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8일 일요일

방송 ‘편성권’, 포털에 넘어가나


이글은 한겨레21 2013-04-29일자 제958호 기사 '방송 ‘편성권’, 포털에 넘어가나'를 퍼왔습니다.
[초점] 스마트TV와 스마트폰 기반으로 방송사 기능할 수 있어 ‘포털용 TV’ 출현 가능… 방송사 쪽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과 의무 다해야 한다’며 견제
이 이야기는 ‘편성’이란 단어에서 시작해야 한다. TV방송도 신문처럼 포털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시나리오는, 포털이 TV방송 콘텐츠의 편성권을 가질 때나 한번 언급해볼 만하다. 실제 그런 움직임이 슬며시 감지되기는 한다. 그러나 그전에 일단 이 단어가 등장하기까지의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네이버의 동영상 서비스 ‘TV캐스트’는 방송사 주요 프로그램의 ‘다시보기’(VOD) 서비스를 제공하고, 콘텐츠 제작업체들과 수익을 배분한다. 사용자제작콘텐츠(UCC)도 주요 유통 대상이다. 프로야구나 패션쇼 등은 생중계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유통 권한 나눠주고도 시간표는 양보 없어

신문(인터넷신문 포함)은 포털에 ‘접수’된 지 이미 오래다. 온라인으로 기사를 본 독자에게 ‘그 기사 어디에서 봤어?’ 하고 물었을 때 (한겨레)나 (한겨레21)이라고 매체 이름을 대며 답변하는 경우는 드물다. 간단히 “네이버에서 봤어”라고 대답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심지어 다른 매체에서는 볼 수 없는 특종 기사마저도 ‘네이버’가 전해준 소식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네이버가 이달부터 첫 화면의 뉴스서비스를 ‘뉴스스탠드’로 바꾼 뒤, 모든 언론과 언론학계가 수익 구조 변화와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어떤 서비스 형태가 바람직한지를 따지는 것도, 결국은 신문이 포털에 ‘접수’된 현실의 방증이다.
이제 시선은 TV를 향한다. ‘올드미디어’ 시절, TV는 신문과 더불어 양대 축을 이뤘다. 그 시절 신문은 콘텐츠의 생산(기사 작성 및 종이신문 발행)과 유통(배달)을 모두 장악했고, 방송사도 생산(방송 제작)과 유통(지상파 송출)을 다 거머쥐고 있었다. 기술이 발전하자 신문은 유통 권한을 일부 떼어내 인터넷 포털 서비스에 넘겼다. 그때만 해도 포털의 역량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각 신문의 콘텐츠를 모두 확보한 포털은, 신문 자체망(각 사 홈페이지)보다 오히려 더 매력적인 유통망이 됐다. 슈퍼마켓 여러 곳이 대형마트를 당해낼 수 없듯, 신문은 포털을 이길 수 없었다.
TV는 달랐다. 지상파 방송은 그동안 꽤 다양한 주체들과 유통 권한을 나눠가지면서도 주도권을 잃지 않았다. 인터넷 시대가 개막하기에 앞서 케이블방송이 등장했을 때 방송의 유통 권한 일부는 그쪽에 내줬다. 위성방송이나 IPTV가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유통 권한을 떼어줬다.
그럼에도 방송사들이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편성권’ 덕분이었다. TV방송은 케이블·위성방송·IPTV 등에 유통 권한을 나눠주면서도, 어느 시간대에 어느 프로그램을 방영할지 결정하는 편성권은 양보하지 않았다. 방송사가 만든 프로그램은 어느 경로를 통하건 방송사가 정한 시간표에 맞춰 시청자에게 전달됐다. 유통권이 있어도 편성권이 없으면 개별 콘텐츠(프로그램) 단위로 쪼개서 재배치할 수 없다. 케이블·위성방송·IPTV는 전체 시간표를 1건의 콘텐츠로 계약한 셈이다. 신문의 콘텐츠(기사)가 낱개 기사 단위로 쪼개져서 포털 등의 의도에 따라 편집될 수 있는 것과의 차이점이다.
본론은 여기서부터다. 최근 영상 콘텐츠 업계에선 “네이버가 콘텐츠 계약을 할 때 ‘편성권’을 요구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전통적으로 편성권을 가질 수 있었던 곳은 방송사들뿐이니, 네이버가 방송사가 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뒤이어 제기된다. “앞으로는 포털이 방송을 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다시보기 서비스를 생방송으로 편성한다면

