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IN 2012-08-20일자 기사 '박근혜의 부산 집사들에게 무슨 일이'를 퍼왔습니다.
부산·경남(PK)은 박근혜 후보에게 ‘버텨줘야’ 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현영희-현기환 ‘공천 뇌물’ 사건이 굳건하게만 보이던 지역을 흔들고 있다. 박근혜의 부산 집사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새누리당은 ‘유령’도 당선시킨다. 2006년 부산 금정구 구의원에 출마한 박상규씨는 옛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뒤 실종됐다.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도 그는 당선됐다. 실종 한 달 만에 그가 발견된 곳은 경남 김해의 한 야산. 당시 (부산일보)보도에 따르면 박씨는 자신을 둘러싼 공천 뇌물 소문에 괴로워하다가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이 곧 당선인 PK에서 당내 경선은 본선보다 더 치열하다. 이번 새누리당 공천 뇌물 사건의 시발점인 현영희 의원 역시 공천 과정에서 ‘물 먹은’ 경험이 있다. 2002년 시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현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시의원 직을 던지고 동래구 예비후보에 등록했으나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후 2010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현 의원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자신의 원래 지역구를 버리고 중·동구에 공천을 신청했다. 중·동구는 국회 부의장을 지낸 5선 정의화 의원의 지역구다. 지역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당시 중진 물갈이론이 힘을 얻으며 ‘정의화를 날린다’라는 데 합의가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지역구까지 바꿔 들어온 현영희가 ‘자신이 꼭 공천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여 모두가 의아해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공천장은 정 의원이 쥐게 됐고, 현 의원은 다시 한 번 좌절을 맛보는 듯했다.
그러나 ‘우회로’가 있었다. 현 의원은 낙천자 중 유일하게 비례대표 순번에 이름을 올렸다. “현 의원이 23번을 받았는데 당시만 해도 당선되기 어려운 순번이었다. 다만 당장은 안 돼도, 박근혜가 정권을 잡으면 비례 중 몇 명이 입각할 테고, 그러다 될 수도 있는 애매한 번호라고 생각했다. 그 번호에 줄 서는 데 든 돈이 ‘일단’ 3억원 아니었겠나.” 부산에 기반을 둔 전직 새누리당 의원의 보좌관 얘기다. 현 의원이 돈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현기환 전 의원은 총선 당시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이었다.

ⓒ시사IN 백승기 포럼부산비전 행사장을 찾은 박근혜 후보와 현영희 의원(오른쪽)
부산 지역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영희 의원은 부산 지역에서 ‘전주(錢主)’로 회자되곤 했다. 공천 뇌물 사건에 현 의원이 연루되었다는 소식에 부산 정계가 크게 놀라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다. 현 의원은 19대 비례대표 당선자 중 가장 많은 재산(181억원)을 신고했다. 주로 선박용 파이프를 취급하는 ‘강림CSP’ 회장인 현 의원의 남편 임수복씨는 부산 지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포럼부산비전에 각별한 애정
현 의원은 총선 예비후보 때 ‘박근혜가 선택한 여자’라는 슬로건이 담긴 대형 현수막을 부산역 앞에 걸기도 했다. 그가 2007년부터 공동대표로 있는 포럼부산비전은 박근혜 후보의 부산 지역 싱크탱크다. 포럼부산비전은 박근혜 후보의 정책을 담당하는 국가미래연구원의 부산지역본부 구실도 겸한다. 박 후보의 대표 외곽 조직인 셈이다. 200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결성된 이 조직은 그 뒤 부산에서만 유지되고 있었다(최근 포럼강원비전과 포럼충청비전이 만들어졌다). 한 관계자는 포럼부산비전이 다른 지역과 달리 지난 5년간 조직을 유지하며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지역에 현영희 같은 ‘전주’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라고 말했다.
