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8일 일요일

"개성공단은 매일 작은 통일이 이뤄지던 곳..."


이글은오마이뉴스 2013-04-27일자 기사 '"개성공단은 매일 작은 통일이 이뤄지던 곳..."'을 퍼왔습니다.
[스팟인터뷰] 김진향 한반도평화경제연구소장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존폐기로에 섰다.

정부의 '개성공단 체류인원 전원철수' 조치에 따라 27일 오후부터 남아있던 남측 근로자들이 순차적으로 귀환했다. 철수 거부 입장을 밝히는 기업들도 있지만 공단 폐쇄라는 최악의 가능성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개성공단은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5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적 산물이다. 회담직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북쪽의 제안을 받아들여 황해북도 개성시 봉동리 일대 2천만 평 부지에 공단을 조성하기로 결정했고, 그해 8월 현대아산과 북 아태평화위원회는 '공업지구 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공단 착공에 들어간 것이 2003년 6월의 일이니 꼭 10년 만에 개성공단은 설립 후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셈이다.

개성공단은 2008년 금강산관광객 박왕자씨 피격사망 사건,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된 가운데서도 정상 가동되며 남북관계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해왔다. 이 때문에 개성공단 폐쇄로 이어질 경우 남북 양측이 치러야 할 대가는 만만치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지난 2008~2011년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기업지원부장을 지냈던 김진향 한반도평화경제연구소장(정치학 박사)는 그동안 공단이 유지됨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적 가치를 놓고 보면 개성공단의 폐쇄가 가져올 여파는 실로 엄청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소장은 특히 안보적 관점에서 개성공단의 폐쇄는 남북간 무력충돌의 완충지대가 없어지는 아주 위험스런 상황을 낳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소장은 또 "북측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북측의 속내는 불안했던 남북 관계를 완전히 해소하고 개성공단 문제를 정상화시키면서 당국 관계를 새롭게 복원하는 것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다음은 26일 오후 김 소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요약한 것이다. 인터뷰는 충무로의 한 커피숍에서 진행됐다.

북측 입장에선 개성공단이 안보의 아킬레스건
▲ 김진향 한반도평화경제연구소장이 정부의 개성공단 체류인원 전원 철수 결정이 발표된 26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개성공단은 남북의 긴장국면을 줄일 수 있는 곳"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남소연


-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던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 때도 큰 문제없이 돌아갔던 개성공단이 왜 이 시점에 폐쇄가능성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 것인가.
"3년 반 동안 개성공단에 있으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하는 것이 협상이었다. 협상을 하려면 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쟤가 왜 저러지, 쟤가 왜 저런 말을 했을까?'하고 말이다. 어떨 때는 아주 기만적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북측의 성명을 그대로 읽어 줄 필요가 있다. 있는 그대로 봐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북측에서 가장 큰 우려는 안보 문제다. 그런데 위성을 발사했다고 고강도의 제재를 받는 상황 아닌가. 북한 입장에선 미국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할 거다. 그 뒤 3차 핵실험으로 이어졌는데, 이 모든 것은 북미 관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북한 나름의 고강도 전략이다. 

북측은 이번 기회에 그들이 일관되게 주장해오고 있는 정전협정 폐기, 평화협정 체결 등 근본문제를 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와중에, 남측 정부와 언론이 개성공단을 통해 자신들의 존엄을 건드리면서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판단, 개성공단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북한 입장에선 개성공단이 그들 안보의 아킬레스건이다. 내가 개성공단에 있을 때 김영철 정찰총국장, 당시에는 국방위원회 정책국장이었는데, 이 사람이 1박2일씩 세 차례나 개성공단에 내려왔다.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북측 근로자들에게 일관되게 이야기했던 것이 '개성공단이 자본주의 황색바람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거였다. 북측은 체제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은 용납하지 않는다. 60년간 미국하고 전쟁을 하고 있는 체제 아닌가. 

우리는 상상을 못하지만 북한은 키리졸브 훈련할 때마다 한 달씩 산에 들어간다. B-2 폭격기가 날아오고, 핵잠수함이 오고 이지스함이 오는데 왜 안 그렇겠나. 아무리 인민경제 건설이 중요하다고 해도 안보 다음의 문제다.  그러면서도 북측은 그동안 인민경제 건설이라는 관점 속에서 남북경협도 하고, 이것을 통해 남북간 정상적 관계도 만들면서 그 속에서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지난 5년 동안의 이명박 정부 아래서 개성공단이 완전히 좌초하다시피 숨통만 간신히 유지해온 상태였다. 그래서 북측은 '뭐 좀 제대로 해보자' 이렇게 치고 나온 거다."

