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9일 월요일

“속지말고, 믿지말고, 잊지말고, 조선아 조심해라”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4-28일자 기사 '“속지말고, 믿지말고, 잊지말고, 조선아 조심해라”'를 퍼왔습니다.
[데스크칼럼] 남북한 정권 모두 자해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
한반도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는 '장삼이사'로서, 최근 끝없이 가고 있는 남북한 정권간의 ‘치킨게임’을 바라보며,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도는 문구가 하나 있다.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고 일본을 잊지 말고 조선사람 조심해라.” 

1945년 해방 후 한반도의 민중들 사이에 회자됐던 4행시다. 주어인 일본에 따라나오는 서술어가 “일어난다” “돌아온다” 등으로 변형된 버전이 있었던 기억이 있을 만큼, 이 4행시는 60년대 말 태어난 기자에게까지 전해 내려온 현대사의 대표적인 경계가(警戒歌)였다. 

친미반공교육이 철저했던 시절이라 그 4행시를 듣고, '미국을 믿지마'란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경계해야 할 ‘국가’의 이름과 경계행위를 표현한 서술어 사이의 소리 궁합이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탓에 어린 시절 기자의 귀에도 쏙 들어왔던 4행시다. 

이 4행시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은 나이를 좀 더 먹은 고교생이 되었을 때였다. 수업시간에 접한 조선시대 역사의 한 대목 덕분이다. 조선이 사대로 섬기는 국가였던 ‘명’나라와 명의 변방에서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 중인 청’나라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해 영화 ‘광해’등을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 더욱 각인이 된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약육강식의 엄혹한 국제질서 속에서 한 국가와 민족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국가적 이념이나 외교관계 그리고 그 국제질서에 기반해 기득권을 누리는 국내정치세력의 이해를 떠나 철저히 자국의 생존과 자국민의 생명보호라는 실리적 입장에서 냉정한 상황 인식과 판단 그리고 치밀한 실행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말해주는 역사의 사례다.



27일 개성공단 근무자들이 차의 지붕에까지 짐을 가득 동여매고 남으로 복귀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국민들은 목격했다. 29일이면 남아있던 관리인력까지 모두 남쪽으로 복귀한다고 한다.  
해방된 직후 미소 패권다툼에 나라가 두 동강난 뒤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르며 ‘으르렁’ 대다가 반세기만에 가까스로 마련한 ‘개성공단’이란 평화의 ‘완충지대’가 10년을 못 버티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개성공단’사업은 미국도, 중국도, 그리고 일본의 이익을 위한 사업도 아니다. 개성공단 사업은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은 물론, 단기적으로는 남북한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며, 장기적으로는 통일시대를 대비해 남북한 사회의 동질성을 회복시키는 시범사업이다. 그 누구에게도 아닌 남과 북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 온 철저한  한반도 내부사업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한 정권이 그 어떤 명분과 언술을 동원한다 해도 개성공단사업을 중단시키는 것은 민족내부의 '자해행위'일 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광해군 시절 '명'과 '청' 사이에 끼였던 조선의 처지가, 미국과 소련 사이에 끼였던 해방 직후 한반도의 상황이 지금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두 슈퍼 파워간 동북아 주도권을 둘러싼 파워게임이 노골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이 벌이는 패권 각축장의 한가운데가 바로 우리땅 한반도다. 그런데 한반도를 운영하는 남북의 정권들이 서로 끝간데 없이 대립하는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개성공단사업의 중단과 그에 따른 한반도 위기고조는 미국, 중국, 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에겐 자국의 이해를 관철시킬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한반도와 그 거주민인 우리 민족에게 경제적 손실과 함께 생존을 위협하는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

당장 개성공단의 폐쇄로 북한은 경제적으로 ‘중국’의 의존도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핵실험을 우려하는 중국의 목소리에 북한 정권이 귀기울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결국 개성공단의 폐쇄와 한반도 위기 고조는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를 높이고 중국의 이해를 충실히 따를 수 밖에 없게 만들 것이다. 지금도 북한의 각종 개발권을 중국 자본에 넘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 않은가. 개성공단사업의 중단은 중국을 향해 큰소리 치는 북한의 목소리와 외교력을 약화시키게 할 것이다.
 
또한 개성공단 폐쇄와 한반도의 위기고조는 한국의 미국 의존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미군 스텔스기가 한반도 상공을 날고, 국내에서는 미국 전술핵 재배치 요구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군산복합체에 지금의 위기고조 상황은 무기영업의 호조건이 되고 있다. 한국에 값 비싸게 무기를 팔 수 있는 명분과 기회를 그들에게 쥐어주게 될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꿩 먹고 알 먹는’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일본에겐 또 어떠한가. ‘식민지배’가 조선을 발전시켰다는 궤변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아베 정권의 극우적 발언들을 우리는 보고 있지 않은가. 일본의 극우정권은 또다시 ‘군사대국화’를 꿈꾸고 있다. 남북한 간의 긴장이 높을수록 일본 극우세력은 쾌재를 부른다. 남북한 긴장은 일본이 군사대국화를 본격화할 빌미가 된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이해와도 일치한다.  

이런 국제질서의 냉혹한 이해관계를 뻔히 보면서, MB정권 시절에도 건드리지 않았던 한반도 내부사업인 개성공단’사업이 왜 남북한 정권의 인질이 되어야 하는지 냉정한 직시가 필요하다. 지금은 한반도 내에서 아무런 실리도 명분도 없는 감정싸움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본인의 선언대로 진정한 ‘신뢰 프로세스’를 위한 가시적인 조치를 시급히 내야 한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도 입으로만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지 말고, 실제 민족의 이해와 대의에 걸맞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냉혹한 동북아의 국제질서는 한반도와 한민족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남북한의 정권들에게 “속지말고, 믿지말고, 잊지말고, 조심해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남북한 정권 모두 한반도와 민족 모두를 위험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민족의 ‘자해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 이대로는 내 가족과 민족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두렵기만 하다.   
윤성한 편집국장 | gayajun@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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