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3-04-8일자 기사 '동아일보의 김지하 특집, 보수가 70년대를 전유하다'를 퍼왔습니다.
'전향자' 내세운 안전한 기획이지만 보수세력의 성찰 담겨

'전향자' 내세운 안전한 기획이지만 보수세력의 성찰 담겨

▲ 8일자 동아일보 3면 기사
동아일보가 김지하 시인을 활용한 특집을 시작했다. (타는 목마름으로- 허문영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라는 이름이다. 이 특집은 ‘채널A’에서 그를 불러다놓고 정세현안에 대한 질문을 하며 박근혜 지지와 문재인 안철수 비판을 유도하던 것보다는 훨씬 그럴듯해 보인다. 우리는 더 이상 김시인의 정세분석을 궁금해 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시절’에 대한 그의 평가와 기억은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의 해당 기획은 소위 야권의 입장에서 부정적인 측면으로 볼 때엔 이미 박근혜 지지를 선언한 ‘전향자’의 후일담을 통해 ‘그때 그 시절’ 독재정권 비판을 현 체제에 대한 비판과 분리하려는 ‘안전한 기획’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박정희 독재정권’과 ‘6공화국 박근혜 정부’ 사이의 연결고리를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하나의 극단적인 견해라면, 양자를 동일시하고 박근혜 정부가 박정희 권위주의 체제의 재림인양 묘사하는 것 역시 극단적인 견해다. 우리는 동아일보의 시도를 이 두 극단적인 견해를 벗어나기 위한 보수진영의 접근으로 평가할 필요도 있다.
가령 허문영 기자의 다음과 같은 연재의 변은 허투루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지난 1960, 70년대를 다시 보아야 하는가. 바로 민주화와 산업화 세력의 ‘통합적 역사인식’ 없이는 통일 한국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화합은 최대 이슈였지만 탕평 인사를 하겠다는 약속 외에는 통합의 구체적 내용과 비전은 제시되지 않았다. 호남 출신 인사들을 몇몇 요직에 등용한다고 국민 통합이 된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국민 통합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가치 통합, 세대 통합이 없이는 힘들다. 그동안 두 세력은 서로에 대해 가시 돋친 비난을 해오며 선거 때마다 충돌해 왔다. 산업화 세력은 민주화 세력을 향해 권력지향성이 강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하다 비판해 왔으며 민주화 세력은 산업화 세력을 향해 소통능력이 부재하고 부패한 세력이라고 비판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연재를 준비하며 기자가 느낀 것은 산업화, 민주화를 분리해서 봐서는 안 되고 국민적 입장에서 통일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화’니 ‘민주화’라는 말로 세력을 구분하고 때로는 리더를 중심으로 이를 섞어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역사를 삶이 아닌 관념 속에서 보거나 정치를 삶이 아닌 공학적으로 보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산업화 민주화의 가치들은 머릿속에서는 서로 다른 것들일지 몰라도 대한민국 국민의 삶 속에서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한마디로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인권, 민주주의의 확대라는 국민적 소망의 실현 과정이었다. 각 분야에서 리더들이 큰 역할을 하긴 했으나 산업화 민주화의 주역은 모두 국민이었다.
이번 기획을 통해 지난 시절 우리는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모두 노력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민주화 산업화를 거의 동시대에 성공시킨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래의 주인인 젊은이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긍지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 나아가 통일의 문을 열어젖히는 세대가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리즈를 시작한다. 연재는 월∼금요일 주 5회 게재될 예정이다.“
말하자면 동아일보는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통합적 역사인식을 추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물론 그 주체가 동아일보이기에 다소 보수적 틀의 접근이 되기는 할 것이다. 가령 그들이 6~70년대 박정희 대 민주세력, 즉 산업화세력 대 민주화세력의 대립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루어내려는 공동의 목적 내부의 경쟁으로 치환하는데 성공한다면 80년 광주항쟁의 비극이나 전두환 집권, 그리고 혁명론(NLPDR)로 무장했던 386세대 운동권을 그 ‘체제 내 경쟁’이란 일치의 상황이 깨져서 발생한 ‘파행’으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보수세력은 “전두환을 주고 386세대 운동권을 치는” 전략적 기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이것이 나쁜 것인가? ‘87년 체제’라는 것은 소위 산업화세력도 민주화세력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한 잠정적이고 타협적인 체제다. 하지만 양쪽 모두 이 체제의 타협성을 인정하지 못했기에 역사인식에 있어 어떤 합의를 찾지 못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 논란’을 일으켰다.
보수세력이 동아일보 정도의 인지만 가졌더라도 개혁세력 역시 협상에 나설 수 있었을 것이다. 가령 “전두환 받고 유신 콜!”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시대’의 상대적 차이를 분간하는 한편 ‘박정희 시대’ 역시 60년대는 ‘권위주의 체제지만 어느 정도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인민의 동의를 구했던 시대’로, 70년대는 ‘정권 연장을 위해 억지로 경제성장과 안보문제의 당위성을 만들어내고 폭압적 통치를 자행했던 시대’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의 접근은 물론 통합적 인식의 보수적 버전이지만 통합적 인식에 진보적 버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가령 2011년 5.16 50주년 대담에서 진보적 정치학자인 박명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유일독재체제는 야당·학생·언론의 강력한 도전으로 인한 내부갈등이 초래하는 남한에서의 국가비전 길항, 업적경쟁, 힘의 폭발적인 분출을 감당할 수 없었다. 즉 산업화에 있어서 민주화 세력의 기여는 결정적이었다. 민주화세력과의 경쟁은 북한과의 체제대결에 더해 박정희 정부로 하여금 산업화에 생사를 걸도록 압박했다. 즉 한국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는 시차적으로 이뤄졌다기보다 상호 길항작용을 하며 거의 동시적으로 이뤄졌으며, 공과 역시 나눠 가져야 한다." (5.16 쿠데타 50주년 경향신문 특집 기사 박명림의 발언 링크)
이승만과 박정희가 친일파를 등용하거나 친일파였고 독재자였다는 이유로 그들이 통치했던 시기가 대한민국사에서 어떠한 의미도 없이 부정적인 영향만 끼쳤다고 말하는 것도 온당한 일은 아닐 것이다. 역사는 통치자만이 만들어 갔던 것이 아니고, 그들 역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중의 열망을 일정부분 대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제강점기에 보통교육이 급속도로 팽창한 것도 식민지 조선인들의 교육열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대응이라 평할 수 있는데, 이승만 시기나 박정희 시기에 대해 그런 접근을 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이런 식으로 접근할 때에야 오히려 ‘건국’이나 ‘경제성장’과 같은 ‘업적’을 통치자 일개인의 것으로 수렴하지 않을 수가 있다. 진보세력이 동아일보의 ‘통합적 기획’을 비웃지만 말고 이에 대한 진보적 버전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야만이 대한민국이란 국가 공동체에 대한 어느 정도 합의된 기억을 시민들이 가질 수 있을 것이고, 민주화/진보세력이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하고 북한을 추종한다는 ‘오해’ 역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 8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
한윤형 기자 | a_hriman@hotmail.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