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8일 토요일

장준하 단신처리… 한겨레 특종이라 안 베껴쓴 건가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8-18일자 기사 '장준하 단신처리… 한겨레 특종이라 안 베껴쓴 건가'를 퍼왔습니다.
[김종철 칼럼] 장준하 타살 의혹과 언론의 직무유기

광복 67주년 기념일인 지난 15일 아침 (한겨레) 신문을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1면 머리에 ‘장준하 선생 두개골서 6cm 뻥 뚫린 구멍··· 타살 의혹 재점화’라는 기사와 함께 1975년 8월 22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장례식 사진이 크게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유신 맞선 재야 대통령의 죽음··· 37년만에 진실 밝혀질까’라는 기사가 2면 전체를 차지했고, 3면도 관련기사로 도배되어 있었다. 


1975년 8월 17일에 일어난 민주·통일운동가 장준하 선생 의문사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에도 진상이 가려지지 않아 ‘역사의 무덤’ 안에서 잠자고 있었다. 이번에 고인의 유해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서울대 의대 법의학과 이윤성 교수가 유골을 검증한 결과 둔기로 두개골을 타격 당해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8월 17일 장준하기념사업회가 공개한 그의 두개골 사진은 참으로 끔찍했다. 누가 보아도 산길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한 사람의 머리뼈라고 볼 수는 없었다. 


37년만에 ‘타살 의혹’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물증이 드러난 이상 언론은 마땅히 심층취재를 통해 신속한 보도를 해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을 앞두고 독도를 방문하는가 하면 8월 15일 ‘경축사’에서 일본의 과거 잘못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 것을 신문과 방송이 크게 보도하는 일이야 논란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치자. 그러나 ‘장준하 타살 의혹’은 긴 안목으로 보면, 정치적 곤경에 빠진 ‘레임덕 대통령’의 일회성 이벤트에 비하면 훨씬 중대한 문제였다. 


‘장준하 타살 의혹’을 단독으로 보도한 한겨레 기사가 나온 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은 직무유기를 저지르거나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그 실태를 짚어보기로 하자.(이하는 각 언론사의 공식 누리집에 실린 자료이다)


조선일보사는 한겨레 기사가 나간 뒤인 8월 15일 오후에 (조선닷컴)을 통해 ‘장준하 타살 의혹 재점화’에 관한 기사 2건을 내보냈다. 17일에는 종이신문 2면에 2단으로 ‘유골 사진’을 실었다. 중앙일보사는 8월 15일 정오 조금 지나 ‘타살 의혹 재점화’ 기사를 (조인스닷컴)에 실었다. 동아일보는 17일자 a8면에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사실 땐 박 물러나야’라는 기사를 3단으로 올렸다. 경향신문은 16일자 12면에 2단으로 ‘타살 의혹’ 기사를 내보낸 뒤 17일자 2면에 두개골 사진을 실었다. 다른 신문과 다른 점은 17일자에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 정부가 재조사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보낸 것이었다. 한국일보는 17일자 10면에 ‘장준하 선생 유골 사진·소견서’라는 제목의 3단 기사와 함께 두개골 사진을 조그맣게 실었다.


방송도 신문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을 주요뉴스로 다루지 않았다. KBS는 8월 17일 오전 11시56분에 ‘민주, 고 장준하 선생 사망원인 규명 촉구’를, 오후 1시 7분에 ‘고 장준하 선생 추모공원 제막···타살 의혹 제기’를 올린 것으로 되어 있다. MBC는 16일 저녁 5시 뉴스에서 ‘민주, 고 장준하 의문사 진상조사위 구성’을 내보낸 뒤 17일 오전 11시 5분에 ‘민주당 장준하 진상조사위원회 설치’를 방송한 것으로 나와 있다. SBS는 16일 오후 3시5분, 17일 낮 12시 37분, 17일 오후 3시23분에 민주당의 진상조사위 구성, 박근혜에 대한 공세, 그리고 ‘유골 사진과 검사소견서 공개’를 각각 올린 것으로 되어 있다. YTN은 16일 오후 5시41분에 ‘민주, 고 장준하 의문사 진상조사위 구성’을, 17일 오전 2시8분에 같은 기사를 다시 내보냈다. 


위의 자료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한겨레 말고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이 ‘장준하 타살 의혹’을 단신(短信)처럼, 또는 시간이 흐르면 잊혀질 사건처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언론인은 물론이고 보통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오는 12월 19일의 대통령선거 때까지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진상이 밝혀지기까지 아주 민감한 사안으로 존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준하가 실족사 했는지, 아니면 타살 당했는지를 가려내는 작업은 1961년부터 1979년까지 18년 동안 국정 운영을 맡은 박정희의 행적을 바르게 평가하고, 그 시기에 청와대에서 5년이 넘게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공식으로 했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가를 판단하는 데 필수적인 일이다. 


장준하선생기념사업회가 발표한 ‘유골 검증 결과’를 보면 그의 죽음은 결코 실족사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와 함께 야당에서 일한 인연이 있는 김용환이라는 사람이 몇 해만에 ‘버스 안에서 장준하 선생을 만나 산행에 동행하면서’ 40여 명의 일행을 제쳐두고 단 둘이 험한 봉우리를 오르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고도의 특수기술을 가진 복수의 전문가들’이 그에게 치명상을 가한 뒤 죽음을 확인하고 암벽에 버렸다는 해묵은 추리에 대해 민주통합당이 자체 조사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공권력의 범행이든 아니든, 정부와 새누리당은 마땅히 진상을 밝히는 일에 협조해야 마땅하다. 그 결과 당시 사건에 정보기관의 개입이나 특수기관의 가담이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좋은 일이고 대선에 나설 박근혜 후보에게도 바람직한 현상이 될 것이다. 


나는 이번에 ‘장준하 타살 의혹’에 관한 언론의 직무유기를 보면서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첫째, 선의로 보면 진보 또는 중도를 표방하는 신문들은 경쟁상대인 한겨레가 대대적으로 독점보도를 한 이 사건을 ‘받아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언론사의 편집·제작 간부들은 물론이고 일선 기자들은 다른 매체의 ‘특종’을 따라가기를 생리적으로 싫어한다. 패배의식과 자존심 때문이다. 그러나 1972년에 일어난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보았듯이, 워싱턴포스트의 봅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이 ‘딥 스로트’의 제보를 받아 터뜨린 독점기사를 받지 않고 미적거리던 매체들은 대통령 닉슨의 사퇴를 부르기까지 한 그 심각한 사건을 나중에 허겁지겁 따라가느라고 진땀을 흘렸다. 이번의 ‘장준하 타살 의혹’이 ‘타살 확실’로 드러나는 사태가 벌어지면 처음부터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던 언론은 어떻게 해야 할까?


둘째, ‘장준하 타살 의혹’을 단신으로 다루는 보수신문들과 ‘관영화한 상업방송’인 KBS와 MBC, 실질적으로 관영방송의 성격이 짙은 YTN의 경영진은 현재 집권세력뿐 아니라 그들이 지지하는 ‘미래권력’에 불리한 사실은 아예 묵살하거나 축소하는 것을 철칙처럼 지키고 있다. 이것은 장기 파업을 끝내고 일터로 돌아간 세 방송사의 노조원들이 쉽사리 넘어설 수 없는 철옹성이나 마찬가지이다. 


셋째, 자유언론과 공정방송은 특출한 개인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확고한 의지를 가진 언론인들이 조직을 바탕으로 우애를 다지면서 끈질기게 싸워야만 성취할 수 있는 막중한 과업이다. 

김종철·언론인(전 연합뉴스 사장) | cckim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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