포럼부산비전의 김태용 사무처장은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의 ‘복심’으로 알려져 있다. 서병수 사무총장과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김 사무처장은, 이번 총선 공천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이야기가 입길에 올랐다. 현기환 전 의원 역시 포럼부산비전 특별회원이다. 박근혜 후보는 매년 포럼 창립기념일 행사에 참석하는 등 이 단체에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수도권과 호남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박근혜 후보에게 부산은 대선 승리를 위해 반드시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하는 지역이다. TK(대구·경북)가 박 후보에게 ‘굳은자’인 반면, PK는 조금 미묘하다. 새누리당 기득권이 공고하게 형성되어 있지만, 부산 저축은행 파동, 동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 등 일련의 사태를 거치면서 새누리당에 등 돌리는 여론 역시 감지된다. 2010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김정길 후보가 득표율 45%를 얻는 ‘이변’도 일어났다. 박 후보가 부산에 특별히 공들였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11년 동구청장 재·보궐 선거 시 박 후보는 구청장 선거인데도 두 번이나 부산을 찾았고, 이번 총선에서도 모두 다섯 차례 부산을 방문했다.
결과적으로 ‘현상 유지’는 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위기가 느껴진다. 부산 전체 유권자는 약 290만명이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59만 표를 얻었다. 그리고 이번 총선 때 야권 후보는 모두 62만 표를 얻었다. 새누리당은 2002년 이회창 후보가 130만 표를 얻었던 것에 비해, 이번 총선에서는 78만 표밖에 얻지 못했다. 야권이 지분을 조금씩 늘려가는 반면, 새누리당 표는 반토막이 난 것이다. 이 때문에 정종민 민주당 부산시당 정책실장은 이번 대선 국면에서 부산이 박 후보에게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누리당이 부산발 공천 뇌물 사건에 ‘호들갑’으로 보일 정도로 대응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겠느냐”라고 그는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 지역의 돈과 조직을 장악한 박 후보의 ‘부산 집사’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얽혀 무리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평이다. 특히 이번 공천 뇌물 의혹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한 인사의 경우 이번 총선에서 200억원 가까이를 ‘땡겼다’라는 이야기가 부산 정가에 공공연하게 나돈다. 한 관계자는 “그 돈이 어디 갔겠나. 박 후보의 대선자금 아니겠나. 이 호텔, 저 호텔 드나들면서 사람 만나는 걸 보고 우리끼리는 ‘저 사람 꼭 사고 친다’라고 말하곤 했다”라고 전했다.
“저 사람 꼭 사고 친다 했다”
현기환 전 의원의 경우는 특히 부산 지역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2년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인수위에도 참여했던 현 전 의원은 이른바 ‘원조 친박’은 아니다. 게다가 19대 총선에 불출마한 상황에서 부산시장 직이나 입각을 노리려면 더더욱 ‘실적’이 필요했을 거라는 게 지역 정가의 중론이다.
현영희-현기환의 공천 뇌물 파문은 부산 지역 정치인 전반으로 옮아가고 있다. ‘Y, L, H 의원이 돈을 받았다’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고, 지금은 15명 가까운 정치인 이름이 입길에 오르내린다. 전직 새누리당 의원 보좌관은 2008년에도 ‘모시고’ 있던 의원으로부터 현 의원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영감이 ‘현영희가 돈을 보냈길래 돌려보냈다’라고 말하더라. 지금 불거진 일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검찰의 의지 문제인데, 현영희가 그동안 치렀던 선거 자체를 다 뒤집어봐야 한다. 그렇게 되면 부산에서 정치하는 사람치고 자유로운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사건을 제대로 파헤칠지는 미지수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사건이 배당되자마자 현기환이 검찰에 출두했다. 내가 볼 때는 돈이 오갔다는 것보다 이게 더 큰 뉴스다. ‘봐준다’라는 게 암묵적으로 보장된 것 아니겠나”라고 의심했다. 사건의 무게로만 따졌을 때, 대검 중수부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부산지검이 하고 있다는 것 또한 논란거리다. 한 부산 지역 변호사는 “현영희는 박근혜와 앉아서 사진도 찍을 수 있는 사람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부산지검에서는 덮기 곤란하게 ‘선관위가 너무 많은 정보를 언론에 뿌렸다’라는 이야기도 나온다”라고 말했다. 현영희-현기환-친박 핵심들이 ‘털리면’ 박 후보도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번 사건이 부산 민심, 나아가 대선을 가를 ‘뇌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장일호 기자 |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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