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7일 토요일

정부-한은 대립, 놓치고 있는 것은?


이글은 미디어스 2013-04-26일자 기사 '정부-한은 대립, 놓치고 있는 것은?'을 퍼왔습니다.
[비평] 성장률과 단기부양책에만 초점이 맞춰진 논의 아쉬워
한국은행과 정부가 서로 발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25~26일 양일에 걸쳐 다수 언론들은 한국은행과 정부가 경기 예상을 두고 의견 조율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0.9% 정도에 그친 것을 두고 한국은행과 정부가 서로 다른 전망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0.9% 성장을 둘러싼 시각 차

▲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에서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뉴스1


한국은행의 입장은 경기가 완만한 회복세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1분기 경제성장률을 전분기대비 0.8%로 전망한 바 있다. 즉, 한국은행의 예측보다 0.1% 높은 성장률이 확인된 셈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기획재정부는 0.5% 정도의 성장을 예상했었다. 비관적으로 경기를 예상했던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고 추경예산편성을 진행하는 등 경기부양을 유도하고 있다. 때문에 정부로서는 0.9%의 성장률을 ‘기저효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기저효과란 기준시점과 비교시점의 상대적인 수치에 따라 그 결과에 큰 차이가 나는 경우를 말한다. 지난 해 4분기 성장률은 0.3%에 불과했다. 전년 동기 대비 경제성장률은 1.5%인데 지난 해 4분기와 같은 정도이다. 즉, 경기가 회복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여전히 저성장 기조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라는 게 기획재정부의 입장이다.
한국은행도 성장률 수치에 기저효과가 반영됐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경기가 회복세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고 한국은행은 주장한다. 한국은행이 지난 금통위에서 금리동결을 결정한 것은 이러한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은행에 금리인하를 주문해왔다. 즉, 경기전망을 낙관적으로 볼 것이냐 비관적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 한국은행과 정부가 가졌던 금리 정책에 대한 입장의 정당성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과 정부의 충돌은 기본적으로 이런 맥락에서 빚어진 측면을 배제할 수 없다.

판단이 굳이 일치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몇몇 언론들은 바로 이런 상황을 들어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가 손발이 맞지 않고 있으며 이는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무능 때문일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러한 주장은 2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다시 등장했다. 김현미 민주통합당 의원이 이 자리에서 현오석 부총리에 정부와 한국은행의 전망이 다르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에 대해 현오석 부총리는 “한국은행도 최근 경제전망을 낮추고 총액한도대출 증액에 나서는 등 양적완화에 해당되는 정책에 나섰다”라며 “따라서 경제성향에 대한 인식은 같다고 생각한다”라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 한국은행과 정부와의 시각 차이를 비판적으로 보도한 조선일보의 25일자 기사.


하지만 한국은행 독립성 등의 문제를 고려해보면 정부와 한국은행이 반드시 경기전망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경기에 대한 판단은 결국 어떤 경제정책을 펴느냐에 대한 근거가 되는 것인데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존중한다면 정부가 금리인하를 요구하더라도 한국은행의 판단에 따라 금리동결을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사건의 하나라는 결론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금리인하를 위해 비관적 전망을 이야기 하고 한국은행은 금리동결을 위해 낙관적 전망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시각 차이가 시장에 일정 정도의 혼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뉴스1에 따르면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재정과 통화를 책임지고 있는 두 수장이 경기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로 시장은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0.9% 성장률이 발표된 직후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05% 떨어진 연 2.56%에 마감됐는데 이는 차후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즉, 채권시장은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에 동조하고 있는 셈이다.

논의가 생산적이려면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관점을 바꿔 논의를 생산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가능하다. 누구의 말이 옳고 누구의 말이 그른가를 평가하기 이전에 우리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들에 대한 처방을 가지고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경제·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장기적 관점에서 저성장은 필연이다. 소위 선진국의 대열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경제성장률은 낮은 수치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유로존 주요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은 1%를 조금 넘거나 밑돈다.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난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소위 이머징 국가의 경우 산업구조를 고도화시키며 고속성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의 경우 8%대의 성장을 당연시 한다. 경제성장률이 7%대로 떨어지면 당장 ‘저성장’ 얘기가 나온다.
우리가 처해있는 저성장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라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단기적인 부양책을 과감하게 시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저성장이 장기적인 성격의 것이라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 산업구조를 고도화시키는 작업이 근본적인 수준에서 진행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성장률의 숫자가 어떻게 되든 일반 국민들이 받을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경제의 체질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 역시 중요하게 간주될 필요가 있다. 노동시장에서 탈락하는 즉시 삶에 심대한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우리나라의 구조 때문에 저성장에 대한 공포가 심화되는 측면도 분명히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나 복지 확대에 대한 논의가 이제 보수정권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은행이 이러한 관점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스러운 시선들이 존재한다.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하는 정책결정이 뒤따를 수 있었으면 한다.



김민하 기자  |  acidkis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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