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7일 토요일

공공병원의 적자는 ‘건강한 적자’


이글은 시사IN 2013-04-24일자 기사 '공공병원의 적자는 ‘건강한 적자’'를 퍼왔습니다.
홍준표 지사가 진주의료원을 폐쇄한다면 지방 공공병원들은 앞으로 계속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의료는 적정 진료로 수익을 내기 힘들다. 공공병원의 수익성 악화를 해결하려면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

도지사가 된 지 2개월 남짓한 홍준표 지사가 103년 된 경남 진주의료원을 폐쇄하려고 한다. 각계각층의 반대, 심지어 보건복지부와 정부, 여당인 새누리당의 우려에도 홍준표 지사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홍 지사는 이번 진주의료원 폐업 추진을 “진주의료원의 개별적인 특수한 상황이지, 공공의료 정책 후퇴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그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진주의료원이 직면한 문제의 대부분은 개별적인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공공병원 전반의 문제이다.

우리나라 의료는 교과서적인 적정 진료를 통해서는 수익을 창출하기 힘든 구조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서비스의 원가보전율은 70% 중반대에 불과하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서비스 중심으로, 그 서비스가 필요한 환자에게만, 그것도 정량만 정직하게 제공하는 병원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병원들은 이런 재정적 손실을 과잉 진료와 비보험 진료로 메운다. 원가보전율이 낮더라도 박리다매식으로 양을 불리면 마진이 생긴다. 그리고 비보험 진료 서비스는 원가보전율이 200%에 이른다. 비보험 진료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100이라면, 가격은 200 정도를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과잉 진료와 비보험 진료를 적극 제공하면 승자(winner)가 되고, 소극적으로 제공하면 패자(looser)가 되는 것이 우리나라 의료의 냉혹한 현실이다.

ⓒ뉴시스 2012년 12월12일 전북도청 광장에서 남원의료원 노조가 단체협약 해지에 맞서 시위를 벌였다.


공공병원 적자의 가장 큰 이유는 민간병원에 비해 과잉 진료가 덜하고, 비보험 진료도 현저히 적기 때문이다. 실제로 종합병원 규모의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의 병상당 수입을 비교해보면, 공공병원이 민간병원의 절반밖에 안 된다. 적자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런 적자는 적정 진료를 하느라 발생한 ‘건강한 적자’이다. 오히려 칭찬해주어야 할 일이다. 물론 공공병원의 적자 중에서 ‘불건강한 적자’도 있다. 비효율적이거나 투명성 부족, 그리고 개별 병원의 노력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적자는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공병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병원인 만큼, 훨씬 더 효율적이고 투명해야 한다. 그러나 건강한 적자와 불건강한 적자를 가리지 않고, 도매금으로 적자를 문제 삼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이런 식으로 문제 삼으면, 공공병원이 과잉 진료를 하고, 비보험 진료를 남발하며, 수익성 높은 각종 부대사업을 확장하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진료 수익을 늘려서, 공공병원 적자를 해소하자는 발상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과잉 진료와 비보험 진료를 통해 얻은 의료 수익은 어디에도 없던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과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공공병원이 적정 진료를 하느라 적자를 보면, 그만큼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고, 지역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준 것이다. 
 
공공병원이 직면한 대다수 문제는 개별 공공병원 차원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공공병원 운영의 책임을 맡은 지방정부의 힘만으로도 해결하기 힘들다. 지방정부는 ‘건강한 적자’조차도 감당하기 버거운 경우가 많다. 공공병원을 잘 운영할 만한 전문성도 없다. 도의회의 협조도 부족하다. 지방 공공병원이 없는 기초자치단체 출신 의원들에게는 지방 공공병원에 대한 지원 확대가 자기 지역과는 하등 상관없는 불필요한 지출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공공의료에 대한 소명의식·역량을 갖춘 원장과 의료 인력을 확보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지방정부나 개별 공공병원들이 나름 노력을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지방정부나 개별 공공병원 모두 ‘대책이 없다’는 패배의식에 빠지게 된다. 
 
중앙정부가 책임감을 가지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공공병원은 지방정부의 소관 사항이라며, 중앙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으면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먼저 공공병원의 구실을 명확하게 잡아주어야 한다. 공공병원의 구실은 첫째 취약계층 진료, 둘째 모든 환자에 대한 양질의 적정진료, 셋째 수익성이 없어서 민간병원이 공급을 꺼리는 필수 진료 제공, 넷째 건강증진·질병관리 등 국가 보건의료 사업에 대한 지원이다. 물론 공공병원의 구실은 과거에도 이런 식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명목상의 정의만으로는 안 된다. 공공병원에 대한 각종 평가와 지원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법률적 근거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흑자 공공병원일지라도 이런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지 않는 병원은 불이익을 당하도록 해야 한다. 

진료 수익 늘려라? 과잉 진료 하라고? 

 
공공병원이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관리·지원해주는 체계를 갖추는 일도 시급하다. 낙하산으로 내려와서 도지사 눈치나 보는 원장이 아니라, 소명의식과 역량을 갖춘 원장이 선임될 수 있도록 원장 선임 과정에 중앙정부가 개입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같은 권역 내 국립대 병원과의 협력을 통해 진료 역량을 높이고, 의료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도록 체계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의 공공병원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관리·지원한다면, 충분히 제구실을 할 수 있다. 국립암센터, 서울시와 경기도 소재 공공병원 등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통해 ‘좋은’ 공공병원 구실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공공병원이 제구실을 하도록 관리하고 지원하는 것이 공공병원을 폐쇄하는 것보다 환자, 지역 주민, 지자체 모두에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이로운 선택이다.  
 
공공병원 종사자들도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를 진지한 자기 성찰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물론 공공병원이 직면한 모든 문제를 노동조합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책임 전가이다. 그러나 공공병원 구성원으로서 그에 합당한 책임의식과 역량을 갖추었는지, 공공병원 발전을 위한 자기 혁신에 둔감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홍준표 지사가 마음을 고쳐먹지 않으면, 진주의료원 사태가 지방 공공병원 붕괴의 신호탄이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홍 지사가 마음을 고쳐먹는다면 오히려 이번 사태는 공공병원의 구실을 재정립하고, 공공병원을 혁신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부디 전자가 아닌 후자가 공공병원의 미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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