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9일 화요일

‘불통’보다 더 한 박근혜 정부의 ‘먹통’ 언론관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4-09일자 기사 '‘불통’보다 더 한 박근혜 정부의 ‘먹통’ 언론관'을 퍼왔습니다.
[김주언 칼럼] 청와대, 기자들에 실명보도 주문부터 맞춤법까지… 관급기사 망령 조짐

이른바 ‘관급기사’가 모든 신문을 도배하고 방송은 이를 앵무새처럼 되풀이 읽어대던 시절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가 철권통치를 하던 유신독재시절이다. 정부에서 홍보성 기사만을 열심히 보도하도록 배려(?)해주던 시절이다. 물론 정부에 비판적 기사는 철저하게 틀어막았다. 중앙정보부는 매일 언론사에 보도지침을 시달했다. 보도지침을 지키지 않으면 ‘남산’에 끌려가 치도곤을 당했다. 신문사 편집국이나 방송사 보도국에는 정보기관원이 상주했다. 이러한 언론통제 상황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까지 이어졌다.

당시 신문과 방송은 거의 똑같은 뉴스를 반복해서 내보냈다. 그래서 ‘제도언론’이란 비아냥섞인 표현이 널리 회자됐다. 기자들은 힘들여 취재할 필요가 없었다. 언론인 출신인 정부 각 부처 대변인들이 불러주는 대로 정리해서 기사를 작성하면 그만이었다. 기사 크기와 제목도 중앙정보부에서 하달했기 때문에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기자’ 대신 ‘필경사’라는 자조섞인 호칭이 어울리던 시절이었다. 기자들은 기사 사이에 숨은 뜻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독자들도 이를 찾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행간 읽기’란 말이 이때 등장했다.    

‘부전여전(父傳女傳)’이라고나 할까. 독재자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뒤 40여년 전의 ‘관급기사’ 행태가 되살아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가 출입기자들에게 ‘익명보도’를 자제하고 ‘실명보도’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김행 대변인은 “대통령의 생각과 동떨어진 내용이 ‘청와대 관계자’라는 익명으로 기사화하는 사례가 잦다”며 “관계자로 나간 기사는 청와대와 무관함을 명백히 밝히며 책임질 수 없다”고 밝혔다. 일종의 협박인 셈이다. 청와대가 발표한 내용만을 써 달라며 ‘받아쓰기’를 강요하는 걸까.   

김 대변인만이 아니다. 이정현 정무수석은 “앞으로 기사 쓸 때 ‘이정현 정무수석’이라고 정상적으로 써 달라”고 당부했다. 윤창중 대변인은 “오늘부터 ‘고위소식통’ ‘고위관계자’라는 말은 브리핑할 때 쓰고 그만 쓰도록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프레스 프렌들리’를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 초기 이동관 대변인이 자신의 이름 대신에 ‘핵심 관계자’로 써달라며 ‘익명보도’를 주문했던 것과는 천양지차이다. 그래서 이 대변인의 별명이 ‘이핵관’이라고 했던가. ‘불통정부’로 불리는 두 정부의 언론정책 차이가 드러난 것일까. 실제로는 박근혜 정부가 ‘불통’의 대명사로 불렸던 이명박 정부 보다 더욱 심한 것 같다. ‘먹통정부’라고나 할까.   

김 대변인은 한술 더 떠 황당한 제안을 내놓았다. 기자들이 취재가 필요한 사항을 적어 주면 내용을 확인해 줄 테니 자신의 이름을 달아 기사화해달라는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들의 ‘취재 청탁’을 들어주겠다는 것이다. 대변인이 취재를 대신해주면 기자는 무얼 하라는 것인가. 취재 청탁만이 아니라 아예 기사까지 작성해 주면 더욱 좋으련만. 이제는 청와대 대변인이 ‘관급 기자’로 나서려는 것일까. 그러면 월급도 언론사에서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아직도 자신이 기자라고 착각하고 있는 청와대 대변인의 모습이 안쓰러울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언론이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크게 위축시킬 수 있는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기자들이 내세우는 언론자유가 ‘익명보도’ 때문에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언론은 사실보도에 기초한다는 것은 교과서에도 나와 있다. 진실보도를 위해서는 실명보도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사를 실명으로 작성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보도내용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익명처리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있다. 

