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8-13일자 기사 '올림픽 이후, 이명박에겐 이제 ‘내림픽’ 밖에 없다'를 퍼왔습니다.
[김주언 칼럼] 독도 방문은 임기말 레임덕에서 빠져 나오기 위한 몸부림
‘세대에게 영감을(Inspire a Generation)’이라는 슬로건 아래 17일간 열전을 펼친 런던 올림픽이 13일 막을 내렸다. 밤잠 설쳐 가며 성원을 보냈던 국민적 열기도 이젠 폭염처럼 한풀 꺾였다. 언론들은 너도나도 한국 선수단의 선전에 입에 침이 마를 만큼 찬사를 보냈다.
그렇다면 올림픽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주었나. 우리 선수가 금메달을 하나 추가할 때마다 질러댔던 환호성은 무엇이었나. 세계 5위의 성적을 거둔 만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먹고 살기가 그만큼 나아졌는가. 메달을 따고 금의환향한 선수들을 축하하고 함께 기뻐한다. 그렇지만 17일간의 올림픽 열기가 휩쓸고 간 뒷맛은 영 개운치만은 않다.
무엇보다도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 올림픽을 통해 나타난 맹목적 국가주의이다. 올림픽을 국가의 우월성이나 인종적 우수성을 과시하는 공간으로 여기는 것이 그거이다. 우리 선수의 메달에 환호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우리 선수의 승리에 대리만족하고 이를 통해 현실의 간난한 삶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메달 순위처럼 세계 5위의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금메달 순위에서 5위에 올랐다고 해서 한민족의 우수성이 세계에 과시된 것도 아니다. 언론이 이를 국가주의로 포장하여 전달하기 때문에 국민은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다.

박주영, 지동원, 정성룡 등 올림픽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10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카디프의 밀레니엄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3, 4위전에서 일본을 꺾고 동메달을 획득한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나라별로 메달을 집계하여 국가 순위를 매기는 것을 공식적으로 금지한다. 그러나 각국은 메달 수와 색깔을 따져 순위 매기기에 정신이 없다. 한국은 금메달 수를 우선으로 국가별 순위를 매긴다. 미국은 전체 메달 수를 기준으로 순위를 집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너나 할 것 없이 메달 수를 근거로 국가주의를 부추긴다. 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는 시청자들 보다도 먼저 흥분한다. 그 순간부터 올림픽 정신은 사라진다. 그 자리는 국가주의와 종족주의가 대신 차지한다.
올림픽 정신은 불굴의 의지로 어려움을 극복한 인간승리의 기록이다. 근대 올림픽을 부활시킨 쿠베르탱도 아마추어 정신에 입각한 친선경기로 세계인의 화합을 꿈꾸는 데 있다고 올림픽의 목표를 말했다.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 올림픽 강령 속에서 나타난 올림픽의 이상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올림픽은 맹목적 국가주의를 넘어 추악한 자본의 복마전으로 전락했다. 선수는 콜로세움 지하의 맹수처럼 사육되고 군중은 충실한 소비자로 동원된다. 자본은 그 위에 네로처럼 군림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스포츠는 국력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의 슬로건이다. 그래서 오직 메달을 위해 엄청난 규모의 체육진흥기금이 투입된다. 선수들은 태릉 선수촌에 모여 혹독한 훈련을 마다하지 않는다. 선수들은 오로지 금메달을 위해 전력투구한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소수의 스포츠 스타에게는 무덤에 갈 때까지 연금 등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기업들은 앞 다퉈 엄청난 포상금을 지급한다. CF 스타로 떠올라 돈방석에 안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올림픽이 자본의 노예가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프로 스포츠의 폐해가 올림픽에도 그대로 전가된 것이다.
축구 대표팀처럼 동메달이라도 따면 병역면제 혜택이 주어진다. 국위를 선양했다는 이유이다.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한국선수들은 금메달을 따면 2년간의 군복무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점이 승리를 거두는 데 상당한 동기부여가 됐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4년 동안 뼈를 깎는 고생을 하고도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은 쓸모없어진 경주마처럼 쓸쓸하게 사라질 뿐이다. 한국문화를 널리 확산시킨 K-POP 스타에게는 이러한 혜택도 없다. 누가 더 국위를 선양했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저 당연한 것으로 지나칠 뿐이다.
