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IN2012-08-07일자 기사 '장하준의 항변 “박근혜를 지지하냐고?”'를 퍼왔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진보 일각에서 장하준 교수에 대한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박정희의 재벌 정책을 긍정해온 장 교수가 박근혜 의원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재벌과 박정희에 대한 장 교수의 생각을 들어봤다.
이른바 민주·진보 진영에게 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 대학)는 사문난적(斯文亂賊)인가. 이쪽의 한 명망 있는 교수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 타임라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전경련과 박근혜는 장하준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을 듯.” 그는 장하준을 ‘양심적 박정희주의자’로 일컫기도 했다.
한마디로 장하준은 ‘우리 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1960년대 이후 ‘민주·진보 진영’의 전통적 의제는 ‘반(反)(군부)독재’와 ‘반(反)재벌’. 그러나 장하준은 기업집단(재벌)의 유효성을 강조해온 ‘죄’가 있다. ‘민주당 경제민주화론’의 핵심인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 부활’이나 ‘순환출자 금지’ 등에 대해 기업집단의 강점을 크게 훼손할 거라고도 한다. 이에 더해 심지어 박정희가 국가 주도의 ‘자본 억압’ 정책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 발전을 촉진했다는 주장까지 겁 없이 내놓는다. 이로써 박정희의 딸이자 올해 대선의 유력 후보인 박근혜 의원이 장하준의 주장에 힘을 얻지나 않을까?
기자를 만난 민주당의 한 의원은 “선택(장하준 등의 최근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팀이 박근혜를 선택한 것 아닌가”라는 이야기가 당내에서 장난처럼 떠돈다고 말했다.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는 최근 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서 “박근혜 캠프에서 장하준·박노해 영입을 위해 노력 중이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새누리당이 대기업·중소기업 관계, 기업범죄 처벌 같은 부문에서 민주당 못지않은 법안을 내놓은 반면 재벌 대기업 지배구조 개혁(출총제 부활, 순환출자 금지)에서 미온적인 것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실제로 재벌그룹 관계자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들고 의원실을 찾아다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장하준 본인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정말 재벌 가문과 박정희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한 말을 하는 것인가. 7월20일 영국에 있는 장하준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시사IN 백승기 장하준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박정희를 좋아할 리 없다”라고 말했다.
요즘 유행하는 ‘검증’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다. 먼저 최근 여야가 기업범죄에 대해 재벌 총수 등을 법적으로 엄격히 처벌할 수 있는 법안들을 내놓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그런 법안이 사회적으로 논쟁거리가 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기업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형을 선고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풀어주거나 사면하고,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서 법이 우스워진 것 아니겠는가. 범죄자에겐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 그게 민주공화국의 기본이다.
대기업이 하청 중소기업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는 경우 피해 금액의 몇 배로 손해를 배상하는 법안도 제출됐다.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파생상품을 속여 팔았다가 벌금을 5억 달러 부과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5억 달러라고 해도 골드만삭스에겐 2주 동안의 순이익에 불과하다. 실질적 제재가 아니기 때문에 재범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해 대기업의 자산 및 이익 규모에 비례해서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벌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그 비율이 굉장히 낮은 것으로 알고 있다(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가해 기업 매출액 혹은 영업수익의 3% 이하-편집자). 핀란드의 경우, 자동차 속도위반을 하더라도 소득에 따라 범칙금을 내는데, 부자는 속도위반 한번 했다가 1억~2억원씩 벌금을 내기도 한다. 이처럼 하도급 거래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대기업은 예컨대 그해 이익의 10~20%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해서 눈물이 쏙 빠지게 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골목 상권을 보호하거나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정해 대기업의 진출을 막는 방안도 추진된다.현실적으로 특정 업종에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이 많이 몰려 있다면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선정해서 대기업의 진출을 막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 사태나 이후의 경제위기로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치킨점 등의 자영업을 많이 운영하지 않나. 물론 언젠가 대자본에 이런 영역을 풀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대기업 때문에 해당 업종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는 수준의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옳다. 그러나 이런 복지국가를 건설한다 해도 일부 소매업에 대한 대기업의 진출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대기업의 소매업 진출을 적극 장려해온 영국·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교외의 대형마트 때문에 도심이 공동화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대형마트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골목 상권이나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출총제 등을 되살려 재벌그룹의 경제력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재벌그룹이 힘이 넘치다보니 골목 상권까지 침투한다는 이야기다.골목 상권을 보호하는 것과 출총제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출총제 부활은 기업집단의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 아닌가. 그냥 골목 상권에 대한 법률을 정해 대자본이 중소기업 영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 된다. 왜 대기업 지배구조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기업집단을 약화시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경제력 집중의 부작용을 막는 방법은 이 밖에도 많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광장에서 칼부림을 한다면, 그 사람에게 정신 상담을 받게 하기 전에 칼부터 빼앗아야 하지 않나?