특히 ‘익명 보도’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서는 기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언론윤리의 가장 커다란 덕목이다. 정치권력 등 사회적 강자들의 비리나 부도덕성 등 환경을 감시하고 비판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취재원을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물론 사실에 근거한 보도의 경우에 국한되지만. 다소 생소하지만 전 세계에서 ‘취재원 비닉권(秘匿權)’이 널리 통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자들은 취재원 보호를 위해 옥살이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지 못하면 기자들은 영원히 취재활동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청와대는 관급기사 ‘받아쓰기’를 강조하더니 이제는 기자들에게 ‘띄어 쓰기’ 맞춤법 교육까지 시킨 모양이다. 김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라고 쓰면 틀리고 ‘박근혜정부’로 붙여 써야 맞다고 했단다. 고유명사이기 때문이란다. 국립국어원의 감수까지 받았다고 했다. 김 대변인은 또 ‘새 시대’는 띄어 써야 하며, ‘평화통일 기반 구축’에서 ‘평화통일’은 붙이고 ‘기반 구축’은 띄어 써야 한다고 짚었단다. ‘희망의 새 시대’라는 슬로건 서체까지 일관성과 통일성을 강조했다니 청와대 대변인이 할 일이 너무 많다. 정책브리핑은 물론이고 ‘청탁취재’에다 ‘맞춤법 교육’까지. 기자들 뒤치다꺼리는 또 언제 하나.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는 모두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곤혹스러워 했다. 이 때문에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에 ‘언론과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내걸고 언론과 의제경쟁을 벌였다. 언론의 오보에 대해 적극 대응하는 한편으로 대국민 직접커뮤니케이션에 나섰다. 정보공개를 제도화하고 언론을 통하지 않고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채널을 구축해 활용했다. 인터넷이라는 쌍방향 통신망을 활용하여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물론 이 때문에 언론과 불필요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운 소통방식으로 환영받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정보공개시스템에서는 정부기관 검색에서 청와대가 사라졌다는 주장이 나왔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정보공개시스템’의 검색 리스트에서 청와대가 빠져버렸다고 밝혔다. 정부는 조직 개편중이기 때문에 정보공개접수처를 새로 등록하는 작업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고의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청와대가 늑장을 부리기 때문이란 것이다. 청와대 고의로 정보공개를 회피하려고 하는지,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가 이러한 의혹을 낳은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발표되지 않은 사안이 보도되는 걸 꺼려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시절 발표되지 않은 내용이 보도되자 발설자를 찾기 위해 직접 추궁했다는 얘기도 있다. 인수위 시절에는 아예 취재를 위한 기자들의 접근조차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대변인의 적절한 브리핑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대통령에 취임했다고 해서 이러한 성향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입조심을 유난히 강조하는 박 대통령 때문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은 입을 열지 못한다. 전화 취재에 응하는 경우도 드물다. 청와대가 그토록 싫어하는 ‘사실무근의 기사’가 많이 보도되는 이유는 이러한 불통 때문이다. 

유신독재시절 퍼스트 레이디로 활약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언론관은 무엇인가. 언론은 통제의 대상이자, 정부기관의 하나로만 여겼던 아버지 박정희의 그것을 빼닮은 것 같다. 박 대통령은 보도지침과 관급기사로 언론을 획일화시켰던 ‘제도언론’을 그리워 하는 것일까. 박정희 시대의 ‘국민총화’를 ‘국민대통합’이란 구호로 바꿔 내건 박근혜 정부가 언론의 ‘다원성’을 무시하려는 태도는 매우 우려스럽다. 민주주의의 기본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언론의 다원성’은 민주주의의 대원칙이다. 여론은 각계각층 국민의 다양한 의견 표출과 이를 대변하는 언론이 있어야만 형성될 수 있다.
김주언·언론인 | newmedia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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