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IN 2012-08-06일자 기사 '그날, 진보정당의 미래가 제명되었다'를 퍼왔습니다.
양당제가 고착화되는 가운데 이번 대선은 통진당의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 안건이 부결되면서 통진당의 정치적 협상력은 고갈되었다. 비례대표제 확대 논의도 힘을 잃을 전망이다.
최근 몇 달간 통합진보당(통진당)은 거대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었다. 수면 위에서 신·구 당권파의 정파투쟁이 눈길을 끌었다면, 수면 아래에서는 갈수록 분명해지는 ‘한국 정치의 양당제 경향’이라는 거대한 압력과의 사투가 있었다.
4월의 19대 총선은 한국 정치를 양당제 구조로 재편하는 선거였다. 무조건 1위 후보자가 당선하는 단순다수제는 소수당의 진입을 어렵게 해 양당제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19대 총선은 자유선진당의 몰락과 통진당의 야권연대에 기댄 생존으로 드러나는 강한 양당제 경향을 보여주었다. 이는 통진당에게 외연 확장은커녕 생존의 문제를 제기한다.
같은 해에 대선이 있다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돌파구였다. 대선이 정치적 빅딜의 마지막 기회라는 위기의식은 노회찬 의원 등을 통해 통진당 내에서 꾸준히 나오는 목소리였다. 대선과 총선의 단순다수제를 결선투표제와 비례대표 확대 등으로 바꿔내야만 양당제가 고착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7월26일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다루는 의원총회에서 심상정 원내대표가 악수를 건네자 이석기 의원(왼쪽에서 두 번째)이 “됐습니다”라고 말하며 웃고 있다.
통진당 혁신 논의도 큰 틀에서는 이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대선을 앞두고 협상력을 갖추려면, 대선 결과에 영향을 끼칠 만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해야만 한다. 진보 지지층이 고개를 돌려버린 지금, 당 혁신이 양당제 구조와 연계된 생존 차원의 과제였던 것도 그래서다.
이 혁신 노력이 7월26일 파산했다. 통진당 의원총회는 당의 의원직 사퇴 요구를 거부한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 안건을 상정했으나 한 표 차이로 부결됐다. 이·김 의원은 기사회생했다. 대신 통진당의 대(對)민주당 협상력은 고갈되다시피 했다. 양당제는 점점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조롱거리 된 진보 깃발
두 의원 제명을 위해 필요했던 표는 7표였다. 진보신당계인 노회찬·심상정 의원, 참여계인 강동원 의원, 시민사회 출신 박원석 의원, 옛 당권파의 추천을 받았으나 중앙위 폭력사태 이후 옛 당권파 비판으로 돌아선 서기호 의원, 중립 성향이었으나 제명 찬성으로 기울었던 정진후 의원 등 6표가 고정에 가까웠다. 캐스팅보트는 김제남 의원이 쥐고 있었다. 김 의원은 몇 차례 제명 찬성을 시사하기도 했으나 결국 마지막 순간 기권표를 던져 제명안을 부결시켰다. 김 의원은 비례대표 추천 과정에서 옛 당권파인 이정희 당시 대표가 강력하게 밀어붙인 카드였다.
제명 부결은 인상적인 순간이기는 하지만 결정적 순간은 아니었다. 5월12일 중앙위 폭력사태야말로 통진당의 정치적 기반을 허물어뜨린 사건이었다.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이날의 폭력사태 이후로 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쳤고, 여론 주도층이 통진당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비판적 지지’ 성향을 자주 보이는 진보 성향 여론층은, 승리를 위해 외면해야 했던 진보 정당에 ‘부채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진보 정당의 자산이었다. 하지만 통진당 폭력사태는 이 부채감을 일순간에 날려버리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진보’ 깃발이 갖는 도덕적 권위도 이제는 조롱거리가 됐다.
통진당은 이미 실질적인 분당 상태다. 제명안 부결 직후 강동원·박원석 의원 등은 “김제남 의원이 제명 처리를 하겠다는 정치적 합의를 어겼다”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김제남 의원 또한 기자회견을 열고 “강기갑 대표의 혁신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기권표를 던졌다”라는 알쏭달쏭한 해명을 내놓았다. 신당권파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 타올랐다. 이지안 부대변인은 자당 의원의 발언을 두고 “한국정치사 최대의 궤변”이라는 센 논평을 내놓았다. 폭력사태가 벌어진 5월12일에도 참여계 천호선 당시 대변인과 경기동부 우위영 당시 대변인은 전혀 상반된 논평을 내놓았다. 이쯤 되면 이미 같은 정당에 속했다고 볼 수 없는 수준이다.
통진당이 본질상 ‘총선용 선거연합 가설정당’이었다는 사실은 당 구성원들조차도 부인하지 못한다. 총선 이후 화학적 결합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갈등만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다. 왜 통진당은 협력보다는 갈등의 길로 나가게 되었을까.
일반론으로 보면, 당의 장기적 생존 가능성이 낮아질수록 내부 투쟁은 격해지는 경향이 있다. 당내 정파들이 서로 협력해서 얻을 것이 없어지기 때문에 각 정파들은 당보다는 각자의 이익을 극한까지 추구하게 된다. 2007년 당시 대선 패배를 눈앞에 둔 열린우리당 제 정파의 분열, 전망이 어두웠던 2008년 총선을 앞둔 민주노동당의 분당이 좋은 예다.
정확히 같은 상황이 2012년 통진당에서 벌어졌다. ‘야권연대’라는 특수한 정세에 기대 얻어낸 13석은 제3당인 진보 정당이 자력으로 기대할 수 있는 의석수를 훌쩍 넘어서는 성과였다는 평이다. 양당제 경향이 뚜렷해지는 가운데 다음 선거에서 이 정도 성과를 재현해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즉, 통진당에게 19대 총선은 ‘예외적인 대승과 어두운 전망’이라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이는 각 정파들이 협력보다는 사익 추구를 택할 최적의 배양조건이 된다.

