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6일 토요일

인디 음악, 꼭 골방에서 라면 먹으며 하란 법 있나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6-16일자 기사 '인디 음악, 꼭 골방에서 라면 먹으며 하란 법 있나'를 퍼왔습니다.
[서정민갑의 뮤직코드] 인디 음악의 SM, 여기 일렉트릭뮤즈가 있다

한국에서 인디 음악이 시작된 지도 벌써 십수년이 지났다. 그동안 인디 음악은 홍대 앞을 중심으로 신을 형성하며 대형 연예기획사와 함께 한국 대중음악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쌍두마차가 되었다. 노브레인, 자우림, 크라잉 넛(Crying Nut) 같은 1세대 인디 스타들에 이어 최근에는 국카스텐, 장기하와 얼굴들, 에피톤 프로젝트 (Epitone Project) 같은 스타들이 인디 신의 가치와 존재를 알렸거나 알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인디 신은 몇몇 스타나 독특한 음악으로 구성된 유별난 동네가 아니다. 오직 홍대 앞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소규모이더라도 직접 제작하는 모든 제작 방식을 인디라고 규정하는 것이 본래의 의미이기에 인디 신에는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이 포함된다. 최근에는 탑밴드를 통해 인디 신의 밴드들이 자주 노출되고 있지만 인디 신에는 밴드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인디는 홍대 밖에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인디가 유별나거나 독특한 음악, 혹은 골방에서 라면 먹으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하는 고뇌의 진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인디를 힙한 트렌드 상품으로 포장하는 이들도 있고, 세련되고 대중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려는 이들도 있으며, 그에 반발해서 인디를 재정의하려고 하는 흐름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인디 신은 수십개의 레이블과 기획자, 뮤지션들이 클럽과 페스티벌, 온오프라인 시장, 음악 팬들을 토대로 음악의 생태계를 구성하며 운영되고 있는 중이다.
인디 신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것은 레이블이다. 레이블은 취향의 공동체이자 제작과 프로모션을 위한 인디의 방식이다. 인디 신의 초기부터 현재까지 인디 신의 명암을 만들어 온 것이 바로 레이블이다. 수많은 레이블이 명멸하며 인디의 역사를 쓰고 인디의 지도를 그려왔다. 한 두 레이블로 구축된 나이테가 아니다. 그 가운데 일렉트릭 뮤즈(Electric Muse) 역시 그들만의 음악으로 인디의 역사에 빛나는 조각을 더하고 있는 중이다. 

일렉트릭 뮤즈 family tree

2006년 뮤지션이자 기획자인 김민규가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밴드 플라스틱 피플(Plastic People)의 두 번째 앨범을 제작하며 시작된 레이블 일렉트릭 뮤즈는 이제 비둘기우유, 아톰북(Atombook), 플라스틱 피플, 굴소년단, 오르겔탄츠(Orgeltanz), 드린지 오(Dringe Augh), 아미(Army), 빅베이비드라이버(Big Baby Driver), 김목인, 2 스토리(2 Story), 텔레플라이(Telefly), 빛과 소음, 글리터링 블랙니스, 폴(Glittering Blackness, Fall), 다방밴드, 선결(Sunkyeol), 스타리-아이드(Starry-Eyed), 강건너 비행소녀가 소속되거나 거쳐간 대가족으로 늘어났다. 

'비둘기우유'

직간접적으로 제작한 음반도 스물 두장이나 된다. 그리고 ‘쉽진 않았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던 지난 5년의 역사를 자축하기 위해 일렉트릭 뮤즈는 5주년 기념음반을 내놓았다.

텔레플라이

기념 음반은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시디에는 일렉트릭 뮤즈가 제작한 스물 두 장의 음반 가운데 베스트 트랙 14곡이 담겨있고, 두 번째 시디에는 일렉트릭 뮤즈에서 활동하는 팀들의 신곡이 담겨 있다. 베스트 트랙은 일부 곡의 믹싱과 전체적인 마스터링을 다시 했다. 그렇게 담긴 곡이 모두 스물 여덟 곡이다. 음악만 담은 것이 아니다. 레이블의 역사와 음반, 뮤지션을 정리했고 평론가와 뮤지션들의 코멘트도 함께 담았다. 그렇게 근사한 64페이지의 부클릿이 담긴 기념 음반이 탄생했다.

'김목인'

대개의 레이블들이 동일한 장르를 지향하는데 반해 일렉트릭 뮤즈에 소속된 뮤지션들은 장르가 천차만별이다. 록과 블루스, 포크, 포크 록, 사이키델릭, 슈게이징, 팝, 포스트록을 아우르는 일렉트릭 뮤즈의 음악적 영역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신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일렉트릭 뮤즈에서 내놓은 음악의 장르는 이렇게 모두 다르지만 일렉트릭 뮤즈의 음악은 트렌드를 고려하거나 영합하지 않고 모두 분명한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다.

'드린지 오'

강한 개성과 음악적 치밀함을 지닌 일렉트릭 뮤즈의 음악은 장르와 무관하게 하나같이 마음의 빗장을 열고 스며든다. 싱어송라이터이건 밴드이건 마찬가지이고 몸을 움직이게 하건 마음을 일렁이게 하건 마찬가지이다. 친근하거나 익숙하지는 않지만 음악을 제대로 듣는 이라면 결국 만날 수 밖에 없고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완성도이다.
이렇게 많은 뮤지션들 중에 유명 뮤지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렉트릭 뮤즈는 일렉트릭 뮤즈가 아니라면 듣기 힘든 음악을 계속 내놓으며 인디의 한 켠을 튼실하게 지켜왔다. 다만 일부러 TV에 나오려고 애쓰지 않았고 트렌드에 맞추려 애쓰지 않았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제대로 하려고 했고, 제대로 만들려고 했으며 그 과정을 통해 뮤지션과 레이블이 함께 성장하고자 했다. 인디의 존재 방식에 충실하며 음악과 제작을 더 깊고 활발하게 하되 제 속도를 잃지 않으려 한 것이 바로 일렉트릭 뮤즈의 지난 5년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조금씩 꽃피어 가고 있다. 비둘기우유 등이 해외 투어 공연을 다녀오고 일본으로 음반이 유통되고 있으며 다른 레이블들과 함께 하는 기획도 공연과 음반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발족한 인디 제작자들의 연대 모임인 한국독립음악제작자협회에도 일렉트릭 뮤즈가 큰 힘을 보태고 있다. 이 두 장의 기념 앨범은 바로 그 시간의 기록이며 열매이다. 의미 있는 성과이며 동시에 아름다운 성과이다. 그리고 그 성과를 수긍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기념 앨범이다.
단지 다양하거나 독특하기 때문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로 인디 신의 한 정점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디 음악을 모르는 이건, 인디 음악을 아는 이건 좋은 음악을 듣고 싶다면 일렉트릭 뮤즈의 숲을 지나가야만 한다. 이 기념 앨범은 친절하고 따뜻한 지도가 되어 줄 것이다.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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