국가 대표 선수의 승리를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방송 등 언론은 누구보다도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간주된다. 그러나 지나친 국가주의는 승리했을 때의 기쁨도 격을 낮춘다. 더구나 올림픽의 본래 목적인 스포츠 정신과 지구촌의 화합은 오갈 데 없어진다. 이러한 국민적 열기 때문에 주요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묻혀버린다. 정치권력은 이를 활용하여 국민의식을 마비시키곤 했다. 이번 올림픽 기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림픽 기간동안 나라를 뒤흔들었던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의 온갖 비리, 파탄난 민생, 대선관련 뉴스들이 올림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거의 대부분의 신문들이 런던 올림픽 관련 뉴스들로 도배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방송들은 정기뉴스에서 절반이상을 올림픽 관련뉴스로 채워 다른 뉴스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대선관련 기사와 시중은행들의 약탈금융과 가계 ‘부채폭탄’, 한국경제의 저성장, 민생치안 등은 이제 주요뉴스에서 밀려났다. 그래선지 민주통합당은 아예 대선후보 경선일정을 올림픽 이후로 미뤘다. 새누리당은 오히려 공천헌금 파동 등 불리한 이슈가 관심권 밖에 머무르게 되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방송은 올림픽 보도에 올인하면서 영광 원자력발전소 고장이나 SJM 용역직원 투입 등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만한 뉴스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은진수 전 감사위원은 국민의 관심이 느슨한 틈을 타 가석방됐다. 은 전 위원은 부산저축은행 퇴출저지 청탁과 함께 거액을 받는 등의 혐의로 1,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과 추징금 70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의 가석방 결정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발표 다음 날 알려져 특혜 논란이 일었다. 은 전 위원은 2007년 한나라당 이명박 캠프의 클린정치위원회 BBK사건 대책팀장을 맡았으며 BBK 가짜편지를 기획한 것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막대한 중계권료를 회수하기 위해 총력적인 올림픽 몰입편성에 나섰다. 정규편성을 허물고 올림픽 관련 프로그램을 배치해 광고매출을 올리기 위해 온힘을 기울였다. 이에 따라 방송사 메인뉴스는 올림픽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치어리더’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방송장악 관련 사건이 줄지어 터져 나왔다. KBS는 김현석 새노조 위원장 등을 중징계했다. MBC에서는 김재철 사장에 대해 해괴한 폭로가 잇따라 터져 나오는데도 방문진 이사장 등 이사 3명이 재선임됐다. 사원들에 대한 대량 징계와 좌천이 꼬리를 물었고 PD수첩 작가들이 한꺼번에 해고됐다.
올림픽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전격 독도방문이 이어졌다. 독도방문은 올림픽 축구 한일전 개막 직전에 이뤄져 국민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정치적 꼼수’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임기말 레임덕에서 빠져 나오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에게는 독도의 분쟁지역화나 한일외교관계 마찰 등은 아예 관심 밖이었다. 더구나 독도방문 소식이 한국언론에 앞서 일본 언론들이 대서 특필하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철저하게 외면한 처사라는 비난여론도 들끓었다.
올림픽은 끝났다. ‘올림픽’이 있으면 ‘내림픽’이 있게 마련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에게는 ‘내림픽’만 남은 것 같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3%에도 미치지 못해 민생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 뻔하다. 곳곳에서 아우성 소리가 들린다. 시민단체는 물론, 여야 정치권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은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을 연임시켰다. 올림픽에서 초유의 성과를 거두고 자신의 독도방문으로 국민적 지지가 몰릴 것으로 착각한 것 같다. 국민은 더 이상 이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을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은 올림픽 열기에 묻힌 많은 사건들을 다시 끄집어내 성찰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국가주의에 물들고 자본에 사로잡힌 올림픽이라고 하더라도 끝나고 나면 그뿐이다. 언론매체들은 이제 올림픽 보도에서 손을 떼고 있다. 그만큼 국민의 올림픽 열기도 빨리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김주언·언론인 | newmedia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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