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3일 화요일

예고된 ‘핵심 권력’ 갈등, 방조하는 청와대의 무능


이글은 미디어스 2013-04-22일자 기사 '예고된 ‘핵심 권력’ 갈등, 방조하는 청와대의 무능'을 퍼왔습니다.
윤창중-김행 투톱 체제의 불화와 박근혜 정부

▲ 이명박 청와대의 유일한 '핵심관계자'로 불렸던 이동관 전 홍보수석 ⓒ뉴스1


이명박 정부 시절 이동관 대변인은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나뿐”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를 활용한 기사를 근절하겠단 취지였다. 하지만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복잡한 권력 지형도에서 오직 자신만을 ‘핵심 관계자’라고 말하는 그의 오만함은 복수의 청와대 권력자 중 누구 '진짜' 권력자인지를 각인하게 했다.
이후 청와대의 소통은 편중과 정체를 빚었다. 권력의 지형도가 단순해지면서 발생하는 일종의 여론 병목 현상이었다. 이 전 대변인은 점점 더 막강해졌다. ‘마사지’ 논란을 일으켰고, 거의 모든 사안에 ‘엠바고’를 남발했다. 권력의 편중에서 비롯된 이 전 대변인의 사고방식은 ‘우리가 말하지 않는 것은 기사가 되어선 안 된다’는 이명박 정부의 고질적 한계로 이어지며 사회적 소통을 방해하는 원천적 문제가 되었다.
박근혜 정부가 다소 생소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투톱 체제의 대변인을 둔 것은 이런 상황에 대한 성찰에 따른 것이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인 시절부터 권력의 집중에 유독 예민한 반응을 보였고, 누가 ‘실세’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분배된 신임을 통해 조직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양면적인 평가가 가능한 정치적 용인술인데 나쁘게 보자면  오로지 자신만이 ‘실세’여야 하는 일종의 강박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명박-이동관의 관계가 훗날 ‘순장조’ 논란에서 알 수 있는 강고한 운명 공동체의 성격이었다면, 박근혜-윤창중/박근혜-김행의 관계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다른 수석들이나 청와대 내 다른 권력자들에 비해 이 둘과 대통령의 관계와 인연은 헐거워 보인다. 윤 대변인의 경우 인수위 구성 이틀 전까지만 하더라도 ‘절대, 청와대에 갈 일은 없다’고 말하던 야인 중의 야인이었고 김 대변인의 경우 ‘박근혜의 사람’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이력에 캠프와 어떤 접점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 두 대변인이 기용됐을 때 각각의 설왕설래가 있었다. ‘인연’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서 어떤 점이 작용해 발탁된 것인지는 단서가 될 만한 이야기였다. 윤 대변인이 썼던 칼럼들이 대선 기간 당시 새누리당 당사 엘리베이터에 꾸준히 게재되곤 했었단 사실이 알려졌고, 김 대변인 역시 대선 기간 당시 종편 채널에 출연해 새누리당에 우호적인 판세 분석을 통해 박 대통령의 눈에 들었단 ‘소문’이 돌았다. 가뜩이나 소통 능력이 떨어지는 박 대통령인데, 의중을 가장 정확하게 판단해야 하는 대변인에 측근도 실세도 아닌 그렇다고 업무 전문성에 기반 한 것도 아닌 이 두 명이 적합한 것이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물론 아랑곳 하지 않았다.

▲ 김행(좌), 윤창중(우) 대변인 투톱 체제의 갈등은 예고된 것이었다. 문제는 이 예고된 갈등을 사실상 방조하고 있는 청와대 시스템의 무능함과 박근혜 대통령의 무력함이다. ⓒ뉴스1


