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8일 일요일

‘실적 압박’ 어떻기에… ‘매출이 곧 인격’, 백화점, 매 시간 체크하며 채근


이글은 경향신문 2013-04-27일자 기사 '‘실적 압박’ 어떻기에… ‘매출이 곧 인격’, 백화점, 매 시간 체크하며 채근'을 퍼왔습니다.

ㆍ실적 저조땐 가매출 금액 할당까지
ㆍ입점업체 직원, ‘을’입장서 대응 못해

4개월 새 롯데백화점 입점업체 판매직원 2명이 투신자살했다. 유가족들과 주변 동료들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이유를 “매출 압박 때문”이라고 말한다. 백화점 측은 “개인적인 이유로 숨졌다. 백화점 측과 무관하다”고 맞선다. 이들이 숨지기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백화점과 입점업체 간 ‘먹이사슬’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경향신문이 추적했다.

■ 유족·동료들, “매출 압박 때문이다” 

서울 롯데백화점 청량리점 여성의류매장에서 근무하던 ㄱ씨는 지난 21일 오후 백화점 7층에서 몸을 던져 숨졌다. 유족이 공개한 ㄱ씨 휴대폰에는 “그만 좀 괴롭혀요. 대표로 말씀드리고 떠납니다”라고 백화점 직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남아 있다. 며칠 전 ㄱ씨가 백화점 관리자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에는 “오늘은 5백이란 숫자를 가까이 하라. 시간별 매출 조회를 하라”며 매출을 채근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 1월에는 롯데백화점 경기 구리점의 아웃도어 매장에서 근무하던 ㄴ씨가 휴가 직후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전국민간산업서비스노동조합연맹과 ㄴ씨의 지인 등의 말을 종합하면, ㄴ씨는 다른 직원 몇 명과 사흘간 휴가를 다녀온 뒤 백화점 관리자로부터 “왜 출근을 하지 않느냐. 그럴 거면 아예 그만두라”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 백화점 측, “개인적 이유다”

롯데백화점 구리점 측은 “ㄴ씨에게 출근하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한 적도, 가매출 압력을 한 적도 없다”며 “본사 휴무규정 등이 어떻게 되는지 공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인 이유로 자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량리점 역시 ㄱ씨의 자살 이유는 개인 채무 때문이라고 밝혔다.

구리점 사건은 종결됐다. 경찰은 백화점 측 의견을 받아들여 자살로 결론지었고, 백화점 측은 성금을 건넨 것으로 ‘책임’에서 벗어났다. 청량리점 사건은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경찰은 채무 과다로 인한 자살로 결론지으려 했다. 하지만 유족들이 “매출 압박 때문에 자살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백화점 측의 과실을 살펴보고 있다. ㄱ씨의 딸은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엄마가 일하던 백화점에 매니저가 새로 들어오면서 엄마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줬다. 매출 압박부터 가매출까지 하라고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매출 압박, 상상 초월한다”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여성의류나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백화점이 아닌 입점업체 본사와 계약 관계에 있다. 매출의 일정 비율은 백화점에 수수료로 떼어주고, 나머지는 본사와 협의한 비율대로 월급으로 가져간다. 이들은 백화점에서 일하지만 백화점 직원은 아니다. 근무지시 등을 받을 이유가 없지만 일상적으로 실적압박 등을 받고 있다.

모 백화점 내 유명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고영주씨(43·가명)는 “백화점 각층 점장과 팀장들은 매출 규모가 인사고과에 반영되기 때문에 입점 업체들에 엄청난 매출 압박을 가한다”며 “몇몇 백화점의 경우 매 시간 매출을 체크한 뒤 입점업체 직원들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채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매직원 박선희씨(38·가명)는 “예컨대 백화점이 하루에 5000만원 매출을 목표로 했는데 2000만원이 부족하면 브랜드 직원들을 불러다놓고 이 매장은 250만원, 저 매장은 300만원 이런 식으로 가매출 금액을 할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의류나 화장품은 유행을 탄다. 예컨대 평소에 1개 팔리던 립스틱이 드라마에 여배우가 바르고 나오면 1000개씩 팔리는데, 그 다음달에 ‘왜 지난달만큼 못 파느냐’고 닦달한다”고 주장했다.

■ “매출 압박에 대응 수단 없다”

백화점과 ‘갑을관계’를 맺고 있는 본사에 소속된 판매직원들은 백화점의 매출 압박에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한다. 매출이 부진하면 다음 리모델링 때 눈에 띄지 않는 코너 쪽으로 매장을 옮긴다거나, 본사에 직원 교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휴가를 못 쓰게 하거나 고객 안내장이나 쿠폰북 등에 매장 광고를 내주지 않는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 외에도 인사를 받아주지 않고 ‘능력이 없다’라고 무시하는 것도 큰 스트레스”라고 호소했다. 박선희씨는 “매출 스트레스에 고객 불만호소 등이 겹칠 때면 ‘기댈 곳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죽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몇 번씩 한다”며 “오죽하면 판매직원들 사이에 ‘매출이 곧 인격이다’라는 말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한솔·박순봉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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