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2일 월요일

공짜 평화는 없다


이글은 시사IN 2013-04-22일자 기사 '공짜 평화는 없다'를 퍼왔습니다.
전쟁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싹튼 위기가 막대한 손실로 다가온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회사원 김동근씨(40)는 중학교 1학년(14)과 초등학교 4학년(11) 형제를 두었다. 요즘 밥상머리에 자주 오르는 대화 주제는 ‘북한’과 ‘전쟁’이다. 아이들이 먼저 “아빠 전쟁 날 것 같아요?”라며 자주 묻는다. 김씨는 “그럴 리는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며 며칠째 다독였다. 

경기도 안산시에 사는 준호 엄마는 북한 미사일 발사가 예견된 지난 4월10일, 아예 세 살짜리 준호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주위에서 ‘오버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5월12일 괌으로 신혼여행을 떠나기로 한 최 아무개씨(30)는 항공권을 구매했지만, 호텔 예약은 미루었다. 북한이 미국령 괌 기지를 겨냥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뉴스 때문이다. 호텔을 예약했다가 취소하면 40여 만원을 제하고 돌려받기에,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양가 부모들은 신혼여행지로 괌은 피하라고 성화다.

북한 리스크 때문에 코스피가 크게 출렁이지는 않았지만, 증권가 애널리스트의 안테나도 북한으로 향해 있다. 우리투자증권이 2000년 이후 북한 도발과 코스피 지수 움직임을 분석한 보고서가 개미 투자자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북한 미사일 발사 때 최대 하락폭은 7.1%, 핵실험 때는 6.6%, 연평도 포격 등 국지전 때는 8.5%에 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처럼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하고 국지전까지 모두 일어나면 보고서는 10% 이상의 하락을 예측했다. 현재 1900대 코스피 지수에서 10% 정도 더 떨어지게 되면 1750선으로 하락하는 셈이다. 2011년 12월19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1750선까지 폭락한 적이 있다.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이 전해지기 전인 오전 11시50분까지 1400억원대에 머물던 외국인 순매도 규모가 속보가 전해진 지 10분여 만에 1900억원대까지 치솟으면서 북한 리스크를 실감케 했다. 신한금융투자도 이번만은 북한 뉴스를 저점 매수 기회로 활용하면 안 된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전쟁 불안감은 국내보다 해외가 더 심하다. 4월13일 서울에서 열린 종합격투기대회 ‘로드 FC 11’ 출전 선수 가운데 일부가 북한 리스크 때문에 막판까지 입국하지 않아 주최 측의 애를 태웠다. 대회 하루 전날에야 주최 측의 설득으로 입국해 합류했다. 일본의 한 기업은 한국 출장을 4월30일까지 자체적으로 금지시켰다. 반면 분쟁 전문 기자들은 속속 한국으로 입국하고 있다. 통일부에 등록된 한국 파견 특파원 수는 4월12일 현재 280여 명에 이른다. 평소 특파원 수가 50여 명 수준인 점에 비추면 6배 가까이 된다. 한 외신기자는 “(본사) 데스크가 북한 뉴스에 대해 ‘세게’ 쓰라고 요구한다”라고 귀띔했다. 현지에서 CNN이나 BBC, NHK를 보고 국내로 전화를 거는 동포도 급증했다. 일본 유학생 이다 리사 씨(31)는 “일본에 있는 부모와 친구들이 (한국) 위험하지 않으냐고 매일 전화를 한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혹시 몰라 일본 내무성에서 보내는 정부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했지만 아직 특별한 내용은 받지 못했다.

ⓒ시사IN 조남진 4월10일 시민들이 서울역 대합실에서 북한 미사일 관련 속보를 보고 있다.


20년 만에 북한 리스크에 따른 전쟁 불안감, 특히 전면전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에 버금간다. 1차 서해교전(1999년), 2차 서해교전(2002년), 천안함 사건(2010년), 연평도 포격(2010년) 때도 물론 위기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면전 불안감으로 곧장 이어지지는 않았다. 남북 모두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걸 꺼렸고, 핫라인 등 직간접 채널을 통한 관리가 가능했다. 현재는 북한이 매일 뉴스를 갈아치우는 ‘헤드라인 전술’을 통해 위기를 극대화하며, 사실상 대화가 단절된 1994년과 유사한 상황이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보다는 차분 
 