사실 장 교수는 예전부터 기업집단의 긍정성을 강조해왔다.기업집단 구조의 장점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무조건 약화시킨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기업집단 자체가 유해한 것이라면, 출자총액 비율을 30%까지 허용할 필요도 없다. 그냥 0%로 해서 기업집단을 해체해버리는 것이 낫다. 어떤 경제이론에서 20%는 되고 30%는 안 된다고 하던가? 좋든 싫든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기업집단으로 묶여 있는데 이를 느슨하게 만들다보면 자칫 국제 금융자본에게 주요 대기업들을 넘기게 될 위험이 크다. 지금 재벌가문보다 더 나쁘고 책임감 없는 금융자본이 대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하면서 노동자와 중소 상인들을 더욱 쥐어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외국의 무슨 금융자본이 대기업을 장악하면 누구와 싸워야 할지도 알 수 없게 된다. 국민들의 세금과 땀으로 키운 대기업들을 외자에게 넘기면 되겠나? 이것보다는 차라리 국유화가 낫다.
어떤 이들은 장하준이 재벌을 옹호하다 얼굴이 뜨거우니 변명조로 허황되고 이뤄질 수도 없는 국유화를 이야기한다고 비난한다.국유화가 별것인가. 먼저 국민연금이 대기업에 보유한 지분만 제대로 행사해도 재벌에 대한 정부의 입김을 강화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재벌가문에서 상속을 하는 경우(상속세율 50%) 상속세를 주식으로 내게 하면 국가가 ‘오너’가 될 수도 있다. 더욱이 이런 주식의 가격을 산정할 때도 그동안 국가가 해당 기업의 가치 상승에 기여한 부분을 따져 시가의 70~80%로 매입할 수 있다. 차라리 이런 방식이 주식시장의 논리를 가지고 재벌을 해체해서 시민들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해외 금융그룹에 우리 대기업을 넘기는 것보다는 낫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누구 말대로 ‘박근혜와 긴밀하게 협의’한 바가 있는가?나는 연구자다. 물론 나도 결과적으로 현실 정치에 개입한다. 그러나 그 방식은 연구와 그 결과물(책)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생각은 전혀 없다. 지금과 같은 식으로 책 쓰고 신문에 기고하여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내가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박근혜 의원은 5·16에 대해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5·16이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하는 마르크스주의적 구조주의 (‘불가피한’)와, 선택을 이야기하면서도 사실은 선택의 여지가 인정되지 않는 신고전파의 ‘합리적 선택이론’을 완벽하게 조합한 발언이다(합리적으로 계산해 보면 ‘최선의 선택’은 항상 구조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니까).
혹시 박정희를 좋아하거나 존경하나? 또 민주당보다는 오히려 새누리당이 기업지배구조 문제에 대한 장 교수의 견해를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는 듯한데, 이러다 ‘박근혜 지지자’로 몰리겠다는 걱정은 해본 적 없나?내 부친이 민주당 의원이었다는 점을 들어 나를 ‘민주당의 자식’이라고 색안경을 쓰고 보는 분도 있다. 그리고 개인적 감정으로 따지자면 박정희를 좋아할 리 만무하지 않겠나? 실제로 그의 시대에 온 집안이 고생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특정 인물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내 이야기를 정치권의 누가 갖다 쓴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내 생각을 정책에 반영한다고 해서 말릴 수는 없다. 요즘도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에서 각종 행사에 강연을 부탁하고 이에 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그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학자다. 그리고 학자로 남을 것이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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