네이버에 방송을 운영할 만한 기반은 있을까? 네이버는 ‘TV캐스트’라는 동영상 서비스를 운영한다. TV캐스트는 이용자들이 원할 때(On Demand) 제공하는 ‘다시보기’(VOD·Video On Demand) 서비스가 주요 영역이다. 하지만 프로야구나 패션쇼 중계처럼 특별한 경우엔 생방송도 한다. 필요할 때만 생중계용으로 쓰는 거지만, 거꾸로 나머지 시간대는 비워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 시간대에 네이버가 계약한 각종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잇따라 몇 시간 동안 편성해 방영하면, 사실상 방송과 다르지 않다. 네이버의 TV캐스트뿐 아니라 구글의 유튜브, 다음의 tv팟 등 포털의 동영상 서비스가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컴퓨터 모니터가 아닌 TV에 구현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물론 컴퓨터 본체를 TV에 연결하면 된다. 최근 출시되는 TV 모델은 대부분 컴퓨터 연결 단자를 갖추고 있으니 어려울 건 없다. 그건 TV가 아니라 모니터일 뿐이다. 입력 수단도 키보드와 마우스 등 PC에서와 같고, 이용 방식도 컴퓨터와 같다.
활로를 연 것은 스마트TV와 스마트폰이다. 기존 IPTV도 인터넷에 기반한 방송 서비스였지만, 셋톱박스를 무료로 배포할 수 있는 금액 수준(10만원대 초반)에 묶으려다보니 성능이 낮아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스마트TV가 등장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1년 전인 지난해 4월 20만원짜리 셋톱박스를 통한 방송 서비스(다음TV)를 시작한 포털 다음은 “이용자들이 셋톱박스를 돈 주고 사는 문화가 아니다보니 예상 수준에 그쳤다”고 했다. 이를 반영한 듯, 최근 한 중소기업은 다음TV 서비스를 내장한 스마트TV 모델을 출시하기도 했다.
스마트폰도 포털의 콘텐츠를 TV에 구현해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최근 출시되는 스마트폰 모델엔 영상과 음성을 송수신할 수 있는 ‘고선명 멀티미디어 인터페이스’(HDMI) 단자가 있어 바로 TV에 연결할 수도 있다. 애플의 ‘에어플레이 미러링’ 기술처럼 무선인터넷을 이용해서 스마트폰 화면을 그대로 TV 화면에 띄울 수도 있다.
기존 IPTV 셋톱박스 성능을 월등히 능가하는 스마트폰의 성능 덕에, 드라마·오락물 등 방송 프로그램과 전자상거래, 게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이 다양하게 얽히는 서비스도 가능해진다. 특히 편성을 맡게 될 포털은 이미 확보한 전자우편, 카페, SNS 등의 자료를 기초로 각 개인 이용자에 프로그램 장르와 시간대를 최적화해주는 방식으로 편성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정치·사회에 관심 있는 시청자와 경제·문화에 관심 있는 시청자에게 각기 다른 편성표를 제공하는 식이다. 시청자는 어느 방송사의 콘텐츠인지를 따지기보단, 포털의 편성을 수용하게 될 것이다. 사이사이 개인에 최적화된 광고가 들어갈 수 있음은 물론이다. 방송도 포털에 넘어가는 셈이다.
실시간 방송이 이미 가능하고, TV 스크린을 포털에 내줄 수도 있는 환경, 심지어 최적화 방송마저 가능한 여건 속에서 ‘편성권 요구’는 어쩌면 포털로서는 당연한 선택으로 보인다. 네이버 쪽은 이 사실을 부인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우리가 쓰는 ‘편성’이란 개념은 프로야구 중계 때 화면을 분할시켜 동시 중계를 하는 경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확보한 콘텐츠를 이어붙여 실시간 방송을 하는 게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지금 이용자들이 그런 방식으로 쓰지 않고 있는데 굳이 먼저 그런 서비스를 내놓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트래픽 관련 통신사와 논의도 필요

그렇다고 네이버가 결심만 하면 만사형통인 것도 아니다. 방송사 쪽에선 “만약 그렇게 해서 네이버가 사실상 방송사업자가 된다면, 네이버에 대해서도 방송사로서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이나 다해야 하는 의무 등을 요구해야 할 것”이라며 사전에 엄포를 놓고 있다. 30인치 이상 화면에서 안정적으로 볼 수 있는 고화질 화면을 계속 송수신하려면 막대한 용량이 필요한 탓에, 인터넷 트래픽을 둘러싸고 통신사와 논의도 필요할 전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털이 방송을 하고 주도권까지 뺏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가설’ 수준일 수도 있다. 우리 주변의 많은 현실이 한때는 그저 가설이었던 것처럼.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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