전무후무한 사재기 열풍이 일었던 1994년을 복기해보면, 그해 3월19일 서울 불바다 발언이 (9시 뉴스)를 통해 안방에 중계되었다. 박영수 북측 회담 대표가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그쪽이 전쟁을 강요하는 데 대해서는 결코 피할 생각이 없다.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만다”라고 말했다. 2013년 남북한이 주고받는 말에 비하면 강도가 높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불바다 발언은 수위가 가장 높은 발언이었다. 북한은 험한 말에 이어 곧장 행동으로 옮겼다. 4월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철수한 데 이어 5월4일 영변 원자로에서 연료봉을 추출하기 시작했다. 1차 북핵 위기의 서막이었다. 6월13일에는 국제원자력기구 탈퇴를 실행하면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았다. 클린턴 정부도 가만있지 않았다. 알려진 대로 클린턴 정부는 정밀폭격을 계획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나중에 자서전에서 “1994년 3월 하순 북한의 심각한 핵 위기가 시작됐다.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이 3월30일 언론에 말한 대로 나는 전쟁을 불사하고라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결심했다”라고 털어놓았다. 크루즈 미사일과 F117 스텔스 전투기를 통한 ‘외과수술식 정밀공격(surgical attack)’을 구체적으로 계획했다. 이때 미국 대사관은 미국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NEO(Noncombatant Evacuation Operation:비전투원 후송 작전)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직전까지 갔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은 나중에 알려진 터라 당시에 국민 동요는 크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가 안보 불감증을 질타할 정도였다. 하지만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실행한 6월13일을 기점으로 국면이 바뀌었다. 다음 날부터 서울 강남 일대와 이태원 등 일부 지역에서 라면·참치캔·부탄가스·분유·생수 등 사재기 5종 품목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강남 일대 백화점과 슈퍼마켓 등 식품 코너에는 하루에 평소보다 서너 배 많은 고객이 몰려 비상용 식품과 연료·약품 등을 경쟁적으로 구입하느라 북새통을 이뤘다. 이 같은 사재기 현상이 보도되자 그다음 날부터 전국적으로 5개 세트 외에 방독면까지 팔려나갔다. 당시 유일하게 민간용 방독면을 생산하던 삼공물산의 재고 1000개가 하루 만에 바닥이 날 정도였다. 그해 6월14~16일 사흘 동안 전국적으로 팔린 라면은 모두 5000만 개를 훌쩍 넘었다.  
 
이때에 비하면, 4월12일 현재 북한 리스크에 따른 사재기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마트 홍보팀은 지난 4월4∼9일, 그 전주에 대비해 라면 -8.9%, 생수 -3.4%, 즉석밥 -1.6%로 매출이 오히려 하락했다고 밝혔다. 롯데마트의 경우, 4월3~9일 매출이 2주 전에 비해 라면 11.9%, 생수 26.2%, 즉석밥 15.9%, 통조림 -1.6%, 부탄가스 103.8%, 휴대용 버너 101.5%로 일부를 제외하고 대폭 상승했다. 일반적으로 사재기는 기존 수량에 대비해 200~300% 구입하는 현상을 일컫는데 최원석 롯데마트 홍보팀 과장은 “사회 불안에 따른 사재기라기보다 캠핑이나 봄나들이 품목과 겹친다. 나들이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1994년 6월13일까지 평온하다가 사재기 열풍이 하루 만에 몰아친 점에 비쳐보면 불안감은 잠재되어 있다. 물론 질적으로 다른 상황도 있다.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남북 협상과 한·미 동맹을 동시에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여론이 크게 출렁이지는 않으리라는 분석도 있다(보수 57.9% “남북대화 우선” 기사 참조). 또 20년 전 전쟁 위기 공포를 겪었던 2030 세대가 지금 4050대인 점도 차분한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지난 1월 청와대는 ‘이명박 정부 국정 성과’를 정리하며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성과 중 하나로 꼽았다. 청와대 자료에 따르면, ‘참여정부는 현금 15억7000만 달러를 포함해 모두 44억7000만 달러 상당의 대북 지원을 제공했지만, 북한은 1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하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40차례나 침범해 무조건적인 대북 지원이 북한의 도발을 막는 데 무용함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현금 9억7000만 달러를 포함해 5년간 참여정부의 38%에 불과한 16억8000만 달러를 지원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 발생한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폭격, 북한 장거리 로켓 은하3호 발사 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 북한 리스크 역시 ‘북한 관리’에 손을 놓았던 이명박 정부 때 싹튼 측면이 크다. 북한에 적게 썼지만, 위기에 따른 잠재적인 손실액은 눈덩이 수준이다. 당장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투자비용 1조원을 비롯해 손실액만 약 6조원에 달한다. 북한 리스크에 따른 국민의 불안감은 계산 불가이다. 

송지혜 기자  |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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