개성공단 바라보는 시각, 남북간 큰 차이

- 김 소장께서는 개성공단을 바라보는 남북의 시각에 아주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본질적인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 인식이 다르다. 우리가 북측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당연히 결과론적으로 개성공단도 안 보이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개성공단을 통해, 우리식 표현이지만 개혁개방으로 가려고 했다. 김 위원장에겐 '북미 관계만 정상화되면 중국보다 더 빠른 시간 안에 발전할 수 있어, 남측의 자본과 기술이 있으니 우린 중국의 도움을 안 받을 거야'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만 하더라도 '개성공단 같은 거 10개, 20개 만들자' 이런 입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정말 개성공단 모델이 성공하기를 바랐다.

개성공단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이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08년 12월 북한 군부에서 개성공단 실사를 나왔다. 당시에도 김영철이 왔는데, 당시 그가 한 얘기가 '장군님께서는 MB정부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어려운 조건 속에서 기업을 하겠다는 남측의 기업가들은 어떻게든 지켜줘야 한다'는 거였다. 이것은 유업이고 지도자의 지침이다. 그래서 입주기업들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아야 한다는 기조가 있었던 거다. 하지만 지난 5년간 개성공단은 그야말로 명맥만 유지했다. 

2008년 2월부터 2011년 7월까지 기업지원부장을 하면서 이명박 정부 아래 개성공단이 오그라드는 과정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모든 협상을 내가 다 했기 때문에 그 자괴감이란 정말 말로 하기 어렵다. 어떨 때는 이런 것 다 시키나 싶을 정도로 참담했다."

"MB정부 5년간 북측은 늘 '정말 개성공단 하려는 건가' 물었다"
▲ 김진향 한반도평화경제연구소장이 정부의 개성공단 체류인원 전원 철수 결정이 발표된 26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개성공단은 남북의 긴장국면을 줄일 수 있는 곳"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남소연


- 구체적으로 그 기간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나.
"우리는 박왕자씨 피격사건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는 순서로 갔다고 생각하는데, 최초의 어그러짐은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 3000'을 이야기 했을 때부터 예고됐던 일이다. 2007년 12월 27일 남북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숙원사항인 북측 근로자들을 원활히 수급하기 위해서 이 사람들의 숙소를 짓자는 합의를 했다. 남측에서 자재를 가지고 오고 북측이 부지와 노동력을 제공해서 근로자 숙소를 짓는다는 합의였다. 그런데 이 합의가 두 달만에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부정된다.  

신정부가 들어와서 '무슨 소리냐'고 한 거다. 이 대통령이 현대그룹 이야기하면서 근로자들을 모아 놓으면 파업한다고 그랬던 것 아닌가. 북측에는 파업의 개념조차 없는데, 그때부터 북측은 우리를 아주 한심하게 봤다. 2008년 3월에는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비핵개방 3000'을 이야기하면서 공식적으로 '핵문제 해결 없이는 개성공단은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고 말을 했다. 

북측이 나를 찾아와서 어떻게 통일부 장관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고 따지는데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뀌었으니 정책도 바뀔 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북측은 분단 60년 체제 속에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가장 획기적인 사건으로 바라보고 개성공단을 김정일 위원장의 가장 확실한 유업으로 본다. 그것이 부정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부정이 되어버린 거다. 그때부터 개성공단은 계속 삐걱 거렸다.

'개성공단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 번 해 볼까요' 하면 정부에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조용히 해', '나서지 말고 납작 엎으려 있어'라고 했다. 당초 남북이 합의했던 개성공단 사업은 최종 3단계까지 2000만평을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1단계가 100만평을 개발하는 거였는데, 지금도 40%밖에 활용이 안 되고 있다. 최초 계획에는 2010년이 되면 1단계 100만평은 완벽하게 풀가동이 되고 450개 기업에 15만 명 정도가 가동이 되는 프로세스지만, 2008년부터 모든 것이 올스톱이 되버렸다. 