ⓒ시사IN 조남진 야권 연대는 물 건너갔다는 평가다. 7월16일 강기갑 대표(오른쪽)가 이해찬 민주당 대표를 만나고 있다.
총선 이후 휘몰아친 비례대표 경선부정 국면에서, 통진당 옛 당권파는 진보 진영과 통진당의 장기적 생존 가능성보다 정파적 이해관계를 더 중시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옛 당권파는 2008년 총선에서는 위기에 처한 당의 생존을 위해 정파 리더들의 비례대표 불출마와 대중성을 갖춘 이정희 카드 발굴이라는 ‘정치적 판단력’을 보여주었던 정파이기도 하다(물론 당시의 민노당은 PD 계열이 당을 떠난 범NL 정당이어서 협력의 유인이 더 컸던 이유도 있다). 그러던 것이 4년 만에 ‘정파 리더의 전면 배치’와 ‘미래보다 현재를 선택하는 태도’로 뒤바뀌었다.
강한 양당제 경향이 제3당에 협력보다는 내부 투쟁을 강요하면서, 통진당은 협력의 동력이 고갈되어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정치세력으로 굴러떨어졌다. 당 대표 선거에서 나타난 여론의 압도적 지지에도 혁신안을 관철하지 못한 지도부의 무능도 여기서 나온다는 평이다.
통진당과 진보 진영이 손놓고 ‘양당제의 운명’을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절박한 기획을 하는 이도 있었다. 양당제를 강요하는 단순다수제를 바꾸는 데 가장 관심이 많은 노회찬 의원은 “12월 대선에서 장관이니 차관이니 하는 자리 요구는 하나도 하지 말고, 총선에서의 정당명부제 혹은 비례대표 확대 하나만 따내도록 집중해야 한다”라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단순다수제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지율이 의석에 제대로 반영되는 제도를 만들지 않으면 결국 제3당은 사멸의 길로 간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비슷한 맥락에서 노 의원은 2012년 대선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결선투표제는 1차 투표에서 여러 세력의 정치적 의사를 드러낼 수 있어 양당제 경향을 중화하는 효과가 있다.
8월14일에는 ‘PR(비례대표제) 포럼’이라는 시민운동 단체가 출범한다. 비례성이 높은 선거 제도가 더 정의롭고 민의를 잘 대변하는 데다 복지국가를 건설할 가능성이 높다는 등의 취지를 내건, 비례대표 확대를 요구하는 운동단체다. 역시 대선 국면에서 의제로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치학자 수십 명과 시민사회, 청년단체, 정치권이 결합했다. 노회찬·이종걸 의원과 원희룡·천정배 전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는다.
대선이라는 ‘큰 판’을 겨냥한 이런 기획들도 통진당 혁신 실패로 힘이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일단은 최대 협상 파트너인 민주당의 태도가 싸늘하다. 제명안 부결 다음 날인 7월27일 민주당은 “안타깝고 유감스럽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리하기 바란다. 지켜보겠다”라는 신중한 논평을 냈다.
하지만 이날 민주당 최고위 분위기는 훨씬 격앙되었다고 한다. “야권연대는 이미 관심사도 아니었다. 지금 분위기에서 누가 말이라도 꺼내겠나. 박지원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등 임박한 현안 때문에 공개적으로는 삼갔을 뿐, 최고위 분위기는 험악했다. 당에서도 ‘분리수거’니 ‘보트피플’이니 하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오는 수준까지 갔다.” 한 민주당 핵심 당직자의 귀띔이다. ‘분리수거’란 옛 당권파들을 고립시켜 ‘종북’ 이미지를 떨어낸다는 의미이고, ‘보트피플’은 세력 간 연대보다는 통진당 내에서 의미 있는 정치인을 선별 영입한다는 의미다.
‘분리수거’ ‘보트피플’ 취급
여전히 야권연대를 대선 옵션으로 간주하는 목소리는 듣기 힘들고, 지금의 통진당이라면 연대가 오히려 득표에 손해라는 판단이 대세가 되었다. 옛 당권파가 고민한다는 ‘이정희 대선 출마 후 5%대 캐스팅보트 지지율을 바탕으로 한 후보 단일화 협상’ 시나리오도 민주당에서는 ‘공상 소설’ 취급을 받는다.
민주당도 사실상 돌아섰지만, 국민 여론도 문제다. 특히 이석기·김재연 두 의원이 국민이 아니라 당이 뽑은 비례대표라는 점 때문에, 비례대표제에 대한 불신은 높아지고 있다. 비례대표제 확대를 주장해봐야 ‘이빨도 안 들어갈 분위기’가 됐다는 평가다. 비록 비례대표 선거제도에도 당보다 국민이 의원을 선택하도록 제도 설계가 가능하지만, 당장은 그런 세부 논쟁에 관심을 가져줄 분위기가 아니다.
진보 정당에서 손꼽히던 ‘선수’들이 당을 떠나 민주당에 입당하고, 여야의 주요 대선주자들이 하나같이 ‘중도’ 이미지를 선점하려 애쓰는 등, 한국 정치의 거의 모든 차원에서 양당제는 기정사실로 굳어져가고 있다. 따라서 제3당 통진당에게는 그러지 않아도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7월26일 제명 부결 사태는 당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제명 부결 직후 원내대표직을 사퇴한 심상정 의원은 다음 날 “마지막 기회였다. 국민들이 통진당이 제3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깊이 회의하게 만들었다”라고 자평했다. 엄살로 들리지 않는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