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30일 화요일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 노동자에겐 '환장의 나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3-04-30일자 기사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 노동자에겐 '환장의 나라''를 퍼왔습니다.

[삼성노조 연속 기고 ①] "우리는 괴물이 아니에요"


2011년 7월 삼성 에버랜드에서 일하는 노동자 4명이 삼성노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삼성의 부당한 처우와 달라지지 않는 노동 조건, 상명하복식의 권위적인 질서는 노사협의회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삼성의 모습에 반기를 들게 했습니다. 노사협의회가 아닌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 노동자를 위한 조직을 만드는 것은 꼭 필요한 선택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생기면서부터 삼성은 그들이 기존 노동조합을 만드는 이들에게 보여준 시나리오 그대로 감시·미행·협박·회유로 이들을 대했습니다. 노조를 만든 직후 부위원장의 해고와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 30여 건에 달하는 소송은 제대로 된 노동조합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어마어마한 소송비는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조건에도 2013년 3월 삼성노조는 금속노동조합 경기지부에 가입했고, 더 많은 노동자들과 함께 튼튼한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민주적인 노동조합이 없는 삼성은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입니다.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조달하거나, 편법 증여를 통해 회사에 손해를 끼쳐도, 직업병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가도, 불산이라는 화학 물질을 누출해 생태를 파괴해도 어느 누구 하나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일말의 내부적인 견제 장치로서 노동조합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거대 권력인 삼성에 맞서 싸우는 노동조합에 힘을 주고, 앞으로 민주 노조가 삼성에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사회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에 '삼성노동인권지킴이'는 삼성노동자들을 지원하고, 한국사회에서 삼성에 민주노조를 만들고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연속 기고에 들어갑니다. - 조대환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제 일터는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곳입니다. 봄이 되면 장미와 튤립이 우거진 축제여름에는 사방팔방 물들이 넘쳐흐르는 곳, 휘황찬란한 퍼레이드와 한가로운 동물들을 볼 수 있는 365일 축제로 가득한 곳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환상의 나라,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데이트 코스, 누군가에는 행복의 시간을 보내는 곳. 제 일터는 바로 한국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놀이공원 에버랜드입니다. 하지만 축제의 나라 에버랜드는 누구나에게 축제가 되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말이죠. 노동자들에게 에버랜드는 환상과 축제의 나라가 아닌, '환장의 나라'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2008년 1월부터 마음이 맞는 노동자 4명과 함께 노조 설립을 준비했습니다. 권위주의적인 회사 체계, 항상 숨죽여 있어야 하는 분위기. 축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일터의 분위기는 늘 힘들었습니다. 제대로 된 권리를 보장받고 싶다고, 노동자는 사측과 동등한 관계이니, 억압적인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문제였는지, 회사에서 곧 MJ사원(문제사원) 취급을 받았습니다. 바른 말을 한다는 이유로 낮은 고과, 잦은 인사이동 등의 불이익을 받으면서도 제대로 된 일터를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노동조합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18일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출범 1주년 경과보고를 하는 삼성노동조합. 지난 3월 삼성노조는 금속노조 경기지부에 가입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하지만 역시 삼성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을 막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회유하고, 노조 설립 필증이 나옴과 동시에 저는 해고되고 말았습니다. 노조 설립 후 모든 이들을 징계하고,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미행, 고소·고발을 남발하며 엄청난 탄압을 계속했습니다. 어디를 갈 때마다 일상적으로 따라다니던 차량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뒤를 쫓는 눈초리들. 회사는 언제는 달콤한 말로 구슬리고, 다른 때는 갖은 욕설로 협박했습니다. 두려움은 상상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했던가요? 두려웠지만 이들이 얼마나 우리의 구석구석을 알고 있을지, 우리의 구석구석을 훑어 내리고 있을지 상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두려우면 지는 거다. 우리가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는 건 두렵지 않기 위해서다. 이렇게 끊임없이 되뇌었습니다. 그들의 테두리 안에 갇히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버티기로, 덤비기로 했습니다. 겁먹으면, 쫄면 지는 거다. 저들을 겁먹게, 쫄게 하자. 미행하는 차량이 있으면 오히려 뒤쫓았고, 욕을 하면 한귀로 듣고 흘리고, 더 덤볐습니다. 우리가 고통에 허덕이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아닌 즐거운 모습이어야 노동자들도 우리 편으로 돌아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든 이후 삼성은 이제 노동조합을 제 구실 못하게 만들기로 작정하고 덤볐습니다. 노동조합 홍보물을 나눠주는 것, 노동자들을 만날 기회를 만드는 것 등을 막기 위해 노동조합을 상대로 고소·고발 폭탄을 터뜨렸습니다. 30여 건의 소송과 2000여만 원이 넘는 소송비. 매일매일 재판에 쫓기게 만들어 제대로 된 노동조합 활동을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미행, 협박, 감시를 넘어 고소·고발 폭탄까지. 삼성이 세계 일류기업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법에도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고 나와 있고, 어느 나라는 노동조합이 없는 기업의 물건은 사지 않는다고도 하는데. 세계 일류기업이라는 삼성이 노동자에게 보여준 모습은 상식 이하였습니다. 어느 날부터 노동자 교육시간에 기피 대상으로 내 얼굴이 오른다고 했을 때, 노조가 생기고부터 에버랜드 안에 360도 회전 CCTV의 대수가 늘어난다고 했을 때, 삼성에게 상식이 있는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이 우스운 왕국에서 '노동자들이 정말 중요한 것이구나'라는 상식을 가질 수 있도록 싸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11년 7월 노동조합을 만들고 이제 곧 꽉 찬 2년이 되어갑니다. 누구도 이렇게 오래 버티리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올해 3월에는 금속노조에 가입을 하고, 한 명이라도 더 조합원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삼성에서 조금이라도 더 튼튼한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이리라 믿습니다. 우리의 노력의 결실인지 지난달에는 우리가 보낸 공문에 삼성이 처음으로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삼성 사상 최초로 교섭 창구 단일화를 시작합니다. 이것이 삼성에 노동조합을 뿌리내리기 위한 시작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삼성에서 이야기하는 기피 대상도, 문제 사원도, 범죄자도 아닙니다. 그저 요리하는 것이 좋던 요리사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만든 음식을 오신 손님들이 맛있게 먹을 때, 그것이 바로 일하는 맛인 것 같아 흐뭇했습니다. 평범하게, 그저 조금 더 나은대우를 바랐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에버랜드에 오는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습니다. 이곳을 찾아왔을 때의 시간을 항상 행복한 시간으로 지켜주고 싶습니다. 에버랜드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행복해야 오신 손님들의 웃음도 지켜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5월. 따뜻한 봄, 수많은 이들이 에버랜드를 찾아옵니다. 에버랜드를 찾아오는 이들에게도, 에버랜드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도 따뜻한 봄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에버랜드에 노동권의 싹이 트이는 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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