북측 입장에선 '뭐야 이거, 이럴 수 있어?', '정상화 시켜야 될 거 아냐, 왜 안해?' 그러는 와중에 이것도 터지고 저것도 터지고 했던 거다. 그 와중에 북측은 늘 일관되게 물었다. '정말 개성공단 하겠다는 것이냐'고. 난 '좀 더 기다려보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맡은 일이 내용적으로는 대북협상이었지만, 실상 했던 것은 위기관리 밖에 없었다.  한 마디로 문고리 잠그고 나오는 역할이었다. 위기관리가 1단계, 2단계, 3단계를 거쳐 최종단계에 이르면 소개(疏開)계획을 실행하고 맨 마지막에 나오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래서 지금  개성공단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빤하게 보인다. 그것만 했으니까."

- 일각에서는 개성공단은 북한의 돈줄이기 때문에 북측이 쉽게 포기하지 못 할 것이란 인식도 존재한다.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다. 이게 우리가 북측을 너무 모르고, 개성공단을 너무 모르면서 잘못된 추정을 일반화해서 전략을 짜니까 이런 지경까지 온 것이다. 북측은 이런 말을 들으면서 정말 모욕감을 느낄 거다. 사실 북측은 개성공단에서 우리 기업들이 얼마를 버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수십 배를 더 번다. 회계자료가 말해준다. 그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그렇게 벌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러니 기업들은 한 명이라도 더 북측 근로자들을 쓰려고 한다. 고용만 하면 한 명이 매달 최소한 100만 원 이상 벌어주니까. 한 달 월급 13만 원을 받는 근로자들이 말이다. 정말 많이 버는 기업은 북측 근로자 한 명이 임금의 20~30배 창출해 준다."

"완충지대 역할한 개성공단, 경제적 가치만 있는 게 아냐"
▲ 김진향 한반도평화경제연구소장이 정부의 개성공단 체류인원 전원 철수 결정이 발표된 26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개성공단은 남북의 긴장국면을 줄일 수 있는 곳"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남소연


- 최악의 가정이지만 이제는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상황까지 예상해야 한다. 그럴 경우 남북한 각자의 손해 규모는 어떻게 예상하는가.
"개성공단의 순기능이 어떤 게 있는가를 역으로 생각해 보면 되지 않을까. 먼저 경제적 가치를 한 번 따져보자. 통계를 보면 개성공단에서 1년에 5억 달러를 생산한다. 그런데 이 5억 달러가 임가공 단가다. 단순 봉제비만 그렇다는 거다. 개성공단 123개 업체 중에 70%가 봉제기업인데, 이렇게 생산된 제품이 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로 들어간다. 납품 단가로 하면 5~10배다. 대략 중간쯤인 7배라고 치면 35억 달러다. 내 개인적으로는 최소 10배 이상은 된다고 본다. 우리가 북측 근로자들에게 주는 임금은 한해 900억 원이다. 몇 배가 차이 나겠나? 

둘째는 간접적인 경제적 가치다. 개성공단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해외 투자자들이 어떻게 판단할까? 셋째는 평화적 가치다. 내가 맡았던 역할 중 하나가 기업의 새로운 주재원이 들어오면 북측의 사회와 문화, 가치체계, 관습 이런 것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된다고 늘 이야기를 했다. 이 사람들이 매일 북측 사람들과 만나 상호작용을 한다. 처음엔 열도 받고 오해도 많고 별의별 일들이 다 벌어진다. 하지만 결국 오해는 다 풀리게 되어 있다. 개성공단은 남북의 이질적 가치들이 정말 용광로 안에서처럼 서로를 배워가는, 매일 매일 작은 통일들이 발현되는 사회문화적 교류의 장이다.

마지막으로 안보적 가치를 생각해 보자. 개성공단이 들어서면서 뒤로 물러났던 북한군이 공단이 문을 닫으면 다시 전진배치 될 것 아닌가(기자 주 : 공단 착공 전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인민군 6사단은 평양 쪽 후방으로 10여 Km 물러났다). 개성-파주-문산 축선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주요 공격로 2곳 중 하나였다. 개성공단은 그동안 남북 간에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완충지대 역할을 해오지 않았나. 이게 없어지면서 일어날 수 있는 충돌을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과연 이런 가치들을 경제적으로만 따질 수 있는 건가? 우리 기업인들은 이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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