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04일자 기사 '‘썼다 찢은 유서’ 로 대구 자살 고교생 심리분석해보니…'를 퍼왔습니다.
지난 2일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고등학생 김아무개(16)군의 빈소가 차려진 대구 ㄱ병원 장례식장에서 4일 오후 조문객들이 문상하는 동안 김군의 아버지(맨 오른쪽)가 눈물을 닦고 있다. 대구/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넉달전 유서에 “이제 절 잊고”…그건 ‘도와달라’ 외침이었다
극단적 우울증 가능성
가족·친구에 ‘미안하고 고맙다
’자살 직전 상태인 자책 드러내
학교 심리상담으론 발견 한계
비극 막을 방법은 없나
‘내 애는 괜찮겠지’ 생각은 금물
죽음 암시땐 심리치료 도움을
지난 2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 ㅅ고 김아무개(16)군은 적어도 지난 2월부터 강도 높은 자살 충동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김군은 3쪽에 걸친 유서 형식의 메모를 쓴 적이 있다. 김군의 아버지(45)로부터 이 메모를 건네받아 전문가들에게 분석을 맡겼더니 “우울증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높고 강도 높은 자살 징후를 보였다”고 진단했다.
당시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김군이 자필로 쓴 메모에는 마침표가 없다. 문장은 정렬되지 않고 혼란스러우며, 글자는 흐릿하다. 글의 내용도 논리성이 떨어진다.
유서를 살펴본 최승원 대전대 교수(임상심리학)는 “자살 직전까지 몰린 사람들은 합리적 의사판단이 어려워져 논리적인 글을 쓰기가 힘들어진다”고 분석했다. 강원대 의대 황준원 교수(소아청소년정신과)는 “심리적으로 불안·초조감이 심하면 글의 내용이 혼란스러워지고 글씨를 평소와 다르게 휘갈겨 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유서를 쓰던 지난 2월 이미 ‘자살 직전’ 상태였다는 것이다.
죽음을 결심한 김군은 유서에서 거듭 “미안하고 고맙다”고 썼다. “엄마, 정말 죄송해요. 그래도 저를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빠 사랑해요. 성질내서 죄송해요.” “○○(동생)아, 정말 미안해. 언제나 고마웠어.” “○○(친구),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언제나 신경써줘서.”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10대 중반의 김군이 극심한 ‘자기 책망’ 상태였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최승원 교수는 “자살 직전 상태에 놓인 사람들은 타인을 원망하기보다는 모든 게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군의 고통을 주변에선 알아차리지 못했다. 김군은 이 유서를 썼다가 찢어 버렸다. 나중에 부모가 알게 돼 무슨 일인지 물었으나 “아무 일 없다”고만 답했다고 김군의 아버지는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미 김군의 상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었다고 지적했다. “자살을 결심한 아이들은 이미 부모나 교사의 도움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판단이 선 상태이므로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며 “유서를 쓰기 훨씬 이전부터 자살 결심을 했을 것”이라고 최승원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학교에서도 김군의 고통을 눈치채지 못했다. ㅅ고 관계자는 “올해 초, 학교에서 실시한 심리상담에서도 김군의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일선 학교의 심리상담은 ‘가벼운 문제’만 감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울증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람은 적극적으로 외부에 도움을 구하게 되므로 일선 학교의 심리상담에서 발견될 수 있지만, 김군처럼 중증의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엔 설문조사 수준의 심리상담에서 자기를 속이는 응답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중고생 자살을 막겠다는 취지로 실시되는 학생 심리상담의 한계이기도 한데, 유일한 방법은 증세가 가벼울 때 일찍 발견하는 것뿐이다.
여기에 전통적 가치관이 강한 대구의 지역적 특성도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승원 교수는 “대구처럼 권위적 문화가 강해 (부모간 또는 사제간) 상하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내 아이에게 심리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기가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죽음의 릴레이’를 막는 근본적 해결 방법도 여기에 있다. 최 교수는 “아이들로부터 부정적 소식을 듣는 것을 부모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했고, 황 교수는 “죽음과 관련된 글 또는 그림을 낙서나 메모 형태로 남기거나 혼잣말로 하면, 위급 상황으로 판단하고 빨리 정신보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고 말했다.
“이제 절 기억에서 잊고 편하게 사세요”라고 김군은 유서 마지막 대목에 적었다. 김군의 이 글은 자신에게 신경을 써달라고 외치는 강렬한 요구이기도 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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