불체포 특권이 논란이 되는 것은 ‘특권’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국회의원들이 제구실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곧 제도를 악용한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지 무조건 ‘포기’가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홍재우 교수(인제대·정치외교학)는 “의원 윤리와 국회 내부 규율에 관한 제도를 보완해야지 이를 특권이라는 관점으로만 접근하면 의회를 지나치게 약화시킬 수 있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장일호 기자 |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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