대통령과 간접적 관계에서 대변인에 발탁된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부의 속성과 권력의 특성을 감안했을 때, 이는 필연적 갈등의 문제로 비화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출발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임명 초기부터 두 대변인은 책상 위에 선을 긋고 여기까지 내 땅이라고 우기는 초등학생 같았다”고 말했다. ‘선임’이 누군지 불분명한 어정쩡한 체계에서 이제 막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기 보다는 경쟁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두 대변인은 가장 나쁜 권력의 모습으로 변별하고픈 욕망에 휩싸이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인수위 시절 본인을 ‘단독기자’라고 칭했던 윤 대변인은 첫 번째 청와대 브리핑에선 두서 없이 자기 자랑을 해 빈축을 샀다. 브리핑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자기애를 늘어놓는 그를 보며 기자들은 ‘역시 명불허전’이라며 기막혀 했다. 뭔가 '어필'하고픈 욕구로 들떠 보였다. 하지만 인수위 시절과 청와대 임명 당시 엄청난 논란을 빚었기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청와대 대변인이 되어서는 윤 대변인의 ‘활약’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이에 대해 한 기자는 “전체적으로 몸을 사리고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사적인 자리에선 더 빛나는 화술을 발휘하고 있지 않겠느냐는 냉소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이들을 빗대 ‘정치적 창녀’ 등의 막말을 쏟아내는 것으로 눈에 띄었는데, 공적인 자리에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면 사적인 자리에서라도 활약(!)을 하고 있지 않겠느냔 말이다.
그나마 소통을 이해하는 측면에선 윤 대변인보단 낫지 않겠느냐고 평가받던 김 대변인 역시 그러나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대변인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제 전화번호 아시죠? 이제 전화 받을 테니 궁금한 건 물어보고 쓰세요”라 말을 남겼던 김 대변인은 그러나 이후엔 “관계자로 나간 기사는 청와대와 무관함을 명백히 밝힐 것이며, 절대 책임질 수 없다”고 기자들을 사실상 ‘협박’했던 바 있다. 공식적인 브리핑에서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에 대해선 전화를 하라고 해놓곤, 권력 취재의 기본 가운데 하나인 익명 보도는 법적 대응하겠다던 김 대변인의 태도는 그야말로 실소의 대상이었다.

업무적인 문제도 많았다. 투톱 대변인 체제의 청와대 홍보라인은 아마추어 같은 실수를 계속 남발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 중이다. 엠바고 대상인 대통령의 외부 일정을 경쟁적으로 공개하기도 하고 자체 보안이 걸려있던 인사 내역을 정작 청와대 블로그에 올려 웃음꺼리가 되기도 했다. 어떤 땐 대통령의 공식 일정이 불쑥 공개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군사기밀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전달된다. 이 밖에도 자잘한 실수들은 너무 많아 헤아리기 쉽지 않을 정도이다.

▲ 윤창중-김행 대변인 체제의 갈등을 보도한 22일자 한겨레 보도.


이 모든 책임을 두 대변인에게 물을 순 없겠지만, 윤-김 대변인 체제가 지극히 아마추어적이고 게다가 전문성과 실력 측면에서 결코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여기에 두 대변인은 아직까지도 ‘신경전’이 끝나지 않은 모습이다. 22일자 한겨레 신문은 두 대변인이 ‘순방 수행 경쟁’을 벌여 이도저도 선택할 수 없었던 이남기 홍보수석이 결국 두 대변인 모두를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 따르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와 인터뷰한 청와대 관계자는 “(두 대변인이) 서로 상대방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탓인지 평소에 말도 잘 안하고, 업무 분담도 제대로 안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첫 방미 일정에 어떤 대변인이 따라가느냐는 것은 누가 ‘핵심’이고 누가 ‘주변’인지를 드러내는 문제일 수 있다. 절대, ‘주변’이 될 수 없는 두 대변인의 힘겨루기가 결국 국내 언론 창구를 비워두고 대변인 둘이 모두 대통령을 따르는 기이한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이건, 박 대통령의 무능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핵심을 두지 않겠다며 권력을 분산했지만 정작 그 당사자들이 핵심 경쟁을 벌이는 것을 방조하는 것은 무능함에 다름 아니다. 두 대변인이 막무가내로 박 대통령을 따르겠다고 나서고, 홍보수석은 황희 정승마냥 이를 어쩌지 못하는 상황의 고백은 권력이 작동되는 박근혜 정부의 시스템이 사실상 무력화되었단 점을 잘 보여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한 권력은 권한이 특정되고, 이 특정된 권한이 법의 지배와 행정의 권위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박근혜 정부의 권력은 오로지 대통령의 눈에 어떻게 들고, 얼마나 눈치껏 대통령을 만족시키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모양새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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