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30일 화요일

산양 숨어 사는 설악산, 이러다 큰일 난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4-29일자 기사 '산양 숨어 사는 설악산, 이러다 큰일 난다'를 퍼왔습니다.
[2013 전국투어-강원⑦] 케이블카 설치 여전히 논란...관모능선 설치 재신청
(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합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4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간 첫 번째 지역은 강원도입니다. [편집자말]

아직도 설악산 대청봉엔 눈이 허옇다. 하지만 산 언저리 낮은 곳에선 봄이 아우성이다. 붉은 진달래 꽃망울 터지는 봄기운 따라 설악산을 오른다. 해마다 자연의 흐름은 흐트러짐 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들과 자연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삐걱거리고 거칠게 바뀌는 듯하다. 

5월이면 무리지어 피어난 털진달래로 설악산 정상부는 붉게 물든다. 여기에 짙푸른 눈잣나무가 어우러지면 설악산은 아름다운 천상의 화원으로 바뀐다. 이렇게 달라진 산길을 걷다보면 설악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설악산의 아픔과 슬픔은 여전히 계속 되고,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상처와 아픔은 커지고 있지만 보존 대책은 더디고 느리며 사람들은 무관심하다. 아름다움이 지켜지고, 적당한 사람이 드나드는, 그야말로 국립공원다운 설악산을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일까?

설악산 대청봉 케이블카 설치는 부결됐지만... 
▲ 케이블카 상부종점이 들어설 설악산 관모능선 상부. ⓒ 박그림


그런 기대와 달리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주장과 논의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여러 해 동안 끌어오던 설악산 대청봉 케이블카 설치 문제는 지난해 5월 환경부 공원위원회에서 부결됨에 따라 끝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강원도와 양양군은 지난해 11월 대청봉에서 1.1km 떨어진 관모능선으로 상부종점 예정지를 바꿔 케이블카 설치를 재신청했다. 결국 또다시 케이블카 설치 논쟁은 이어졌다.  

양양군은 몇 가지 주장을 내세워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희망한다. 설악산 탐방객 분산에 따른 환경훼손 감소, 자연친화적인 케이블카 설치로 자연자원의 지속가능한 보전과 효율적인 국립공원관리, 노인 장애인 외국인 등 모든 계층에게 환경복지 서비스 제공, 새로운 관광자원 조성과 산악관광 형태 변화로 설악산을 세계적인 국립공원으로 육성한다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목적들은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겉치레에 불과하다. 케이블카 노선이 지나는 곳은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의 핵심지역이며,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다. 또 천연기념물 제 217호 멸종위기종 1급인 산양 최대 서식지로 생태적인 가치가 매우 높아 출입통제 구역으로 지켜지는 곳이다.  

누구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에 케이블카 노선과 상부종점을 만들자고? 그렇게 되면 생태계 전체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할 것이다. 

우선 설악산 정상부에 집중되는 등산객들을 케이블카로 분산할 수 있다는 양양군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오히려 케이블카로 인한 탐방객 증가로 자연환경훼손만 가속화할 게 뻔하다. 

게다가 케이블카로 인한 아름다운 경관 훼손은 어떤 것으로도 보완할 수 없다. 자연친화적 시설이 아닌 케이블카로 자연자원의 지속가능한 보전을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또 장애인들은 케이블카 타러오는 일을 전쟁이라고 말한다. 

장애인이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다른 사회기반 시설은 장애인에게 결코 친화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케이블카 설치를 시도할 때만 유독 장애인 편의를 앞세우는 건 얄궂고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외국인들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러 설악산에 오는 것이지 케이블카 타러 오는 것은 아니다.  

케이블카 설치한다고 설악산이 세계적인 국립공원이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국립공원이 유원지로 전락할 수 있다. 

세계적인 국립공원? 유원지로 전락할 우려 높아 
▲ 산양이 쉬었다가는 굴. ⓒ 박그림


양양군뿐 아니라 설악산을 나누고 있는 속초시, 인제군, 고성군도 현재 나름대로 모두 로프웨이(공중에 설치한 강철 선에 운반차를 매달아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나르는 장치) 설치 등을 희망하고 있다.  

속초시는 집단시설지구에서 소공원까지 모노레일 설치계획과 집단시설지구 주차장 확장계획, 설악동번영회의 비선대에서 양폭대피소까지 산악철도 계획을 갖고 있다. 인제군에서는 장수대에서 안산까지 로프웨이를 설치하겠다는 말이 들리고, 고성군은 대명콘도에서 울산바위까지 곤돌라 설치를 원한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양양군의 케이블카 설치 계획이 승인되면 어떻게 될까? 다른 지방자치단체는 가만히 있을까? 케이블카 설치가 승인되면 설악산은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케이블카 노선이 지나갈 산줄기에 서서 눈 아래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자리에 서서 너른 골짜기의 풍경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머리 위로 곤돌라가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자연은 최대한 그대로 둘 때 가장 아름답다는 걸 알 수 있으리라.  

오랫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풍경 속에 빠져 있었다. 오후의 햇볕이 스산한 바람에 부서진다. 아스라이 누워있는 산줄기를 바라본다. 자연의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산줄기 위에 케이블카를 세우고 돈벌이를 하겠다는 사람들의 무감각한 모습을 떠올려 본다.  

설악산이라는 하늘이 내린 자연유산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우리들의 삶은 바뀐다. 뭍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간직할 수 있도록 애쓰는 것은 우리들의 삶을 위한 일이다. 더불어 설악산의 아름다움은 아이들에게 물려 주어야 할 자연유산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물려 줄 자연유산을 가로 채다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그림씨는 설악녹색연합 대표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